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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미래야,어서와!] 다섯 번째 칼럼: 비플(Beeple) 현상 - 단 하나의 기억을 봉인한다면?

작성일 : 2021-03-30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다섯 번째 칼럼: 비플(Beeple) 현상 - 단 하나의 기억을 봉인한다면?




글.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최근 6천9백만 달러(한화 781억원)에 팔려나간 그림에 관한 얘기를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한 화가의 그림이 지난 3월 미국 미술품 경매 역사상 현존하는 화가의 작품 중 세 번째(제프 쿤스의 Rabbit, 데이비드 호크니의 Portrait of an Aritst에 이어 세 번째)로 비싼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이었다. 화가의 이름은 마이크 윈켈만(Mike Winkelmann)인데, 작품 활동은 비플(Beeple)이라는 이름으로 한다. 디지털 아티스트로 불린다.

비플은 2007년부터 ‘에브리데이스(Everydays)’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사회 풍자적인 디지털 그림을 선보였다. 비플은 그림을 통한 정치적 풍자에 관심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정치는 엉터리(Politics is bullshit!)’라는 작품이다. 미국 국기를 두른 황소가 계속 똥을 싸는 모습을 담았다. 그는 이 작품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블록체인 기술 중 하나로 불리는 Non Fungible Token(NFT, 대체불가 토큰)을 적용해 그의 그림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 기술은 MP3, JPEG, Tweet, 농구게임의 비디오 클립 등 디지털 자산의 소유를 증명하는데 사용된다. 토큰마다 다른 가격을 매기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아이템을 만들 때 이 기술을 적용한다. 가상화폐 중 하나인 이더리움의 네트워크도 이 기술을 적용해 가상화폐의 소유와 고유성을 증명한다.

비플이 이 기술을 적용해 그의 작품을 팔 수 있는 데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생태계가 있어서 가능했다(Nifty Gateway나 Super Rare 같은 곳이 거래시장이다). 미국의 미술품 경매소는 NFT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취급하며 작품의 소유주가 바뀔 때는 원작가에게 판매금액의 10%를 지불한다. 지난 3월 한화 781억원에 팔린 비플의 작품은 ‘The First 5000 Days’이라는 작품이었고, NFT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이 작품을 매입한 곳은 싱가포르 소재의 비트코인 업체였는데, 경매 직후 이 업체의 대표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플의 이력이 궁금해 그를 인터뷰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는 사실상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받은 미술 수업이 전부였다. 미국 퍼듀대학의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작은 웹캠으로 짧은 영상을 찍고, 이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디자인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푹 빠져들었다. 뉴요커의 한 미술평론가가 그에게 “당신의 작품은 추상적 표현주의처럼 느껴진다”고 평가하자 비플은 “그게 도대체 뭔데!”라고 받아쳤다. 마치 자신의 작품을 어떤 미술사조와도 견주지 말라는 뜻인 것 같고, 자신은 근본없는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것도 같았다.

그가 적용한 NFT의 의미를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예컨대, 미술품이 암호화폐로 등장하고 있으며, 다양한 암호화폐의 등장은 탈중앙화 금융(DeFi)의 흐름에서 강화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의 통화감독원은 미국의 은행들이 블록체인망을 통해 결제가 가능하도록 했고, 은행이 직접 법정화폐를 담보하는 방식으로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도 허용했다. 금융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탈중앙화 금융의 본격적 전개로 해석한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렇듯 디지털 화폐에 관심을 쏟고 있는 이유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디지털 위안화(DBDC) 사용을 허용하면서 미중의 디지털 화폐경쟁이 촉발되었다고 본다. 어쨌든 비플의 그림이 막대한 금액에 팔린 사건의 이면에는 이처럼 새로운 경제 시스템과 기술, 국제관계가 얽혀있다.

여기에 환경 이슈까지 더해서 생각하면 또 다른 미래가 등장한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는 채굴하고 유통하는데 많은 전기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하나의 이더리움이 유통되는데 사용되는 전기는 유럽의 한 가정이 소비하는 4일치의 전기량과 맞먹는다는 계산도 있다. 전기에너지는 사용의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어 기후변화 대응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비플 현상이 기술과 경제, 국가간 경쟁체제에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나 자연환경에 어두운 미래도 살짝 드리우고 있다. 모든 새로운 현상에는 기회와 손실이 동시에 발생한다. 우리의 앞날에 긍정적인 기회라면 취해야 하고, 부정적인 요인이라면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멈춰야 한다. 그러나 사회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해 어떤 현상이 기회인지, 손해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이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플 현상으로 추론해볼 수 있는 미래는 유일무이한 데이터가 돈이 된다는 점이다. NFT의 핵심도 아이템의 고유성을 보증해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첫 트위트 계정 오픈 멘트, 어느 유명 가수의 마지막 노래, 미발행된 어느 유명 시인의 시 낭독 장면 등 과거의 유일무이한 기억과 족적이 기술로 봉인되어 판매되는 시대이다.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것을 찾아내어 가격을 매기는 인류의 취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야, 너는 어떤 기억을 영원히 봉인해서 갖고 싶니? 그 봉인된 기억이 너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가치가 되고 희망을 주는 것이라면, 그런 기억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원문 : http://www.womaneconomy.kr/news/articleView.html?idxno=100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