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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왜 우리나라 자살예방은 효과가 없었을까

작성일 : 2021-07-13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이데일리] 왜 우리나라 자살예방은 효과가 없었을까






지난해 코로나19로 사망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학생은 140명이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917명이었다. 자살자는 1만3799명으로 코로나19 사망자보다 15배 많았다.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라는 언론 보도는 일상이 됐다. 한국은 언제부터, 왜 자살공화국이 됐을까.


국회 미래연구원이 지난 7일 발간한 ‘높은 자살률,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국민 통합 관점에서 본 한국의 자살률’ 보고서는 사회 변동과 자살률의 관계가 깊다고 지적한다. 자살은 사회적 재난인 셈이다.


노인·20대 여성 자살률 심각…자살 사별자 자살률은 평균 6~8배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중후반에는 2010년대 자살률의 절반 수준이었다. 통념처럼 ‘IMF 위기’가 자살률의 상승을 촉진한 것은 맞지만 상승 추이는 이미 1990년대에 시작됐다. 앞선 1960~70년대에도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자살률이 높았다. ‘권위주의 산업화’ 국면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자살률이 높았다. 최근 자살률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전 연령대에서 나타나고 있다. 10~30대 연령층에서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한국은 10대에서 80세 이상의 모든 연령층에서 OECD 전 연령대 자살률 평균보다 높다. 특히 노인층 자살률은 OECD 회원국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다. 최근 연도 OECD 회원국 노인 70세 이상 자살률 평균은 19.6명, 한국은 59.4명이다. OECD 노인 평균 자살률보다 약 3배 이상 높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의하면 자살 사망자 수는 남성(72.1%)이 여성(27.9%)보다 높으나 자해·자살 시도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높다. 특히 20대 여성의 전체 자살 시도자는 32.1%로,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다. 1990년도부터 2019년 성별에 따른 자살률 추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다. 과거 여성 자살자 수는 남성과 비교하여 폭이 작거나 일정한 수준으로 나타나며 전 세계적으로 남성의 자살 사망률이 여성의 자살 사망률보다 1.5~2배 정도가 높은 것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최근 젊은 여성 자살률의 증가 속도가 심상치 않다. 2019년도 기준 전년 대비 자살률이 눈에 띄게 증가한 세대는 20~30대 여성이다. 2019년도 기준 전년 대비 남성 자살률(38명)은 1.4% 감소하였으나, 여성 자살률(15.8명)은 6.7% 증가했다. 여전히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높지만 최근 20~30대 여성 자살률의 증가 폭은 다른 세대와 성별을 훨씬 상회했다.


특히 자살 유가족·사별자를 기준으로 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크다. 평균보다 자살률이 6~8배 높은 이들이 매년 8만 명씩 발생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태도가 이를 더 증폭시키기도 한다. 자살 유가족/자살 사별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을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시키는 무의식적 행동들도 영향을 준다. 장례식장에서까지도 암묵적인 비난의 화살은 유가족이 짊어져야 하며, 조문 온 사람들에게 고인의 사인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큰 갈등과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자살 원인 규명에만 집중…개인적·심리적 문제 한정


한국 사회가 자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살 예방은 왜 효과가 없었을까.


자살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자살의 ‘원인’을 규명한다는 목적과 관련이 있다. ‘예방’이라는 절대적이고 실천적인 요구와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살의 원인을 찾아 예방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자살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살률로 사회변동의 특징과 맥락을 읽어 내는 작업과 자살의 원인을 찾는 작업은 연관되어 있지만 같은 작업은 아니다. ‘예방’이라는 관점에서도 이 두 가지 작업은 같이 가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살 예방 담론에서 초점은 원인 규명에 있다.


보고서는 자살의 ‘원인론’도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으로 근본적인 의미에서 원인을 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자살을 단순히 병리적 현상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도 일정 부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자살 원인을 이야기할 때 사회에,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에게 ‘왜’냐고 묻지 않는다. 개인에게, 정확히 말하면 자살 사별자들에게 ‘왜’냐고 묻는다. 자살 관련 국가 공식 보고서인 ‘자살예방백서’에는 경찰청 변사 자료의 ‘자살 동기’ 정보를 집계해 10개 범주로 분류한다. 2018년 자살자의 주된 세 가지 동기는 정신적·정신과적 문제와 경제생활 문제, 육체적 질병 문제로, 75.7%가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했다.


보고서는 자살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은 자살을 사적인 문제로 한정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고 비판한다. 이때문에 사별자들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하느라 어딘가에 호소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살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기본 시각과 대응책을 담고 있는 문서라 할 수 있는 ‘자살예방법’을 보면 자살은 여전히 개인의 심리 문제로 규정되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책무”(제1조)라고 규정하면서 “범정부적인 차원의 사전예방대책”(제2조)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책의 기본 방향은 “생명윤리의식 및 생명존중문화의 확산, 건강한 정신과 가치관의 함양 등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에 중점을 두고 수립되어야”(제2조) 하는 것으로 전제다.


대책은 대부분 개인 단위로 자살위험자(요인)를 파악하고, 자살 수단을 얻지 못하게 하며, 자살위험을 낳을 정보를 차단하고, 자살예방인식을 홍보·교육하는 등의 개인·심리적 접근에 한정돼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사회경제적·물질적 요인을 강조하기보다는 문화적·심리적 요인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경제 정책이 자살 예방 정책…주변인에 대한 정책 노력 필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낸다. 첫째, 자살을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 차원으로 접근하면 자살예방의 효과는 발휘되지 않는다. 둘째, 안전망 확충에서 불공정한 노동시장 개선에 이르기까지 사회경제 정책이 가장 중요한 자살 예방 정책이 되지 않으면 한계는 분명하다. 셋째, 자살 시도자와 유가족, 주변인에 대한 정책적 노력이 없으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넷째, 법도 만들고 제도도 만들었지만 인력과 시스템,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역시 효과는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는다. 다섯째, 지역사회 차원의 대책이 유기적이고 세분화되지 않아도 한계가 있다. 한국은 이 다섯 차원 모두에서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제도는 물론이고, 누구보다 큰 아픔을 겪는 유가족/사별자에 대한 정책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현재 만들어진 정책이 잘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중앙정부의 기획과 예산 배정 기능은 물론, 이를 집행하는 지자체와의 상호 유기적 시스템 등을 포함해 점검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업무를 맡는 동안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업무 수당 등의 보상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자살예방센터 등 기존 제도들은 중장기적으로 민간 위탁에서 공적 영역 안으로 통합해야 한다. 인력도 확충하고 정규직화 등 안정된 근무 환경도 제공해야 한다.


보고서는 국가나 사회가 개입할 지점을 찾아내고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 법 개정, 제도 정비 및 연구와 조사, 기획과 실무 등 여러 차원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자살률 감소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잠재적 자살시도자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공적 노력도 책임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김겨레 기자

원문 :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49686629113208&mediaCodeNo=257&OutLnkCh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