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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성호] 교육계의 미래를 위한 제언

작성일 : 2021-11-30 작성자 : 통합 관리자


교육계의 미래를 위한 제언


교육은 기본적으로 가치를 전제로 하는 인간의 행위다. 즉 교육목적, 방법, 내용 등 모든 것들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기준에 의해 우선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교육계에 대해서는 재계나 정계에 비해 높은 청렴성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교육계가 비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으며, 종종 세간의 화제가 되는 충격적이 비리 사건들이 폭로되는 경우가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교육계의 비리는 대개 선발, 채용, 승진, 포상 등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과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교육계의 한 비리 사건을 통해 우리 교육계의 잠재적 비리 유발 요인과 비리 근절 대책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하이힐 폭행 사건’이라는 듣기에도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내용인 즉, 장학사들이 새벽까지 술좌석을 가지다가 사소한 말다툼 끝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하이힐로 폭행한 것이었다. 단순한 화젯거리 정도로 여겨졌던 이 사건은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간 괴담 같이 나돌던 교육계 일부의 비리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일단 이 사건은 서울시 교육청 장학사 1명이 교사 2명으로부터 장학사 선발시험에 합격시켜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그 전모가 밝혀지면서 해당 장학사는 구속되고 교사들은 불구속기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후 장학사 선발과 관련된 또 다른 비리가 적발되고, 학교 공사 수주를 둘러싼 뇌물수뢰가 밝혀지는가 하면, 장학관ㆍ교장ㆍ교감 등의 부정 승진이 폭로되는 등 교육계 비리의 백태가 속속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그 당시 교육계의 이러한 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도덕적으로 가장 결함이 없어야 할 교육계에서 이 같은 비행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노출된 비리들은 몇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 빚어낸 일과성의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라는 점, 그리고 이러한 비리에 의해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교사들의 정당한 승진체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계 전체에 청산하기 어려운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물론 이 사건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우리들의 뇌리에서 망각되어 갔지만, 그렇다고 이 같은 비리들이 완전히 발본색원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며 아직도 이러한 비리를 유발할 요인들은 우리의 교육행정 체제에 잠재해 있는바, 아래에서 이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한다.



교육계 비리의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교육행정기관이 향유하는 막강한 권력과 인사상의 특혜다.


현재 교육부-시ㆍ도 교육청-구ㆍ군 교육청 식의 다단계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행정조직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복잡하고 중첩되는 부분이 많다. 이렇게 비대한 조직 자체도 문제려니와 교육행정기관의 고유한 기능이 단위 학교에 대한 규제와 간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결국, 교육행정조직의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힘까지 강하다 보니 비리의 소지가 생기게 된다. 즉 이처럼 큰 힘은 이권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힘 있는 자리에 가기 위해 부정한 방법의 동원도 불사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비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를 최우선시해야 할 학교는 상급 교육행정기관의 눈치부터 살피고, 수업에 전념해야 할 교사들은 교과부나 교육청으로부터 하달되는 각종 지시사항을 챙기고 공문을 처리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일이 아직도 목도되고 있다.


장학사나 장학관 같은 소위 ‘전문직’에게 부여되는 인사상의 특혜 또한 비리의 한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일부 교사들이 장학사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출세’를 보장해 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학사나 장학관도 우리 교육에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현장에서 이십 수년 이상 아이들을 기르는데 헌신한 평교사들을 제치고 초고속 승진을 한다면, 이는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계속 인사 비리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시ㆍ도 교육의 인사권, 예산권, 운영권 등 교육 전반에 관해 거의 무소불위의 권한이 교육감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러한 교육감이 선출직이라는 사실이 교육계의 비리를 부추길 수 있다. 더욱이 교육감이 되기 위해 직업 정치인들 간의 경쟁을 무색하게 하는 현행 선거체제 하에서는 비리 발생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교육감으로 당선된 후 자신의 당선을 도운 주변의 '공신'들에게 논공행상식의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각종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목도한 바 있다. 모름지기 학부모와 학생들의 기대를 최우선시해야 할 교육감이 ‘제사보다는 잿밥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면 비리의 근절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계 비리의 근절을 위한 방안으로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현재처럼 비대한 교육행정기관들의 축소화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들의 경우, 우리의 구·군 교육청에 해당하는 조직에는 불과 3-5명의 직원이 존재하며 사무실 또한 중ㆍ고등학교 교장실 근처의 방 하나에 불과하다. 즉 최소한의 인력에 최소한의 공간만을 활용한다. 불필요한 규제나 간섭이 없기에 그에 필요한 인원이나 시설 또한 간소하다.


교육행정기구의 축소로 인한 일자리의 소멸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현재 규제와 간섭에 소요되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인력을 학교 현장의 교육활동을 보완하고 강화하는데 전용하면 된다. 오히려 교육부나 교육청의 전문 인력이 학교에 복귀함으로써 교육현장의 인적자원이 풍성해질 때 학교 교육이 더욱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육행정조직의 기능을 규제에서 지원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고 인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은 결국 학교이다. 교육부나 교육청 같은 기관은 학교 교육이 보다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도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교과부와 교육청은 이제까지 누려온 관치의 기득권을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한다. 규제가 지원으로 전환될 때 교육은 선진화되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품격 또한 높아진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자신들의 역할이 통제나 지시가 아닌 지원으로 전환된 지 오래라고 강변할지 모르나 교육일선의 실상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 아울러 개별 학교의 권한과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학교의 자율성은 책임의식 즉 책무성과 직결된다. 개별 학교의 예산에서부터 인사는 물론 교육활동까지 광범위한 자율성을 보장해주면서 그 결과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해당 학교에 묻는 체제의 정착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서구의 선진국들은 물론 아직도 행정부의 권한이 막강한 중국에서조차도 개별 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행정의 효율성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이다. 학교의 자율성이 신장되고 책무성이 강회되면 그 경영 및 재정은 투명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른 비리의 소지도 자연히 줄어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급한 것은 교육감의 막강한 권한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교육감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 물론 군대식의 상명하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감을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지방 의회뿐인데 지방 의회가 현재 이렇게 막중한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장학사나 장학관 같은 교육전문직을 교사 출신이 아닌 교육행정전문가에게 일부 개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물론 교사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렇게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상이한 집단 간의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고, 아울러 이들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교육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끝으로 교육계 비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교육계의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단견적인 입법 포률리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교육을 걱정하는 입법부의 충정은 십분 이해한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통념 또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안이 교육계의 비리에 대한 가중처벌법처럼 적용된다면 이는 위헌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교육계 종사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비리에 대한 일벌백계도 의미 있지만 체제나 제도의 개선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 본인의 견해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교육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수한 정렬과 고도의 전문지식으로 무장하고 후진의 양성에 헌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계는 비리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영역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교육행정권이 중앙과 지방정부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는 비리의 위험성은 상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다수결이나 선거제도가 아니라 권력의 집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이라는 것을 특히 우리나라의 위정자들과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힘이 집중되는 곳에 비리는 항상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끝으로, 교육계의 도덕적인 리더쉽 또한 제도 개혁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계와 재계의 현실적인 지도력은 권력과 부를 바탕으로 한다지만, 교육계의 리더쉽은 권력도 부도 아닌 존경과 신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교육계의 인사들도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그들은 타인에게 귀감을 보임으로써 존경과 신뢰를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