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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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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근주] 답은 늘 규제가 아니라 시장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작성일 : 2021-05-18 작성자 : 통합 관리자


답은 늘 규제가 아니라 시장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갱스터 무비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87년작 〈언터처블 The Untouchables〉을 기억할 것이다. 숀 코네리, 로버트 드 니로, 케빈 코스트너, 앤디 가르시아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인 1913년 미국의 시카고는 금주법이 실행되고 있었고 동시에 마피아의 전성기였다. 지금도 전설적인 범죄자로 회자되는 시카고 제일의 갱 알 카포네는 밀주와 주류밀수로 큰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젊고 정의로운 수사관들이 알 카포네 조직을 소탕하는 노력을 그린 영화가 ‘언터처블스’다. 특히 정의로운 수사관인 네스는 알 카포네를 소탕하기 위해 철저히 수사하고, 결국 마피아의 유혹을 뿌리치고 생사를 건 결전을 벌인다. 법을 농락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을 무찌르는 통쾌한 이야기이다.


시대적 배경이 되는 금주법을 이해하면 영화가 더 재미있다. 1917년 미국은 수정 헌법 18조를 통하여 자국 영토 내에서 0.5%이상의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가 만들어지거나 판매․운반․수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이는 각 주의 승인을 거쳐 1920년 1월 2일 발효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개인의 사생활과 기호를 정책으로 통제한다는 다소 황당한 발상이지만 당시에는 알코올 중독이나 알코올로 인한 범죄를 줄이는 것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은 남북전쟁을 거치고 또 다시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시 상황에서의 곡물 절약은 미국에서 미덕 정도가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또한 금주를 통한 군수산업의 작업능률 향상을 위한 목적도 있었다.


여기에 전쟁의 대상이 독일이라는 점도 함께 작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독일에 대한 미국의 감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금주법을 통해 독일 이민자들이 양조업을 통해 부를 쌓는 것을 견제하려 했다. 동시에 1920년대 미국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퇴폐적인 것으로 생각한 보수적 복음주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영향력도 작용하였다. 이들은 사회 문제를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음주, 흡연, 성적 문란 등의 개인적인 문제로 파악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태초에 술을 좋아하는 인류가 정책으로 음주를 막는다고 술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막으면 막을 수로 더 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하면 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정책이었다.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은 아무리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목적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미 정부의 금주법이라는 정책에 미 국민들은 ‘밀주’라는 ‘대책’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밀주의 증가는 국민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고, 범죄의 증가를 초래했다. 금주법으로 해결하려는 문제가 금주법으로 인해 심각성이 더 커진 것이다. 주류 밀거래가 알 카포네와 같은 마피아의 급성장을 가져왔고, 결국 미국 범죄의 역사를 바꾸어버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금주법을 배경으로 하나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존 힐코트 감독의 2012년작 〈나쁜 영웅들 Lawless〉이 있다. 언터처블이 잔혹한 갱스터에 맞서는 정의로운 공무원의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금주법 시대 경찰의 부정부패를 다루고 있다.


당시 밀주가 미국에서 가장 번성해 ‘the wettest county'로 알려진 버지니아 프랭클린 카운티의 본듀란 삼형제의 우애와 사랑 등을 주된 메시지로 담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밀주법이라는 정부의 정책이 가져온 모순되고 불합리한 사회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한다.


정부의 금주법 이전부터 지역에서 술을 만들어 팔아온 본듀란 형제는 밀주법이 시행되면서 자연스레(!) 밀주업자가 된다. 지역 주민들은 밀주법 이후에도 당연히 술을 필요로 했기에 형제가 만든 술은 여전히 거래되었다. 프랭클린 카운티는 지역 경찰들도 밀주를 사서 마실 정도로 밀주가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때문에 산골짜기 마다 밀주공장들이 빼곡하게 있었다. 밀주법이 없었다면 사람이 사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으나 밀주법이 만들어지면서 일상이 불법이 된 것이다. 밀주법 이후 도시에서는 지방에서 만든 술을 대량으로 유통하는 일이 큰 돈을 벌어주는 새로운 사업이 되었다. 정책적으로 술이 금지된 상황에서 여전히 술에 대한 수요는 높기 때문에 불법적인 거래가 큰 이익을 남겨주는 신종 사업이 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새롭게 이 지역에 부임한 특별검사가 본듀란 형제에게 밀주 사업을 계속 하려면 뇌물을 바치라고 제안한다. 밀주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뇌물을 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다른 밀주업자들은 본듀란 형제에게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하지만 형제는 이를 거부하고 이전처럼 자유롭게(!) 밀주사업을 할 것임을 밝힌다.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는” 부패한 공무원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새롭게 부임한 특별검사가 매우 악독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생김새며 말투 그리고 행동까지 모두 전형적인 야비한 인물로 표현된다. 반면 본듀란 형제는 매우 멋있고 합리적이며 정의롭기까지(!) 한 인물로 묘사된다. 재미있는 대비다.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은 야비하게 묘사되고 오히려 불법을 저지르는 인물이 선하고 정의로운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애매한 상황이다. 정부의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밀주사업을 하는 형제들이 나쁜 것인가, 뇌물을 요구하는 공무원이 나쁜 것인가? 이는 당시 밀주법에 대한 사회의 인식, 지역 자치 혹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인식 등을 모두 포함해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전설적인 갱 플로이드 배너가 금주단속반을 공격하는 장면을 본 주인공의 표정이다. 주인공은 갱이 쏜 총알의 탄피를 마치 연예인의 소지품이나 존경하는 인물의 물건인양 감격스럽게 집어 든다. 영화는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의 죽음에 분개하기보다는 갱단의 모습을 오히려 영웅시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합리적이지 못해 발생한, 정책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나타난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두 영화를 통해 밀주법을 정리해보자. 사회 전체적으로 술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금주법은 술의 공급을 극도로 제한하게 된다. 그러면 술의 가격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이는 술을 공급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되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술을 공급하려는 집단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불법적인 폭력을 사용하거나(언터처블) 또는 공무원을 매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암 거래의 틈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발생한다(나쁜 영웅들).


불합리한 정책은 예상치 못한 큰 해악을 발생시키고 그 부담은 국민들이 고스란히 지게 된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국민이 오랫동안 지불해야할 사회적 비용만 커지게 된다. 정책이 시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경우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또 다른 문제, 나아가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다. 금주법은 결국 대공황의 혼돈 속에서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수정 헌법 22조로 인해 폐지되었다. 시장을 무시한 규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정부는 시장의 보완하기 위하여 시장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 정부가 시장을 대신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역사의 아픈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근주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전공 교수

인사혁신처 고위공무원단 역량평가 위원

외교통상부 산하기관평가위원장

공직인사혁신위원회 위원


(美) 인디아나대학교 행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