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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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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박성원] 보상적 성장의 대가

작성일 : 2022-05-03 작성자 : 통합 관리자

보상적 성장의 대가 글.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2022.5.3



보상적 성장의 대가


일제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학계에서는 추격형 성장으로 정리한다. 한국이 선진국과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맹렬히 노력했고, 그 결과 경제적으로 성장했다는 뜻이다. 과학기술의 격차도 상당히 따라잡았고, 이제는 세계 1위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자랑하는 품목도 많다. 최근에는 문화와 예술에서도 한국의 약진은 놀랍다.


20세기 말까지 우리가 경험했던 한국의 급성장을 요즘엔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7%대의 높은 경제적 성장을 일궈냈던 경험을 희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성장지상론’을 주장하지만, 예전과 다른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려보려는 시도는 논할만하다.


지난 2월16일 <참성장포럼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손종칠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참성장은 일과 여가, 돌봄, 환경, 인적자본 등 삶의 질과 관련된 것들의 가치를 재평가하거나 성장시키는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면 기존의 경제성장을 측정했던 국내총생산(GDP)의 관행에서 간과하거나 무시했던 요인들을 드러내야 한다. 예를 들면, 소득불평등의 확대나 가사 돌봄 노동의 불평등은 삶의 질을 감소시키는 요소지만, 경제성장을 측정하는데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불평등은 사회 후생의 감소로 평가해야 한다. 또한 물질적 성장을 위해 훼손된 환경도 비용으로 추정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의 관점에서 환경오염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았다. 시장거래에 기반한 가격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5일 개최된 한국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한국정책학회 30주년 기념 재발견시리즈의 첫 번째로 ‘성장’이라는 화두를 놓고 학자들 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중앙대학교 문태훈 교수는 우리 사회가 추진했던 경제성장은 결과적으로 빈부격차 확대, 일자리 감소, 환경파괴, 대규모 감염병 확산 등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 지속가능발전론이 등장했지만, 기존의 경제개발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 때문에 미래세대의 복지수준을 낮추지 않겠다는 목표는 요원해졌다. 문태훈 교수는 생태경제학적 관점에서 자원을 덜 소비하고 환경을 보존하면서도 사람들의 사회적 교류는 활발하고 이를 통해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전환적 성장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미래연구원도 지난해 국가중장기아젠다 연구를 통해 성장사회를 벗어나 성숙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3000명의 온라인 조사와 202명의 시민이 참여한 숙의토론형 공론조사를 통해 새로운 선호미래상으로 ‘성숙사회’를 도출했다. 성숙사회는 효율성과 능력주의에 기반한 국가 주도의 경제적 성장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사회다. 각 개인의 처지에 맞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형평성, 사회적 신뢰나 연대, 건강의 증진 같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 생물다양성 보존과 기후변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회다.


이런 논의들의 공통점은 성장 그 자체를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시장적 전략을 기획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그간 우리 사회가 거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경제성장에 집착한 데 따른 부정적 효과에 주목하자고 주장한다. 모든 정책에는 음과 양이 있다. 그러나 부정적 효과가 긍정적 효과를 압도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현격히 떨어진다.



생물학에서는 ‘보상적 성장’이라는 이론이 있다. 영어로는 ‘compensatory growth’ 또는 ‘catch-up growth’로 표현한다(앞서 우리 사회의 지난 역사를 추격형 성장이라고 했는데, 영어식 표현도 catch-up growth로 같다). 보상적 성장은 예컨대,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동물이 비록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동물과 비교해 몸집이 작게 태어나도 다시금 좋은 환경이 주어지면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급격히 성장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물보다 몸집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처럼 단기간에 급성장하는 것을 보상적 성장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급성장에는 대가가 따른다. 보상적 성장을 다룬 문헌 중 2001년 멧카페(N. Metcalfe)와 모나간(P. Monaghan)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논문의 제목은 Compensation for a bad start: grow now, pay later?). 저자들은 보상적 성장기를 거친 생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조사했다.


예컨대, 즉각적으로 치를 수 있는 부정적 효과로는 포식(predation)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몸집이 급성장하면 포식자의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굶주림을 견디는 힘도 약해진다. 보상적 성장기를 보낸 애벌레는 식량 부족의 상황에 맞닥뜨리면 다른 애벌레와 비교해 이를 견뎌내는 힘이 약하다. 중기적으로 치러야 하는 부정적 대가로는 지방 침착(fat deposition, 주요 장기에 지방이 쌓이는 것)의 증가(대서양 연어에서 발견)나 세포의 수명과 관련된 텔로미어(telomere)의 마모(쥐에서 발견)를 들 수 있다.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 대가로는 인슐린 조절의 문제(쥐나 인간에게서 발견), 성인 비만(인간), 수명의 단축(쥐나 금화조에서 발견) 등이 발견되었다.


저자들은 이런 증세들은 실험실에서 발견한 것이고 아직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지만, 급성장을 추구했던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 사회를 하나의 급성장한 개체로 본다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부정적 현상은 보상적 성장의 대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성과주의로 증가하는 과로사와 과로자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 우울감의 증가, 사회적 신뢰나 연대의 감소, 혐오와 차별의 증가 등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여전히 ‘더’ 성장하지 못해서, 또는 성장의 동력이 약화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한다면 오히려 이런 현상은 더 악화될 수 있다.



이제는 성장에 대한 전망이 아니라 성장의 다양한 대가에 대한 전망으로 사회적 관심이 쏠려야 한다.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박성원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前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연구위원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Political Science (Futures Studi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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