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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여영준] 우리나라 혁신체제의 새로운 전환점으로서 학습순환사회

작성일 : 2023-02-21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우리나라 혁신체제의 새로운 전환점으로서 학습순환사회 글.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2023.2.21



우리나라 혁신체제의 새로운 전환점으로서 학습순환사회


우리나라는 후발 추격국가로서 선진국의 표준화된 기술과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고, 적용하는 데 특화된 혁신체제를 형성함으로써 전무후무한 압축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추격형 성장단계에서 유효했던 학습과 혁신역량을 가진 궁극적 주체는 바로 사람이었다. 시대에 따라 산업과 기술 발전에 필요한 인재상은 달라졌고 인적자원 양성시스템의 역할과 비전 역시 변모해왔다. 그리고 현시점 우리나라 혁신체제는 산업기술과 제품 경쟁력이 고도화되어 선진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르러, 우리만의 혁신성장 경로를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 진입했다.

이러한 전환기에 진입한 우리 경제는 성장동력이 약화되면서 산업 부문의 성장세가 하락하고, 새로운 혁신 기업 등장이 정체되는 등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우리 혁신체제가 추격형 단계에서 유효하였던 학습역량에 특화된 제도적 관성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으며,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기술 및 제품 개발을 이뤄나갈 수 있는 학습역량 구축에 한계가 있음을 방증한다. 이에 우리나라는 학습역량 전환 실패로 인해, 전환기에 마주하는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 우리나라 혁신체제에서는 효율성, 합리성, 그리고 도구주의 접근에 기반하여 개인을 혁신 활동과 생산수단으로 인식하였다. 우월적 효율성이 최우선 가치로 대두되던 시절에서는 일정 수준의 전문성을 보유하며 신속하게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근면성실한 인재가 필요했다. 이에 우리나라 기업, 조직, 그리고 교육훈련기관은 이러한 인재를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으며 개개인들은 집단 순응적으로 경쟁체제 속 안정적 위치를 유지하거나 우월적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생존방식에 길들여져 왔다. 당근과 채찍형 보상체계, 연공서열적 급여체계, 위계적 조직문화, 그리고 집단주의의 응집력 등은 우리 기업과 산업들이 단기간 압축성장에 기반한 성공 신화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 성공 방정식으로 작동한 제도적 유산들은 한계에 직면했다. 글로벌 혁신 지형에서 선도자로서 발돋움하고, 외부 충격에도 곧 회복할 수 있는 복원력을 가진 산업구조로의 진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혁신체제로의 전환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효율성, 획일성 및 표준성이 중심이 된 제도적 관성들은 개개인의 다양성을 키워내는 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더 나아가 자율과 재량에 기반한 개인 역량 개발 기회 탐색과 시행착오 경험 축적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동기부여를 효과적으로 이뤄내지 못했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 성인들의 일터에서의 역량 퇴화율은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며 일터에서의 과업 재량 역시 매우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다(반가운, 2019). 이는 일터와 조직이 개개인들로 하여금 일과 과업의 가치를 찾고, 자유롭게 역량개발을 이뤄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혁신적 아이디어와 신기술이 다양하게 제안되고, 스케일업 과정을 통한 창조적 파괴 및 산업발전 과정에는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기존의 규칙과 관행에 따라 순응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조직, 그리고 기업·산업을 통해서는 효과적으로 통제될 수 없다. 기성의 규칙과 기준 등에 얽매이지 않고, 사고·행동할 수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필요하다. 특정 주체(기업이나 산업 등)에 의한 효율성 기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 개개인이 누구나 자신의 역량을 자유롭게 키우고 활용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고, 개개인이 새로운 역량을 형성하는 데 있어 제도적 장벽이 존재하지 않도록 제도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우리나라 혁신체제의 학습역량 전환과 다양한 혁신 주체들의 학습역량 제고는 고착화된 성장 정체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충분조건이자 디지털 전환 등 기술혁신 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에 우리 혁신체제의 중장기 지향점으로서 ‘학습순환사회’를 제안하고자 한다. ‘학습순환사회’라 함은, 생산 및 혁신활동에 활용되는 개개인의 역량과 지식(경험)들이 폐기되지 않고 끊임없이 재개발 및 향상되어 혁신활동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되는 체제를 의미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적 기술, 제품, 비즈니스 모델 등을 창출하기 위해 활용되는 개개인의 역량과 숙련이 끊임없이 순환되며, 혁신잠재력이 극대화된 경제체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학습순환사회’로의 전환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주요 세 가지 원칙이자 대전제가 원활하게 작동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개인을 생산수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역량개발 및 학습 주도권을 보유한 주체이자, 혁신활동을 통한 가치 창출 핵심 주체로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개개인을 단순히 노동시장, 조직·기업·산업 및 혁신환경에 순응하는 존재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적응하고 자신과 일과 환경을 바꾸어 나감으로써 일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 이에 조직, 기업(산업), 그리고 국가는 개개인 누구나 자신의 역량을 키우거나 새로운 역량을 학습하는 데 제도적 장벽이 없도록 지원하고, 학습 인센티브를 다양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생애주기별로 개인의 자율에 따라 학습하고 역량·경력개발 할 수 있는 실질적 체계를 마련하여 확대해야 한다. 직업교육 및 학습활동과 관련된 정책들은 주로 연령 제한적 정책들에 초점을 주는 경향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에서 전환하여 연속적인 학습활동이 진행되고 시행착오 경험 축적이 혁신체제 내 배움 자산이자 사회적 자산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 생애 발달에 따른 연속적 학습 및 직업훈련체계를 실질화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생애주기에 따라 경력의 패턴을 바꾸어 나가며 그 성과가 자신의 경력에 대한 만족과 몰입, 직무와 조직에 대한 만족과 몰입, 일과 삶의 균형, 사회적 기여 등에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으로의 전환을 이뤄낼 필요가 있다.

셋째, 단일 직업(job)이 아닌 포괄적 직업을 고려한 학습 지원체계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 직장에 머무르는 근속기간과 기술변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에 직장 내 수행하는 직무와 관련된 직무역량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업 및 이직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는 역량개발 지원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기존 과업을 중심으로 한 역량개발을 넘어, 포괄적 관점으로 역량개발 및 학습지원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혁신체제의 궁극적 지향점은 단순히 성장과 발전 중심 논의가 주를 이루는 ‘고소득 국가’를 넘어서야 한다. 단지 돈이 많은 국가가 아닌, 개개인이 다양하고 고유한 역량을 발견하고 학습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필요가 있다. 이에, 앞서 언급한 주요 대전제이자 접근을 바탕으로, 학습순환사회를 중장기적 비전으로 설정하고 혁신체제의 전환을 도모할 때이다. 학습순환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혁신체제 전반의 건전성과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혁신정책이자, 일자리 정책이자, 복지정책일 수 있다. 더 나아가 개개인이 잠재적 혁신 주체로서 다양한 영역에서 가치 실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시민 권리 증진에도 기여해 사회 전반의 건전성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여영준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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