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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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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용상] 코로나 슬라이드와 교육 당국의 역량

작성일 : 2021-07-14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코로나 슬라이드와 교육 당국의 역량


지난 6월 2일 정부는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결과를 발표하였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교교육의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매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전국단위 표집을 통해 국어, 영어, 수학 교과 등에서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을 점검하는 평가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는 학업성취 수준에 따라 학생들을 ‘우수’, ‘보통’, ‘기초’, ‘기초학력 미달’로 분류하고 있으며, 정부는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보장하기 위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번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결과 발표에서 주목할 점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학생들의 학습결손을 실증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점과 학습결손을 회복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대응 방향 및 전략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요컨대,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결과를 살펴보면 모든 과목에서 2019년에 비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증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학습결손의 문제가 정서적 결손의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가칭 교육회복 종합방안(프로젝트) 추진을 비롯한 일련의 정책을 발표하였다.


학습결손의 문제는 비단 코로나19로 인해서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여름방학이 긴 미국에서는 여름방학 동안 발생하는 학생들의 학습결손을 ‘서머 슬라이드(summer slide)’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와 같이 코로나19 이외의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학습결손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는 학습결손 즉 ‘코로나 슬라이드(COVID slide)’에 주목해야 하는가? 이유는 분명하다. 장기적인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광범위한 학습결손과 그 결손의 불평등 현상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각급 학교가 전면적으로 온라인 비대면 수업을 실시하자 정부와 연구 기관들은 온라인 비대면 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실태 파악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전국 교사, 학생, 학부모 총 857,389명을 대상으로 원격교육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사 결과 중 주목할 만한 사항은 교사의 79% 정도가 원격교육 이후 학습 격차가 심화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다른 연구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학습 격차 심화의 문제는 부모의 지원과 사교육의 도움 정도 등에 따라 원격교육에서의 학습결손의 문제가 차별적으로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가정에 원격교육을 위한 인프라(인터넷 접근성, 원격교육 장비 등)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한 소외계층의 학생들에게 좀더 심각한 학습결손이 발생함에 따라 학습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보다 면밀한 실증 연구를 통해 학습 격차 심화와 그 원인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질 필요는 있지만, 지금까지 조사되고 발표되는 자료들을 보면 학습 격차 심화가 가능성의 차원을 넘어 실재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많은 평생학습 연구들은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습 격차가 대학교육 이후 평생학습 단계에서 불평등 문제로 연결됨을 지적하고 있다. 평생학습에서의 불평등은 경력 개발이나 진로 설정에서 모두가 동일 선상에 있지 않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초·중·고등학교 단계에서의 격차 문제가 평생에 걸쳐 지속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코로나 슬라이드로 인한 학습 격차가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항구적인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교육에서 격차나 불평등의 문제는 항상 민감하다. 그 어느 누구도 본인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 때 격차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를 인정하는 순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이나 역량에 있어서 지역간 격차나 학교간 격차 문제는 항상 국민의 관심을 받는 이슈이다 보니 이러한 격차가 드러날 수 있는 진단에 대해 다소 소홀하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예컨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전국단위 표집으로 시행하는 정부 차원 학업성취 평가이다. 이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을 판별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지만, 정작 기초학력 미달 여부에 대한 조기 진단 및 처방이 필요한 초등학생은 2013년부터 평가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제대로 된 방안을 마련되기 위해서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우리 모두 주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학습결손에 화들짝 놀란 정부는 결손 회복을 위한 정책을 서둘러 내놓고 있지만, 정부는 당면한 결손만 보지말고 이를 진단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지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성급한 처방에 앞서 진단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며, 체계적인 진단 시스템 구축에 역량을 집중할 때이다.


유은혜 부총리는 코로나19로 인한 학습의 결손은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이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국가역량의 차이라고 공언하며 문제 해결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환난은 언제든지 모든 국가에 올 수 있지만 이와 같은 환난을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국가역량에 달려 있다. 코로나 사태가 교육 당국의 역량을 보여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용상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영남대학교 교수, 교육혁신연구부장
한국교육평가학회 이사, 개인정보보호법학회 이사
前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기획분석실장
前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UC Berkeley 교육 측정 평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