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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정치가 부재한 노동, 변화를 기대하며

작성일 : 2022-12-07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정치가 부재한 노동, 변화를 기대하며


글.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나는 노동 문제가 풀리지 않는 데에 정치 부재도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정치의 미덕은 서로 다른 입장, 다양한 이익과 열정을 가진 이들의 갈등을 제도화하고 인간이 가진 싸움의 본능을 처리해 사회가 내전이나 무정부 상태로 퇴락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는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갈등을 조정해 해결에 다가서기보다 지지자나 관련 단체와 결속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정당과 정치인이 시민을 더 거칠게 만들고 최악의 경우에는 폭력이 정당한 대응일 수 있다는 신호를 사회 곳곳에 보낸다.


화물연대의 단체행동에 대한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당국의 입장이 문제인 이유는 ‘안전운임제’에 대한 의견이 달라서가 아니다. 당사자집단과 국가물류 전반을 고민하는 정부의 견해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논쟁은 당연하다. 다만 ‘민폐노총’ ‘귀족노조’ 등 거친 언사에서 일하는 시민의 권익과 열정을 표출하는 자율적 결사체에 대한 존중을 찾기 어렵다. 상호 존중이 없는 상태에서 대화와 조정의 가능성이 생겨날 수 있을까. 상대를 비방하고 혐오하는 언어가 나쁜 이유는 협상의 가능성을 없애고, 각자 타당하면서도 서로 연결 가능한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서다. 우리는 특정 정책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악마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정책에 반대할 수 있다.


안전운임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갈등이 극대화되기 전에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한 토론과 협상은 왜 없었을까. 당사자집단은 물론 화물기사의 단체행동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정부가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정책의 우선순위만 조금 바뀌면 장시간 과로에 시달리는 화물기사의 환경을 개선하면서도 물류가 멈추지 않을 방법도 있지 않을까. 기업의 이윤만 아니라 일하는 당사자도, 도로를 함께 오가는 시민도 다 같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에서 정치적 해법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 차이와 갈등을 조정하려면 온갖 민원과 공익 사이에서 고민하고, 국회에서 이견을 듣고 합의를 학습해 온 정당과 의원이 행정부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친기업 보수정당에 무슨 기대냐 냉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법과 예산을 결정하는 국회는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복수세력이 공동 운영한다. 법률은 안건을 조정하고 소위-상임위-법사위-본회의까지 길목 하나하나 구성원 간 합의를 거쳐야 만들어진다. 가령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나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등 노동인권에 한 단계 진전을 가져왔던 법률은 시민사회나 정당 간에만 격한 논쟁이 있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정책 차이가 큰 의원이 공존하는 보수정당 내 격론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합리적 보수주의자에 가깝거나 노동에 우호적인 의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함께 발의해 정의당·민주당안에 힘을 실어주거나, 당내 반대의견을 가진 의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장애물을 넘을 수 있었다.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 결과는 비극이고 힘없는 약자일수록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다른 정당과 사회단체와 이해를 조율할 수 있는 여당 의원이 청와대나 부처, 원내지도부에만 맡겨 두지 않고 적극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


혹자는 법안이 국회에 들어가면 누더기가 된다고 비판하나, 그럼에도 노동 관련 법률이야말로 합의제 과정으로 작은 진전이라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노동정책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갈등 조율을 돕는 역할을 하기에 외재적이고 구속적인 법조항만으로는 노동시장에서 효과를 보기 어렵다. 법률이 행위자의 내재적인 규율로 기능할 수 있어야 법을 무시하거나 우회하는 것을 방지하고, 실제 제도가 일부 노동자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 행정부가 야당이나 이해관계 단체와 소통 없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민주적 의사결정이라 할 수 없듯이, 국회도 다수파주의-다수결로만 귀결되는 것 또한 민주주의의 협의나 합의에 반하는 행동이다. 그 내용에서 진보가치를 내세울지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노란봉투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제도 효과가 실제로 발휘되고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려면 구성원 간 합의 과정도 중요하다. 설령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법 취지와 다른 시행령, 다양한 제도 우회 가능성은 없을까. 다음에 다수파가 바뀌면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법안이 다수결의 힘으로 통과돼도 괜찮은지 궁금하다. 법과 제도, 정책이 승자의 전리품이 되면 패자가 된 정당이나 이를 지지하는 시민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새 법과 제도, 정책이 시행될수록 적대는 쌓여 가고, 겉으로 순응해도 복수를 꿈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치의 목표는 지지자나 관련 단체에게 단호한 의지를 과시하는 것보다 시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 사실만큼은 지지정당과 생각이 다른 시민들도 마찬가지이기에 실천과 변화를 위해 공통의 기반을 만드는 출발이 되리라 믿는다. 정권을 잡은 정부와 여당은 화물연대의 목소리, 온갖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단체행동에 나서야 했던 절박한 이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가 갈등 조정이란 정치 본연의 역할에 나서기를 희망한다.


-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