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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허은녕] 탄소중립 선언과 미래세대를 위한 준비

작성일 : 2021-12-14 작성자 : 통합 관리자


탄소중립 선언과 미래세대를 위한 준비


탄소중립이 올해 급작스럽게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약의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선언이 탄소중립 선언이다. 탄소중립 선언은 2019년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국가들이 시작하였으며, 작년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도 2050년에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하였다.


탄소중립선언이 기후변화협약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은 기후 및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도나 규제의 성격에 더하여 무역장벽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소련의 멸망과 WTO(세계무역기구)의 설립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3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자유무역’ 중심 국제질서에 제동을 걸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보호무역 또는 무역장벽의 좋은 수단으로 탄소중립 선언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무역 열풍에 올라타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을 확대하여 지금의 무역 대국의 위상을 확보한 우리나라로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탄소중립선언은 우리의 주요 시장인 선진국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어서 더더욱 심각하다. 선진국들은 그럼 왜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걸까?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OPEC에서의 석유 수입을 줄여서 에너지 안보를 높이고 동시에 기후변화협약에도 대응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10여 년만에 모두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다. 미국은 이미 에너지수출국이 되었으며, 유럽 역시 에너지를 대부분 자급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유럽 모두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미국과 유럽이 21세기 들어 추구한 정책들은 상당히 다르고 그 결과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두 가지 대표적인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유럽과 미국 모두 자국의 기술개발을 중심에 두고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또 기술개발의 성공으로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다는 점이다. 유럽의 에너지 절약 기술 및 재생에너지 기술, 미국의 셰일가스 기술 등이 대표적인 기술들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자국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을 기본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의 북해유전과 프랑스 원전, 미국 및 캐나다의 천연가스 및 셰일가스가 그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유럽은, 작년 말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자 자국에 유리한 국제무역 질서를 만들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기후변화협약보다 더 강한 선언인 탄소중립 선언을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기후변화협약(climate change convention)은 국가(정부) 간의 협약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탄소중립 선언은 그러나 개별기업을 노리고 있다.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Adjustment)의 추진, 그리고 RE100(재생에너지100%),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제도들은 국가(정부)가 아니라 개별기업에 대한 금융권의 평가와 투자에 개입하여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선진국이 장악한 금융권을 활용하여 개별기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만든 것이다. 중국, 한국, 일본, 대만과 같이 무역으로 먹고 살지만 부존자원은 빈약한 나라들이 주요 대상이 된다.


선진국들은 또한 지난 20여 년간 개발에 성공한 에너지기술을 활용하여 그런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이를 무역장벽으로 활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 유럽의, 자국 영토 내에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시설의 공장을 지으라는 요청은 단순한 투자의 기회 제공이 아니라 한국 영토 내에서는 RE100이나 ESG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자기네들은 이걸 모두 만족하는 나라이니 그리 옮겨 와서 생산하고 고용하라는 것이다. 한 세대 이전에 국내 인건비가 비싸서 한국 기업들이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옮겨간 기업의 엑소더스가 이제 비싼 에너지 비용으로 인하여 한 번 더, 게다가 수출중심 기업들을 중심으로,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의 Brexit 문제로 인한 영국의 휘발유 대란, 미국과 중국 간의 분쟁으로 인한 호주 석탄 수출금지와 이로 인한 중국의 전력 대란, 한국의 요소수 문제 등은 모두 보호무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들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경제정책은 70년대 small-open economy를 가정하고 만들 때의 수준과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자유무역 시대의 정책만을 가지고 있다. 자유무역 시대의 정책을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요소수 사태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며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들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탄소중립의 난제를 해결하고 미래세대들에게 지난 20세기 후반과 같은 경제성장의 기반을 물려주기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만드는 새로운 원재료 밸류체인(value chain)이다. 기존의 중국 중심의 원재료구매 패턴에서 벗어나 우리와 새로운 동맹을 맺을 나라에 우리가 투자하는 원재료 밸류체인을 새로이 만들어야 한다. 동남아 국가들은 대표적인 좋은 후보들이다. 광물도 에너지도 풍부하여 RE100, ESG를 하기에 충분하지만 기술이 부족하기에 우리와 연계하고 그 연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몽골과 러시아도 좋은 대상이다. 인구는 부족하고 기술도 모자라지만 에너지와 자원이 풍부하여 역시 탄소중립 문제를 해소하는 데 유리하다. 이러한 밸류체인이 형성되면 국내 기업은 한국에 남아서 한국인을 고용하면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미래에 필요한 에너지 인프라의 투자를 과감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매켄지가 제안한 유럽의 주요 감축 수단을 보면 전기로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들을 모두 전기로 바꾸고 전기의 생산에서 이산화탄소배출을 없애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이(44%) 활용될 수단임을 확인할 수 있다. 휘발유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이는 에너지원의 전환만으로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전력공급량이 지금의 2~3배 이상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총 에너지사용량 중에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조금 모자란다. 그러니 나머지 80% 중 절반만 전기로 바꾼다고 하여도 현재의 국내 전력 시스템, 즉 발전, 송전, 배전시설을 현재의 3배로 늘어야 한다. 쉽게 설명하면 앞으로 발전소가 거의 시, 군, 구 단위마다 하나씩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엄청난 양의 송배전 시설도 함께 말이다. 그런데 이들을 언제, 어디에, 어떤 설비로, 누구의 자본으로 건설할 건지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다.


앞으로 30년의 기간 동안 에너지 인프라를 새로 건설하는데 이들을 예전과 같이 정부와 공기업이 할건지, 아니면 민간기업에 권한을 부여하고 투자하게 할건지, AI, 빅데이터 등 4차산업혁명 신기술과의 연계는 어떻게 할 건지 등 세부적인 이슈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도 결국 국가가 얼마나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구현해 나가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원재료 밸류체인과 인프라 건설, 그리고 기술개발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다. 미국과 유럽이 전략이 다르지만 모두 자국을 중심으로 하는 벨류체인의 완성과 기술개발의 성공, 그리고 새로운 인프라 투자를 바탕으로 성공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탄소중립 시대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혁신산업을 육성하는 측면에서도 이들 조건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허은녕 (許殷寧, Eunnyeong HEO)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한국혁신학회 회장
The Energy Journal editor
기획재정부 배출권할당위원회 위원
국회 기후변화포럼 부설 기후변화정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