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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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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박성준] 암호화폐를 통해 살펴본 우리 사회의 단면

작성일 : 2021-07-07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암호화폐를 통해 살펴본 우리 사회의 단면


2020년 하반기부터 급등했던 각종 암호화폐의 가격이 최근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년여간 암호화폐 가격의 변동 및 일련의 사건을 살펴보면 암호화폐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역시 잘 드러난다.


흔히 암호화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들이 경제 내에서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그것도 위험이 매우 큰 자산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대다수 암호화폐의 변동성이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기에는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을 제외한다면 암호화폐 중 비트코인이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지만, 비트코인 역시 주요국 통화 및 주가지수 등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변동성이 크다. 달러화 등 경제 내의 다른 자산에 연계되는 스테이블코인 계열의 암호화폐는 가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므로 결제 수단으로서의 유용성은 다른 암호화폐보다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다른 암호화폐에 비해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비트코인 기준)의 내재적 가치는 0이다. 물론,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통화 역시 내재적 가치가 0이지만, 법정통화는 강제 통용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암호화폐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에서는 암호화폐의 가격을 주로 경제 내의 유동성과 투자자 심리(sentiment)로 설명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드리우고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하자 각종 암호화폐의 가격 역시 급등하기 시작하였다. 투자자 심리가 암호화폐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의 유명 기업인인 일론 머스크의 트윗이 암호화폐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머스크의 트윗 내용에 따라 암호화폐 중 시가총액과 영향력이 가장 큰 비트코인의 가격도 크게 변동한 바 있다. 특히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였던 도지코인의 경우, 일종의 풍자 또는 장난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급상승하여 시가총액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이어 3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처럼 유명인의 트윗 한 줄에 가격이 급변하는 것은 암호화폐의 가격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최근 중국이 2017년에 이어 다시 한번 중국 내 암호화폐의 거래와 채굴을 금지하는 등 주요국이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각종 암호화폐의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양상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나타난 바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수익률에 대한 기대로 인해 암호화폐가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특히, 다른 국가보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의 거래 비중이 상당히 높게 나타나는데, 이들 알트코인은 시가총액이 비트코인에 비해 작고 변동성은 더 크다. 비트코인조차도 경제 내 기존 자산보다 변동성이 매우 큰 위험한 자산임을 고려한다면, 알트코인의 위험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 이들에 대한 투자를 투기로 규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이러한 높은 위험성은 다른 한편으로는 일확천금의 기회를 선사한다. 매수와 매도 시점을 잘 선택한다면 기존 자산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막대한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바꾸어 말하면 어렵게 모은 돈을 한순간에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호재 및 악재에 따라 가격이 급변하므로 예측이 어렵고, 소규모 암호화폐는 작전 세력이 시세를 조정하기도 쉬우며, 일부 암호화폐는 발행 단계에서부터 사기성이 짙다.


언론 기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암호화폐, 특히 알트코인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데에는 노동소득만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를 축적할 수 없다는, 또는 내 집을 장만할 수 없다는 불안감도 한몫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은 이미 오를대로 올라 웬만한 고소득자가 아니라면 주택시장에 진입하기조차 버거운 수준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적은 돈으로 투자해볼 수 있는 암호화폐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누군가가 암호화폐에 투자해서 투자금의 몇 배 또는 몇십 배를 벌었다는 소식은 자신이 뒤처진다는 불안감과 이를 만회하기 위한 투자심리를 더욱 자극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암호화폐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아니며, 호기심이나 흥미 때문에 가볍게 소액을 투자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변동성이 극심하여 매우 위험한 자산으로 분류되는 암호화폐가 마지막 남은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언급되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자산에 대한 적절한 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사항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성공적인 투자를 통해 돈을 벌었다면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위험성이 매우 큰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20년 초에 이른바 특금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암호화폐가 어느 정도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단기적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혼란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현재의 암호화폐와 같은 위험한 자산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문제이다.



박성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연세대학교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