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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진] 사라진 미래 과제 0순위, 공적연금 재정안정화 개혁

작성일 : 2021-09-16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사라진 미래 과제 0순위, 공적연금 재정안정화 개혁


양재진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중장기 일기예보는 신뢰하기 어렵다. 주식시장 전망도 그렇다. 그러나 한가지 신뢰할 수 있는 전망이 있다. 바로 인구 추계다. 출산율과 평균수명의 간단한 함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출산율이 떨어져 생산인구가 준다. 반대로 평균수명은 늘어 노인인구는 증가한다. 그런데 출산율 떨어지는 속도가 더 가파르기에 총인구는 줄어든다. 생산인구가 빠르게 감소해 총인구가 줄어드는데도 노인인구는 늘어나기에 생산인구가 감당해야 할 노년부양비는 많이 늘어난다. 노년부양비란 15~64세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고령자 수를 의미한다. 이 노년부양비가 2020년에 22.4이다. 2040년에는 61.6이 된다. 2065년에는 노년부양비가 100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인구 100명에 노인인구가 100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15세부터 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7~8년 후인 20대 초중반에 생산활동에 나서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노년부양비는 통계상의 수치보다 높다. 게다가 통계청의 전망에는 최근 또다시 급락한 출산율 0.84가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 생산인구는 더 빨리 감소하는 것이다.


인구고령화는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에 직격탄을 때린다. 생산인구가 납부하는 연금보험료와 일반 세금으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현재 9%인 보험료가 2060년에는 29.3%가 돼야 연금제도가 유지된다. 2070년에는 34.7%가 돼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또한 출산율 1.05를 가정한 추계다. 출산율 0.84를 상정했다면, 필요 보험료율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보험료만 30%, 여기에 건강보험료와 각종 사회보험료를 더하고 나면 소득의 50%를 사회보험료로 내야 할 처지다(고용주 기여분 포함 시). 국방과 치안, 교육, 교통 등 인프라 건설과 유지 때문에 걷는 소득세 등 일반 세금 또한 줄어들 리 만무하다. 생산인구가 줄어드니 세금 낼 사람도 줄기 마련이고, 세율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세금까지 생각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무작정 30% 이상 내게 할 수는 없다.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복지선진국들도 벌써 연금 보험료가 20%에 이른다. 그러나 법적으로 현재의 보험료를 상한으로 설정하고, 더 보험료가 인상되지 못하게 못을 박았다. 대신 평균수명이 증가하게 되면 연금액이 자동으로 삭감되도록 연금제도를 손보아 놓았다.


스웨덴의 연금개혁은 여러모로 모범적이다. 첫째, 사적연금에나 적용되었던 확정기여방식(Defined Contribution)을 국민연금에 도입했다(공식 명칭은 소득연금, Income Pension이다). 자신이 낸 보험료 총액과 이자만이 더해진 연금자산을 평균 잔여 여명으로 나눠 연금을 받는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자동으로 연금액이 줄어든다 (더 오래 받으니, 사망 시 까지 받는 연금총액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국민들은 우리나라처럼 내는 것과 상관없이 받는 것만 권리로 주장하지 못한다. 자기가 낸 것에 이자 더해진 것만 연금 받을 거로 생각한다.


둘째, 이런 연금개혁을 기금고갈이라는 폭탄이 터진 후에 단행한 게 아니다. GDP 대비 30%나 되는 거대한 연금기금을 가지고 있을 때, 개혁에 착수했다. 스웨덴 인구학자와 연금학자들의 경고를 여·야 정치권이 미래를 위해 받아들였다. 여·야 5개 정당이 연금개혁위원회에 참가하고, 선거 쟁점화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총선 전에 합의 처리했음은 물론이다. 보수정부에서 만든 연금개혁안은 사민당 정부에서 시행안을 확정해 1999년에 집행했다.


셋째, 자기가 내고 자기가 받아 가는 시스템으로 전환했지만, 그렇다고 저소득 노인들의 처지가 나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 보험료가 아닌 일반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초연금을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방식으로 바꾸어 저소득층일수록 높은 연금을 받게 바꾸기 때문이다(공식 명칭은 기초보장연금, Guarantee Pension이다). 전에 50여만 원 수준의 기초연금을 약 100만 원까지 연금액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기초연금에 들어가는 재정이 더 많이 증가한 것은 아니다. 과거 전체 노인에게 똑같이 50만 원씩 주던 것을 하위 40% 정도의 노인에게 두툼하게 보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보편주의에서 선별주의로 바뀐 것이지만, 국민연금과 짝으로 생각하면, 체제 수준에서는 보편적인 노후소득보장제도를 완성한 것이 된다. 중산층에게는 천년만년 지속가능한 연금을, 저소득 노인은 더 높은 연금을 받게 해 모든 노인의 노후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으로 인구 고령화에 따라 늘어만 갈 뻔했던 자녀 세대의 부담을 덜다. 연금보험료를 18.5%로 고정해 더 인상되지 못하게 법에 명시하고, 기초연금은 저소득 노인에게만 지급하는 것으로 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연금개혁으로 손해보는 집단은 은퇴를 얼마 남지 않은 중년층 가입자들이다. 보험료를 더 낼 필요 없이 평균수명이 늘어나도 정부가 약속한 연금액을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기존 가입자의 연금액이 떨어진다고 공산계열의 좌파당이 반대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와는 달리 미래 세대의 부담도 내다보고, 국가 경제도 생각하는 스웨덴 중앙 노조의 묵인하에 스웨덴 정치가들은 연금학자들이 천년만년 지속가능하다고 자랑하는 확정기여방식의 국민연금제도를 만들어 내었다.


우리도 공적연금의 재정안정화 개혁을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단행해 왔다. 김영삼 정부 때 국민연금 보험료를 3%에서 6%로 올리고, 김대중 정부 때 이를 다시 9%로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은 60%로 하향시켰다. 노무현 정부에서 소득대체율을 2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40%로 낮추고 연금지급 연령은 60세에서 65세까지 높이는 개혁안도 통과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 연금개혁을 통해 보험료를 18%까지 올리고, 급여는 낮추었다. 스웨덴이나 독일처럼 자동안정화 장치까지 삽입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재정안정화 개혁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힘든 발걸음이지만 한 발짝이라도 내디뎠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공적연금의 재정 안정화 개혁 노력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권 주자들이 저마다 공약을 선보이지만, 자녀세대의 미래를 위해 재정 안정화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정치가는 보이지 않는다. 재정 안정화 개혁이 유권자들에게 인기없는 비인기 정책이라 그럴 것이다. 대선 이후에는 상황이 바뀔까? 대한민국의 미래와 자녀 세대도 내다보며 정책을 구상하는 큰 정치가가 대통령이 되고, 여·야가 함께 지혜를 모으는 상상을 해본다.





양재진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사회보장위원회 평가위원회 위원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양극화해소와고용 위원회 공익위원
前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