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기고   >   미래생각

미래생각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미래연구원 연구진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상직] 출산의 미래, 우리는 아이를 어떤 식으로 맞이하고 있는가

작성일 : 2022-11-30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출산의 미래, 우리는 아이를 어떤 식으로 맞이하고 있는가 글. 이상직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2022.11.30



출산의 미래, 우리는 아이를 어떤 식으로 맞이하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태어나는 아이의 숫자다. 그런데 아이를 어떻게 낳는지에 대해서는, 아이가 어떻게 태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이를 낳는 방식도 근대에 와서 크게 바뀌었다. 이 글에서는 지난 50년간의 아이 낳는 방식의 변화를 '산업화'와 '제도화'라는 키워드로 짚어보고자 한다. 과거에 많은 사람이 집에서 가까운 사람들 옆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이제는 병원에서 전문적 훈련을 받은 의사나 간호사의 통제하에 매우 표준적인 절차에 따라 아이를 낳는다. 결국 아이를 낳으려면 돈이 필요해졌고, 그런 의미에서 아이 낳는 일은 의료 서비스 시장에서 특정한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가 되었다. 한편 한국 사회에서 아이는 남녀가 법적으로 결혼한 후에 성관계를 가져서 낳는 것이라고 기대된다. 혼인과 섹스와 출산이 법률혼주의에 따라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연결도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출산이 산업화된 것은 20세기 현상이다. 티나 캐시디의 '출산, 그 놀라운 역사'는 출산이 산업화된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출산이 의료적 처치의 대상이 되면서 의사들이 출산 과정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산전검사, 마취제사용, 예방적 겸자 수술, 제왕절개, 경막외마취 등은 모두 의료적 표현이다.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이 의료적 처치의 대상이 되면서 시설의 규모가 커졌다. 사람들도 의료진도 대형 병원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출산은 확률적으로 측정 가능한 단계의 연속적 과정으로 표준화되었다.


근대 산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셉 B. 드리는 1923년에 쓴 기고글에서 사람들이 임신과 출산을 "정상적인 과정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산과학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개탄했다. 20세기 초에는 겸자 수술로 불린 물리적 개입술이 도입되었다. 1950-60년대에는 약물로 산모를 마취한 상태에서 출산하게 하는, '황혼의 잠'(twilight sleep)이라고 불린 방식이 상류층을 중심으로 사용됐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제왕절개술이다. 아이를 적게 낳으면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의료과실에 대한 의사들의 두려움이 커지면서, 한편으로는 '고위험 임신'이 많아지면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에 널리 활용되는 처치는 경막외마취다.


산업화된 출산은 한편으로는 특정 유형의 산전 관리를 뜻한다. 임신한 여성 대부분은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출산의 순간까지 잘게 쪼개진 단계마다 여러 검사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단순한 생리적 적응 반응이 특정한 '병'의 이름으로, 특정한 확률의 가능성으로, 임신부에게 전달된다.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농부와 산과의사'의 저자 미셸 오당은 이러한 산전검사가 플라시보(placebo) 효과와는 반대되는 '노시보(nocebo) 효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출산을 문제가 되는 어떤 일로 여기게 한다는 것이다. 산업적 출산의 시대에 산모는 '환자'가 되었다. 조셉 드리의 바람대로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출산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출산이 의료화된 과정을 기술한 조영미에 따르면 1970년에 병원이나 의원 등 시설에서 아이를 낳은 이는 17.6%였다. 15년 뒤에는 그러한 이들이 75.3%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99% 이상이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다. 제왕절개분만 비율을 보면 1982년에 4.4%였던 것이 2003년 39.2%가 되었다. 한국에서 제왕절개분만 비율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에 와서다. 2019년에 태어난 아이의 50.6%가 제왕절개분만으로 태어났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에 있는 나라는 터키와 멕시코다. 가장 수준이 낮은 나라는 이스라엘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으로 15% 정도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0%대 후반이다. 이러한 구조화된 환경에서 개인이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낳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전가일은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에서 여성이 출산 과정에서 소외되는 맥락을 "분만을 당하는 것"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한국사회에서 출산은 철저하게 제도화돼 있기도 하다. 섹스와 결혼과 출산은 법률과 규범에 따라 강하게 연결돼 있다. 1960년대까지도 있었던 사실혼이나 소실 관계에 따른 결혼제도 밖의 섹스와 출산이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미혼모'였고 '사생아'였다. '정상가족'의 바깥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입양됐다. 1970~80년대에 해외입양이 정점을 이뤘다. 대부분은 미혼모의 자녀였다. 가족 테두리의 경계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시설에 수용됐다. 최근(2020년 말)에도 한국사회에는 274개 아동양육시설에서 1만1356명의 아동이 생활하고 있다. 같은 해 발생한 보호대상아동 수는 4,120명, 그중 시설보호 비율은 약 66%에 이른다. 정은주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에서 "우리 사회가 출생에 방점을 찍고 뿌리에 집착하는 한 아동복지의 척박한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정상가족 바깥 출산에 대한 억압은 2% 내외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의 '혼외출산' 비율로 나타난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나라는 일본과 터키 정도다. 칠레는 74%이고, OECD 평균은 41%이다.



한국사회에서 '한부모'와 '미혼모', '미혼부', '입양가족', '미등록이주자가족' 등의 아이는 여전히 비정상적인 존재로 치부된다. 2만여명의 미등록이주아동의 '유령과도 같은' 삶을 구체적인 목소리로 풀어낸 책의 제목처럼 그들은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다.



특정한 방식의 출산을 옹호하고 싶은 것도, 출산 행위의 변화를 특정한 잣대로 평가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출생 방식의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좀 더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행위와 마찬가지로 출산 행위의 구조와 의미도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면서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미셸 오당은 아이를 낳는 방식과 그 의미에 대한 탐구가 짧게는 20세기사를, 길게는 인간 문명사를 보는 작업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내야 하는 시기에 있다"면서 "출산의 산업화가 인류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아이가 적게 태어난다고 다들 걱정한다. 그 걱정의 실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생명을 도구로 보는 관점과 만나게 된다.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주겠다고 한다. 돈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주여성 출산율이 높다고 말한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은 국민에게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 및 지자체가 시행하는 저출산·고령사회 정책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하라고 명령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찰나의 경이로움을 느낄 것이다. 그 순간만은 생명이 목적 그 자체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갓 태어나는 아기를 어떤 방식으로 맞이하고 있는가. 우리는 아기를 어떤 방식으로 맞이할 것인가. 저출생의 시대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상직


위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에 해당하며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작권 정책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