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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매일노동뉴스] 정말 변화를 원한다면

작성일 : 2023-05-30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정말 변화를 원한다면


글.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이른바 진보진영 안에서 노동시장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조직노동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들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효과적인 방법일까 싶어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다.


진보의 강점은 문제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있다. 구성원의 이해와 리더의 판단을 협소하게 만드는 조건을 해명해, 변화를 이끌 주체에도 다가갈 수 있어서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현재 구조나 역사적 맥락에 대한 풍부한 내용을 접하진 못했다. 가령 권위주의 정부가 1963년에는 산별노조를, 1980년엔 다시 기업별노조를 강제했던 법적 변화가 이후 노동운동의 폭발적 성장과 맞물리며 노사관계를 어떻게 구조화했으며, 구성원의 인식이나 결정구조에 어떻게 작용해 지금에 이르렀는지 말이다. 그보다는 ‘정규직 이기주의’ ‘기업별노조의 한계’ ‘실천을 방기하는 지도부’ 같은 단순 화법이 횡행한다.


주체를 이해하는 수준도 단선적이다. 노동조합은 단일 주체가 아니다. 노동자 이해도 이해관계가 얽히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집합된다. 조직의 결정과 집행은 ‘지도부-대의기구-상근활동가-조합원’ 간 모순된 방향이 교차하며 치열한 갈등 속에서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30%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한국노총의 상당수가 중소·영세 사업장 소속이다. 비록 조직노동이 취약노동의 이해를 온전히 대표하지는 못해도 끊임없이 대표성을 확장하고자 노력해 온 조직의 역사와 인적·물적 토대를 시사한다. 물론 양대 노총의 주요 동력이 큰 사업장 조합원이고, 이들의 일차적 관심사가 내년 연봉의 인상률인 것도 사실이다. 즉 우리가 마주하는 노동조합이란 조직은 행위주체 간 다양한 역동과 복잡함 속 단면이지 흑백의 세계가 아니다.


나아가 비전형 노동이란 주체는 더 복잡하고 정형화된 틀로 묶이지 않는다. 가령 같은 플랫폼 노동자라 명명돼도 배달라이더와 대리기사 사이엔 종사자 연령대, 근로기간, 노동환경과 사회적 위험의 내용, 집합적 권리를 표출하거나 희망하는 이해대표의 방식까지 차이가 크다. 최소 정보라도 파악하려면 기존 노동자 조사에 비해 몇 배가 넘는 비용이나 품을 투여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이들의 공통분모를 파악해 개선점을 찾아내기 이전 이들이 누구인지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다. 현장에는 문제를 직접 다루며 개개인의 복잡다단한 삶에 부응하려 애쓰는 활동가들이 있다. 적극적·소극적으로 결합·협력하거나 때로 불화하는 조직노동의 다층적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이들이 가진 다양한 정보와 자원, 구체적 노력과 긴장 관계를 짚어 내지 않으면 상투적이고 단편적 말만 남을 뿐이다.


노동시장 불평등이 우리 사회 최우선 과제라는 것도 재론의 여지가 없다. 조직노동의 한계를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복잡한 문제를 깊게 다루지 않으면 진보의 전형성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오히려 불의한 기득권과 선량한 약자 같은 또 다른 이분법을 반복한다. 정작 문제에 깊이 천착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협력은 난망하다. 문제의 구조도 실태도, 함께 새로움을 이끌 주체도 불분명한데 무슨 수로 변화를 꿈꾼단 말일까.


정말 문제를 개선하고 싶다면 진부한 언어는 절제하고 단선적 접근은 피했으면 싶다. 단순 해법을 말할수록 “내가 하면 된다”는 과대한 자아상을 가졌는가 싶어 오해를 자초한다. 사람이나 집단이나 신뢰를 받으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냉정한 현실 인식하에, 꾸준한 노력을 쌓는 길이다. 함께 하려는 사람이 많아져야 작은 변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 출처 :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