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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채정] 원칙없는 재난지원금과 맥줏집 사장님의 원칙

작성일 : 2021-09-29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원칙없는 재난지원금과 맥줏집 사장님의 원칙


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얼마 전, 어느 50대 남성이 목숨을 끊었다. 맥줏집 사장님이었던 그는 살고 있던 원룸의 보증금을 빼고 돈을 빌려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어쩌면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세상은 아직 살만 한 곳이고 항상 나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믿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의 극단적 선택론(La Suicide)은 사회학 분야의 고전으로 꼽힌다. 1897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당시 프랑스의 공식기록을 분석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다루어졌던 극단적 선택과 같은 행위도 개인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힘의 영향을 받는 사회적 사실(social fact)임을 찬찬히 서술하고 있다. 뒤르켐은 극단적 선택에 대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에 강하게 통합되어 사회규범의 규제에 따라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는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할 가능성이 더 낮다고 보았다.


뒤르켐은 사회의 통합과 규제의 수준에 따라 극단적 선택을 네 가지 종류(이기적 극단적 선택, 아노미적 극단적 선택, 이타적 극단적 선택, 숙명론적 극단적 선택)로 유형화했는데, 이 중 이기적 극단적 선택과 아노미적 극단적 선택이라는 개념이 흥미롭다.


이기적 극단적 선택은 사회의 통합 정도가 낮고, 개인이 속한 집단의 결속이 약하거나 깨져서 고립되어 있을 때 많이 나타나고, 아노미적 극단적 선택은 사람들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불안정으로 인해 무규범 상태로 빠져드는 아노미적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맥줏집 사장님의 극단적 선택은 어느 쪽일까.


나는 그의 죽음이 이기적 극단적 선택이기도 아노미적 극단적 선택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는 재분배와 사회보장의 원칙이 흔들리는 아노미적 상황에 직면한 동시에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회의 통합 정도가 이전보다 낮아졌다.


그는 처절한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본인이 속한 사회의 당위라 믿었던 나보다 어려운 사람, 나를 믿고 생계를 위해 일했던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내며 죽어간 것이다. 위기가 사회를 덮쳤을 때, 사회구성원을 지켜내는 것은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원칙이 없는 혹은 수시로 변하는 사회는 위기를 근본적으로 통제하여 사회구성원을 지켜낼 수 없다.


코로나19 확진자 수 통제라는 직접적인 위기 대응에 가려져 재난지원금의 대상과 수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했다. 정부는 총 5회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였고, 그 중 첫 번째와 다섯 번째 재난지원금은 국민 대다수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집행되었다. 반면, 두 번째부터 네 번째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제공되었다.


보편적 복지(universal welfare)와 선별적 복지(selective welfare)의 효과를 비교해볼 수 있는 정책 사례인 우리나라의 재난지원금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효과를 논의한 자료는 많지 않다. 국민 대다수가 혜택을 보는 것이 맞을지,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을 본 소상공인이 혜택을 보는 것이 맞을지에 대한 원칙론적인 논의만 여러 번 반복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원칙론적 논의에서 원칙에 대한 논의는 부재했다.


흔히 보편적 복지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 없이 복지가 제공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보편적 복지는 국민 혹은 시민권자가 위기에 처하기 전에 필요한 급여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아동, 노인 등 인구학적 요건이 충족되면 지급되는 사회수당형 정책이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면, 선별적 복지는 저소득 계층과 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선별하여 그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사회부조형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의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보편적 복지는 사회수당형 정책으로, 선별적 복지는 사회부조형 정책으로 구현된다는 점이다. 정책철학과 정책수단을 두루 살펴보지 못한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선별적 복지만큼 세분된 기준을 토대로 정책대상을 선별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 없이 복지를 제공하되 과연 정책의 혜택을 보게 되는 인구집단이 급여 및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기반하여 집행되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이 철저히 선별적인 방식으로 지원되었다면 맥줏집 사장님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국가가 재난지원금을 집행하면서, 과연 맥줏집 사장님만큼 한정된 자원을 나눠 갖는 방식에 대해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접근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자기화하게 된 원칙과 내가 속한 사회의 원칙이 어긋날 때, 어쩐지 내 생각도 생활도 내가 속한 사회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낄 때, 그리하여 내가 끝끝내 낭떠러지까지 물러섰음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덮친 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면, 수시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여 매번 다른 기준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 안에서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개선하면서 비단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또 다른 위기가 우리 사회를 위협할 때 차분히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아무리 코로나19 방역이 급하더라도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원칙으로 위기에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대한민국은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인가 묻고 싶어지는 가을의 문턱이다.




이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