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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매일노동뉴스] 직업위세 격차 없애야 우리 사회도 미래가 있다

작성일 : 2023-05-02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아이와 직업체험 테마파크에 다녀오며②] 직업위세 격차 없애야 우리 사회도 미래가 있다


글.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직업체험 테마파크에 다녀오며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 글은 그 두 번째 이야기이다.


지난 10여년 사이 이곳저곳에 직업체험관이 들어선 데는 직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문화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장래희망, 내 꿈 찾기’ 수업을 자주 한다. 대학입시도 적성에 맞는 직업과 학과를 결정해 동아리 등 관련 활동 이력을 평가항목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런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정 직업에 대한 선호로 인한 경쟁과 기피직업의 만성적 노동력 부족은 왜 더 심해질까.


한국사회의 직업서열, 위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정 직업이 직업구조 안에서 사회적으로 갖는 위치와 서열, 위계구조를 직업위세(occupational prestige)라고 하는데, 임금 등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요소뿐 아니라 사회구성원이 특정 직업에 대해 가지는 권위, 중요성, 가치, 존경에 대한 인식 정도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몇몇 국제 비교연구에 의하면 한국은 독일이나 미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과 비교해도 직업위세 간 격차가 큰 편이다. 어느 사회든 직업에 대한 서열차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유독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이 강하단 의미다.


직업위세 격차는 임금불평등과도 연관된다. 임금이란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에 따른 단순 산술값이 아니라, 해당 직업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평등 의식이 비교적 높은 서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의 배관공이나 목수, 버스기사 등 블루칼라의 임금수준은 괜찮은 화이트칼라 중산층에 필적하는 소득을 받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명문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을 퇴직하고 ‘도배업’이나 ‘청소업’을 하며 괜찮은 수입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특이한 일이다.


한국은 단순 생산직, 서비스직, 건설업 종사자에 대한 직업위세가 유난히 낮은 것도 특징 중 하나다. 물론 다른 나라도 단순노무직보다 오랜 숙련·교육을 필요로 하는 전문기술직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한국만큼 격차가 크지 않고, ‘남들이 기피하는 힘든’ 일에 좀 더 금전적 보상을 제공한다. 반면 우리는 한 사회 유지를 위한 반드시 필요한 업무인데도 ‘힘들거나 더럽거나 위험한’ 육체노동에는 최저임금 수준의 보상을 당연시한다.


한국 사회보장시스템이 취약하고 기업규모별 근로조건 격차가 큰 점도 괜찮은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 간 차이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작은 사업장에 근무하거나 불안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일수록 임금이 낮을 뿐 아니라 갑작스런 고용해지나 기업 도산, 임금 체불, 크고 작은 안전사고 등에 노출되기 쉽다. 그런데 정작 이들은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아 미래 위험을 대비하기 어렵다. 청년들이 전공과 적성을 불문하고 하위직 공무원이라도 되기 위해 몇 년이고 시험에 매달리는 이유는 당장 임금은 높지 않아도 미래 위험을 대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임금수준이 높지 않은 일자리라도 높은 리스크를 대비할 수 있어 어느 정도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시민들이 직업이나 일자리 간 격차를 지금처럼 크게 인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현대사회에서 직업은 개인의 자아실현과 삶의 의미 전반을 결정하고 조직 내 권력과 사회적 지위 전반을 규정한다. 직업에 대한 차등의식이 강한 나라일수록 그의 일은 사회적 정체성의 우열을 의미한다. 개인의 심리적 자존감 전반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 서열구조에서 대다수 패배자는 물론 소수의 승리자도 행복하지 않다. 자신의 적성이나 흥미와 무관하게 특정 직업군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진학과 취업을 위한 경쟁을 지속하며 무리할 수밖에 없어서다.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커질수록 더 많은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경주를 시작한다. 좋은 직업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대다수 아이들은 장시간 공부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입시와 취업준비 경쟁 속에 자살이나 고립·은둔을 선택하는 청소년도 늘어나기만 한다.


노동법은 1802년 아동의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영국아동보호법(공장법)에서 출발했다. 당시 영국 판사들이 전국 공장을 순회하며 아동노동의 현실을 조사하고 참상을 의회에 보고해 해법을 모색한 이유는 ‘아동의 미래가 곧 그 사회의 미래’라는 데에 폭넓은 공감대가 있어서다.


아이가 직업체험을 마치며 보이던 뿌듯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어른이 돼도 어떤 일이든 자신의 직업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고 싶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미래가 있지 않을까.


-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