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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불안정한 가부장제의 그늘과 빛…젠더 관계의 미래

작성일 : 2022-08-02 작성자 : 통합 관리자

불안정한 가부장제의 그늘과 빛…젠더 관계의 미래 글. 이상직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2022.08.02



불안정한 가부장제의 그늘과 빛…젠더 관계의 미래



2018년 일본 내각부가 7개 국가(한국,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의 청년(만 13~29세)을 대상으로 한 의식 조사에는 성역할 인식을 묻는 문항이 있다. 첫 번째 문항은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이고, 두 번째 문항은 '자녀가 어릴 때에는 어머니가 자녀를 돌봐야 한다'이다. 두 문항의 보기는 '동의한다'와 '동의하지 않는다'이다. 세 번째 문항은 결혼 인식을 묻는다. 보기는 '결혼해야 한다', '결혼하는 것이 좋다',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이다.


이들 세 문항은 성별 분업에 기초한 보편혼이라는 '근대 가족' 모델의 특징을 표현한다. 많은 사람이 여자와 남자의 삶의 방식이 '전근대'에 달랐다고 생각하지만, 삶의 방식이 성별로 또렷하게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와서였다. 이것은 근대 가족이 형성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일본의 사회학자 오치아이 에미코는 <<21세기 가족에게>>(2004[1994]) 에서 ‘근대 가족’을 “가족애를 기반으로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주부로서 여성분업화되어 있으며, 자녀에 대해서는 강한 애정과 교육에 관심을 두는 가족”이라고 정의한다. ‘아동의 탄생’이나 ‘주부의 탄생’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서유럽과 미국에서 근대 가족이 자리 잡게된 때는 1940~50년대였다. 일본에서 이러한 형태의 가족이 주류였던 시기는 1960~1970년대였다. 이때에는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두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남자는 샐러리맨으로 돈을 벌고 여자는 주부로 가사와 양육에 전념했다. 일본에서 이러한 가족을 만들었던 주체는 1930~1950년대생이다. 이러한 가족 모델이 흔들린 것은 1980년대부터이고 변화의 주체는 1960년대생부터다.



한국은 어떠할까. 근대 가족 모델이 이념으로 도입된 것은 일제 식민지 시기였지만 모델이 구체적인 삶의 형태로 구현된 것은 1980년대에 와서였다. 그 모델이 블루칼라 계층에도 구현될 수 있었던 때가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제조업에도 내부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이었다. 이 시기의 가족을 잘 그린 것이 조주은의 <<현대 가족 이야기>>(2004) 이다. 여기서 “현대”는 Hyundai를 뜻하는 것과 동시에 modern을 뜻한다. 조주은은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에 “성별분업에 기반한 핵가족, 즉 ‘정상가족’이 보편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보고한다. 여성도 분리된 성역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주체였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들이 1950-1960년대생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계기로 무너진다. 1970년대 중반생부터 결혼과 출산 행위와 관련해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비혼 1세대의 탄생>>(2020)이나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2020)과 같은 책의 저자들이 그 세대다. 이러한 흐름을 또렷한 경향으로 만든 이들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다. 이후 상황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동시에 ‘가족’의 모습도 급격하게 바뀌었다.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2013)은 오늘날 가족의 한 단면을 중산층 맞벌이 가족의 삶으로 드러낸다.



근대 가족의 시기가 서구 주요 국가에서 50~60년, 일본에서 30~40년 유지되었다면, 한국에서는 그 시기가 10여 년에 불과하다. 이것의 한 가지 함의는 이념과 현실의 괴리다. 앞서 1990년대 후반에 근대 가족 모델이 무너졌다고 썼지만 무너졌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한국사회에서는 ‘근대 가족’이 현실에서 보편 모델로 작동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편에서는 여전히 근대 가족을 꿈꾼다.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델을 뒷받침할 사회경제적 토대는 무너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 가족 모델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기존 가족 모델의 규범력을 깰 새로운 (친밀성/돌봄의) 관계 모델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2016)에 대한 한국사회의 격렬한 반응은 이러한 전환기적 상황에서의 젠더 관계의 규범 부재를 드러낸다.



앞서 소개한 세 문항에 대한 국가별 응답은 어떠했을까. ‘근대 가족’ 모델을 압도적으로 부정한 이들은 한국 청년이었다. 남녀 모두 90% 가까이가 ‘성역할분리’에 반대했다. 한국 청년은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에, “자녀가 어릴 때에는 어머니가 자녀를 돌봐야 한다”에 압도적으로 반대했다. 남성은 90% 이상이, 여성은 95% 이상이 반대했다.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답한 비율도 한국 청년에게서 가장 높았다.



특히 여성의 20% 가까이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한국 청년은 독보적으로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들 문항에서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 국가는 미국과 영국이었다. 독일과 프랑스가 대략 가운데에 위치했고, 스웨덴과 일본이 한국 쪽으로 조금 가까운 중간 위치였다. 미국과 영국은 남녀 모두 절반 가까이가 성역할분리에 동의했다. ‘어린 자녀는 어머니가 돌봐야 한다’는 문항에서 가장 보수적인 응답 태도를 보인 나라는 독일이었다. 남녀 모두 절반 이상이 동의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통념을 생각하면 뜻밖의 결과다. 동아시아 국가는 ‘가족주의’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서구는 ‘개인주의’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결과만 보면, 한국이야말로 성역할분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사회로 보인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 남녀 역할 분리가 없다는 식으로 읽을 수 없다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은 ‘가족주의’ 사회라는 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한국에서 젠더 관계 이념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결과다. 그 어떤 나라보다 동질적인 응답은 전환기에 남녀의 역할이 구별되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모호한 것은 문제의식의 내용이다. 여기에는 물론 성역할 구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그렇게 극단적인 응답이 나올 수 있을까. 서구의 주요 나라 청년이 상당한 수준으로 ‘성역할분리’에 동의한다는 것은 이들 국가 청년들에게 그런 문제의식이 약하다는 뜻일까.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면, 떠올려볼 수 있는 생각은 성역할분리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인식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위의 결과에서 어떤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나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젠더 관계에 관한 규범에서 일종의 아노미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형식적 공정 담론이 젠더 관계 인식에도 반영된 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의 배경에는 불안정한 가부장제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구에서는 결혼의 계층화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덜 또렷하다. 일부에서는 이 차이를 한국의 성불평등한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나는 그것을 국가별 가부장제의 안정성 차이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서구는, 또 일본은, 한국보다 안정적인 가부장제 사회이고 이런 의미에서 적어도 일부 계층에서는 근대 가족 모델이 가능하고 또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념과 현실이 어느 정도 조응할 수 있는 사회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



거꾸로 남녀의 역할 차이가 상대적으로 불평등을 덜 함의하기에 남녀가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일종의 선택지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가부장제적인 관계도, 그렇지 않은 관계도 가능한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불안정한 가부장제 사회다. 가부장제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이념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이념과 현실의 괴리가 크면 규범을 추구하기도, 규범을 거부하기도 어려워진다. 가부장제를 전적으로 추구하기도, 전적으로 부정하기도 어렵다. 최근 젠더 관계에서 여러 긴장이 드러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젠더 관계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 긴장을 불편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범이 없는 상황에서는 서로가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변화는 불안정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상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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