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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미래연구원 연구진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민보경] 협력에서 지역의 미래를 보다

작성일 : 2022-01-12 작성자 : 통합 관리자


협력에서 지역의 미래를 보다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큰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장밋빛 공약들이 연일 발표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인구감소로 인한 위기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보이지 않고 있다. 지방 위기의 이슈는 누구나 공감하고 그 심각성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라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문재인 정부 역시 혁신도시 시즌 2, 국가균형발전을 대표 공약 중의 하나로 내세웠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차기 정부로 그 숙제가 넘어가고 있다.


지역 불균형은 최근 저출생·고령화의 인구 위기와 함께 심각성이 증폭됨에 따라 어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균형발전의 실상은 이미 근 반세기 전부터 제시된 정책이자 우리의 헌법적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제1차 국토종합계획(1972-1981)의 시기부터 수도권 집중억제 정책을 표명하고 있으며, 헌법 제122조에서는 전 국토의 균형발전을 명시하고 있다.



1971년에 발표된 제1차 국토종합계획에 따르면, 1970년 당시 전국 인구의 28.4%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그중 약 62%가 서울에 집중하고 있어 국토의 균형발전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즉, 국토 공간의 균형된 발전은 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왔으나, 오히려 수도권의 인구 및 기능집중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절반이 넘는 인구가 수도권에 거주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근 균형발전과 관련하여 지역 주도의 초광역 협력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예컨대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세종-충남-충북 등 인접 지역이 협력하여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도록 메가시티로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거대 도시의 개념은 도시의 연담화,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와 같이 유기체처럼 진화하는 도시의 공간적 성장 현상에서 연유하며, 세계화 현상과 더불어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하는 세계도시(global city) 등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단일 대도시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메가시티 리전(mega-city region), 메가리전(mega region) 등 다핵화된 광역적 공간전략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메가시티 개념 역시 행정적으로 구분된 복수의 도시들이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이 연계된 권역을 형성하며 초광역협력과 연결하여 사용되고 있다.


최근 논의되는 초광역 협력은 지역 간 자발적인 협력을 통해 균형발전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는 IT 기업들을 포함한 미래성장형 산업들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고착화되고 지방 대도시마저도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출되면서, 시·도 단위의 전략으로는 이제 수도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지역 스스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지방정부 차원에서 지역 위기에 대한 인식이 커졌고 이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만큼 자치역량이 성장한 결과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을 넘어서는 초광역 협력은 균형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도처럼 보이지만 지난 정부에서도 논의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초광역권 구상과 이명박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등이 있었고, 박근혜 정부 역시 시·군 단위이긴 하지만 행정구역 경계를 초월하는 주민의 생활권을 반영한 지역 생활 행복권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이를 뒷받침할 협력적 추진체계가 미흡한 상태로 진행되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지방정부 간 연계와 협력에 기댄 사업들이 수월하지 않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초광역 협력이 성공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지금으로서는 메가시티 전략으로 지역이 얼마나 더 살기 좋은 곳으로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지방의 사람들을 수도권으로 빠지게 하는 압출요인(pushing factor)이 얼마나 줄어들지, 그리고 수도권에서 지방의 메가시티로 오게 하는 흡인요인(pulling factor)이 얼마큼 발생할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메가시티로 인한 균형발전의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과거 ‘나눠 먹기’ 식의 지역 안배나 유사 중복투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도시를 중심축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하되 인근 지역과 산업, 교통, 주거, 의료, 문화 등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공간전략이 필요하다.


기능에 따라 효과적인 권역을 유연하게 설정하는 문제 역시 쉽지 않지만, 기존 행정구역과는 다른 범위의 권역에서 공통의 사업 등을 추진하는 것은 또 다른 어려운 문제이다. 현재 시점에서 메가시티의 거버넌스는 기존의 광역시, 도는 그대로 둔 채 추가로 행정조직을 만들거나 기존의 협의회, 조합 등 실효성이 낮은 제도들을 재탕하는 것이다. 새로운 집행체계를 제도적으로 도입하는 방식이나 정부 간 협약방식 등을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추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옥상옥(屋上屋)의 행정 비효율이 아닌 행정구역 개편과 통합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현재 광주광역시·전남과 대구광역시·경북은 행정 통합을 논의 중이며,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동의뿐 아니라 국회의원, 지역 공무원, 지방의회 등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 행정구역 개편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생각보다 길고 험난할 수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메가시티를 통한 지역경쟁력 강화라는 대의에는 쉽게 동의하더라도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면 해결하기 어려운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가시티는 균형발전을 위한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으며 규모, 경쟁력 이외에 다양한 기준을 적용하여 지방쇠퇴와 지방소멸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인구와 경제 규모가 작은 시·도는 초광역 메가시티 전략에서 배제되면서 비수도권 내에서의 또 다른 불균형을 경험하게 된다.


더욱이 기본적인 생활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에서 아픈 곳을 치료받을 병원이 없거나 이동을 위해 하루에 한두 번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들에게는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하는 메가시티의 전략이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그러므로, 농산어촌과 인근 중소도시의 연결까지 포함하여 초광역 협력, 균형발전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균형발전의 디테일을 위한 철저한 준비와 현명한 선택을 통해 새로운 정부에서는 활력이 넘치는 지역의 장밋빛 현실이 꽃피우기를 기대해 본다.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