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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식] 중국의 공세적 외교정책 강화와 한중관계의 미래

작성일 : 2021-06-01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중국의 공세적 외교정책 강화와 한중관계의 미래


중국 외교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이는 2017년 개최된 제19차 전국공산당대회에서 중국이 미국을 대상으로 한 강대국 외교를 명시한 이후 능히 예측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급속히 치닫는 미·중 경쟁의 원인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이 주도한 무역분쟁에서 찾기도 한다. 이런 시각은 미국의 자국 이익 우선 추구와 이로 인한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가 미·중 관계를 악화시킨 중요한 요인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등장으로 불붙기 시작한 미·중 간 무역분쟁은 미국과 중국의 대내외적 환경을 고려했을 때 언제 터질지 모를 패권 경쟁에 방아쇠를 당기는 기능을 수행했을 뿐이다.


한 국가가 강대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은 자국의 이익과 관련한 외부 세계와의 갈등 요인이 그만큼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중국은 자국의 영향력이 팽창되는 과정에서 국가 안보와 관련된 핵심 이익의 범주를 지속해서 확장해 왔다. 국가의 핵심 이익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이익으로 물리적 수단의 동원을 통해서라도 수호해야 할 정치적, 경제적, 영토적 이익을 뜻한다. 문제는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이 강조하는 국가 핵심 이익의 범주가 광범위해지고 이를 언급하는 빈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팔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대중국 견제의 중요 쟁점으로 부상한 대만, 홍콩, 신장, 남중국해뿐만 아니라 동중국해, 역사문제, 정치제도, 사회복지, 과학기술, 대중문화, 한반도 문제 등의 이슈가 중국의 국가 핵심 이익에 포함되었다. 이는 중국의 강대국화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봉쇄가 강화될수록 중국 외교가 더욱 공세적으로 전환될 것임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결국 현재 중국이 보여주는 행보는 원천적으로 국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국가의 욕망이 강대국화와 맞물려 향후 더 많은 국가와 갈등을 초래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중국은 현대 국가 수립 이후 상대국 주권 존중, 내정불간섭, 상호 이익 추구 등을 명문화한 중국 5대 외교 원칙을 근거로 서구 강대국 외교와 자국 외교의 차별성을 강조해왔다. 또한 마오쩌둥이 주창한 3개세계론에 기반한 비동맹외교 전통과 오늘날 중국 외교의 주요 축을 형성하고 있는 개발도상국 외교, 주변국 외교, 공공외교 등을 사례로 들며 국제 사회에 대한 중국의 공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매번 강조하는 외교 수사학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이 진행한 팽창주의와 자국 이익 중심의 외교가 발생시킨 부정적 결과에 대한 반대급부 성격을 지닌 것이지만 서구의 식민지를 경험한 비서구 개발도상국의 지지를 받으며 국제무대에서 적지 않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 외교는 서구 강대국과 다른 형태의 길을 걸을 것인가? 이를 논의하기 전에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이전 다른 국가의 외교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 강대국 중 중국이 주창하는 타국에 대한 내정불간섭 외교정책을 추진한 국가가 부재해야 한다. 먼 과거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현재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중국의 미래를 투사해 볼 수 있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후 인류 최초의 공화국을 건국한 미국의 설계자들은 미국 외교의 첫 원칙으로 고립주의를 명문화했다. 미국의 고립주의는 미국과 유럽이 각자의 영역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상호개입하지 않고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제기됐으나 실제로는 유럽 강대국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목표로 고안됐다. 이후 고립주의는 미국의 상선이 독일의 공격을 받고 좌초해 직접적인 참전을 결정하게 된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미국 외교의 핵심 원칙으로 작동했다.


고립주의는 신생 국가인 미국이 대외적으로는 유럽의 간섭을 배제하는 명분을 확보하고 대내적으로는 부국강병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는데 국제정치 시각에서 해석할 때 이는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이 불필요한 해외 개입을 통해 국력을 소진할 요소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강대국화는 필연적으로 해외 무역, 투자, 비즈니스와 관련된 수많은 이해당사자를 창출하게 된다. 이 과정은 또한 유럽 대륙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증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고립주의는 결국 스스로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개입하게 되면서 종결을 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은 외교 노선을 국제주의로 전환하면서 국제문제에 적극적인 개입을 시작하는데 이는 미래 중국 외교의 방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지렛대를 제공한다.


중국은 무역, 투자, 비즈니스에서 점점 더 많은 이익상관자로 대두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이후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담보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들 중 적지 않은 국가가 정치 불안정, 경제적 낙후성, 재정 불건전성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유사시 중국이 자국 핵심 이익의 구성 요소인 인력, 자본, 기술을 보호하고 지정학적 이익을 고수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가 군사 행동 이후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행보에 자신감을 가진 배경에는 미국이 말라카해협을 봉쇄했을 때 인도양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핵심 루트인 방글라데시-중국-인도-미얀마 경제회랑의 안전성 확보에 대한 중국의 관심을 꿰뚫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외에도 2017년 재정적 부채를 이유로 일대일로 대상 국가인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조차한 행위나 동부아프리카의 최빈국인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구축하는 모습은 국제문제에 대한 중국의 개입이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과정에 돌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대일로 연선에 위치한 대부분의 개도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의 개입 사례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 대상국이다. 하지만 사드 사태에서 확인됐듯 중국이 한국의 국익을 위해 자국의 이익을 희생시킬 가능성은 없다. 이는 중국이라는 국가가 부정적인 속성을 지녀서가 아니라 국가라는 행위자, 특히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국가의 근본적 속성과 관련된 것이다. 앞서 언급된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나 중국의 내정불간섭 원칙은 대외적 개입을 위한 충분한 국력을 확보하기 이전까지 외교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대국이 취한 공통된 전략이었다. 하지만 미국 외교의 변천 사례와 점차 강화되는 중국의 공세적 외교는 시간이 경과 할수록 한국과 중국이 점점 더 많은 갈등에 직면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마오쩌둥이 제3지대를 언급하며 냉전 기간 미국과 구소련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시도했거나, 덩샤오핑이 향후 100년 동안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던 과거와 달리 현재 중국은 미국에 맞서 주도권을 다투는 행위 주체로 대두하고 있는 사실이다.


국제정치 역사는 모든 국가가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조건과 기회를 공평하게 보유하고 있지 않은 현실의 냉엄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비강대국이라도 세계사의 전환점에서 뛰어난 외교적 선택으로 생존과 번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명민한 역사의 교훈을 동시에 전해주고 있다. 약 250여 년의 지난 세계사의 흐름은 인류가 절대왕정, 파시즘, 군국주의, 공산주의라는 공동의 적과 맞서 싸워 승리한 영감의 원천이 자유주의 사상과 가치에 기반한 동맹에 있었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은 엄습하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태풍의 ‘눈’에 자리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닥치기 전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이념에 기반한 공통의 비전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이 공헌할 수 있는 바와 이로 인해 획득할 수 있는 장기적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함명식

중국 지린대학 공공외교학원 부교수
중국 지린대학 국제관계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