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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미래연구원 연구진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조인영] 안정성과 유연성의 균형, 그리고 미래의 고용형태

작성일 : 2021-07-21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안정성과 유연성의 균형, 그리고 미래의 고용형태

 

고용에 있어 유연성과 안정성은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이다. 안정성이 담보되어 있을 때 안심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시각과, 높은 안정성으로 인해 오히려 조직구성원의 나태함이 발현되어 실질적으로는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없다는 시각이 공존한다. 다만 유연성이 높다고 해서 양질의 결과가 확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잠시 머물다 떠날 조직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과에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근무 기간이 짧든 길든, 업무가 체계적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관리·감독이 합리적인지 여부일 것이다. 잠시 머물다 떠나더라도, 합리적으로 일하고 그에 맞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적어도 건강한 조직에 몸담고 있었다는 좋은 기억은 남을 것이다.

 

취업 경쟁이 심화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전환이나 지방인재 가점제를 둘러싼 격한 논쟁은 이러한 갈등의 명백한 예시 중 하나이다. 특히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수많은 젊은 취업준비생들은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르는 논쟁을 단순히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는 현상의 일부분만을 관찰한 것이다. 동일노동이라고 해도, 비정규직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과 정규직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의 자격이나 경력 조건에는 사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비정규직에는 아예 지원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며, 그 결과 정규직을 둘러싼 경쟁은 좀 더 격렬한 편이다. 이는 특히 공공기관과 같이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자리를 둘러싸고 조금 더 명백한 패턴으로 나타난다. 취업준비생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더욱 민감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정규직 신규채용의 기회를 감소시킬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전환 당시 이에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이 상당히 많은 찬성을 받기도 했으며, 지난 4월 기재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신규채용 규모가 만 명가량 축소되었다는 결과에 많은 언론이 이를 비정규직 전환의 여파로 해석하기도 했다. 기재부는 이는 2018년과 19년에 이례적으로 많은 채용이 일어난 데 따른 기저효과임을 강조하였으나, 비정규직 전환과 동시에 신규채용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한 재정부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대립은 인건비를 둘러싼 내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을 넘어, 내부 비정규직과 노동시장 진입을 노리는 잠재적 지원자(아웃사이더) 간의 대결 구도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정규직이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이 시행된 시점에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라면, 이를 모두에게 공정하게 열려있는 기회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단순 전환보다는 가점제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여 다시 채용과정을 거치는 것이 보다 공정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였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공개채용보다는 전환채용을 요구하는 시위나 파업이 발생하는 등, 갈등의 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한편으로는, 최근과 같은 격렬한 취업전쟁을 거치지 않고 과거에 비교적 낮은 노력으로 공공기관에 입사한 일부 직원들의 나태한 근무태도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일단 공공기관에 정규직으로 입사하면 정년은 거의 자동으로 보장되는 셈이며, 나태함이나 방만함에 대한 징계나 처벌은 사실 쉽지 않다. 정규직 장기근속자의 나태함과 방만함에 대해 참다못해 상사가 지적하니 노조로 달려가 갑질이라 고발하더라는 몇몇 관리자급 직원들의 한탄 섞인 토로가 들려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유연성과 안정성 간의 트레이드오프에 대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미래 노동시장의 고용형태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모였다 흩어지는 극도로 유연한 네트워크형 고용? 유연성을 높이되 페이를 함께 높여 실업 기간 동안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기업의 효율적 이윤추구를 높이는 노동시장 재구조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줄이되 되도록 장기계약을 추구하는 절충적 모델? 사실 한국이 그동안 이러한 실험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쪼개 고용을 창출한다는 계획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유연성은 주로 사기업의 비정규직에게 보다 가혹한 방식으로 강제되었다. 공공부문의 사용자와 노동자 서로가 하는 소위 갑질과 을질 역시 효과적으로 제어되지는 못한 듯싶다.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은 비정규직이라 떠나가야 했고, 나태한 정규직은 잘난 척하며 자리를 지키는 모순이 반복되고 있다. 단순히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이 아니라, 어떠한 고용 형태를 통해서든 정말로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보상받고 조직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제도적 설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인영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