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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신현영] 대형참사 이후 검시체계·시스템 선진화 필요성

작성일 : 2022-12-01 작성자 : 통합 관리자




대형참사 이후 검시체계·시스템 선진화 필요성



늦가을 밤이 깊어지던 날, 골목길을 덮친 10.29 참사는 158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뜻밖의 비보에 황망해진 유가족들은 어쩌다 우리 자녀와 형제, 자매들의 생명이 꺼지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경을 헤매던 당시의 현장 상황은 물론 구조와 응급처치 그리고 이송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최대한 면밀히 파악하고 싶을 것이다.


참사 희생자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의 추적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유가족의 한을 풀어내는 계기를 마련하고, 사회적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것을 넘어 각종 재난과 대형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근거자료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경과는 국가가 답변해야 한다.


10.29 참사 발생 직후 필자가 확인한 현장은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유가족은 황망한 마음으로 시신을 이양받았고 검안과 화장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리는 그 당시 수습 과정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인가?


전문가들은 강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우리나라의 검시 제도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허술한 과거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이번 참사에서도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낙후된 시스템에 따른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자격을 가진 전문가가 제대로 검시하고 의학적 소견을 남기지 않으면 사망한 한 분 한 분의 상황을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실제‘압사’로 분류되는 경우, 구체적인 사인은 달라질 수 있다. 외상성 질식 이외에도 경부압박성질식, 비구폐색에 의한 질식, 흉복강 내 장기 파열 등을 포함해 각기 다른 신체 위해 상황이 구조, 이송, 응급처치 과정에서 발생하지는 않았었는지, 좀 더 빠른 처치가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는지 우리는 죽음의 원인을 세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법의학자들이 부검감정서를 통해 남긴 기록에는 사망자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의학적 증거로서의 사고원인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정교한 검안이 이루어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서도 시신 손상에 대한 검사와 기록은 최소한으로만 남긴 채 장례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10.29 참사 당일 현장 기록 및 보전을 위해 정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투입을 요청하지 않았다. 올해 경찰과 국과수를 포함한 여러 기관은 재난 상황을 대비한 사전 모의 훈련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참사에서 법의학적인 접근을 위한 기관 사이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과수 내에 정립된 프로토콜은 전혀 활용되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희생자들이 사망에 이르는 구조적인 원인을 법의학적 측면에서 살펴보는 데 한계가 뚜렷했다. 한 분 한 분의 의료기록 및 사망 후의 검시 기록의 미비도 뒤따랐다. 결국 참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는 경찰과 검찰, 법원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졌다. 유류품 복원 등도 어려워져 사고원인을 둘러싼 전문적인 판단과 근거는 배제되고 그 자리에는 유족과 경찰에 의한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각종 재난과 대형참사 발생 이후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 과정에 법의학자가 주도적,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그러자면 검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검시법을 제정해 선진적인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근거자료를 축적해야 한다. 모든 사망자에 대해 부검을 일일이 시행하자는 것은 아니다. 사후 X-RAY나 CT와 같은 영상의학적 소견들, 혈액학적인 검사를 통해 시신에 대한 정보를 좀 더 객관적으로 취득할 수 있어야 한다. 유가족들에게는 적어도 추가로 의학 근거자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이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추후 국가 소송 등 여러 법적, 도의적 책임을 가릴 때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참사, 세월호 참사 등 여러 아픔을 겪으면서 재난 프로토콜을 발전시켜 왔다. 이에 더해 이제는 검안시스템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각종 참사 이후 죽음의 원인이 은폐되는 억울한 상황을 방지하고 예방 가능한 재난에 대해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의 길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시급히 제도를 개선해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를 구축하는 데 총력을 모을 시기다.


펜을 드는 지금, 코로나 백신 피해 유가족들의 호소가 떠오른다.


“부검을 할 수 있다거나 부검해야 한다는 말씀을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제공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원인 규명이 되어야 보상해준다는 이야기가 말이 됩니까?”


억울한 죽음을 막고, 억울한 죽음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 국회의원으로서 필자의 역할도 잊지 않을 것이다.





신현영

현) 21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비례대표)
현)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특별위원회 위원장
전)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한양대 의과대학 조교수
전) 한국여자의사회 이사
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겸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