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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승민] 인도 ‘기술비전 2047’을 통해 본 과학기술정책의 시사점

작성일 : 2019-09-25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인도 ‘기술비전 2047’을 통해 본 과학기술정책의 시사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ETRI 스쿨 과학기술경영정책학과 교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 미래전략 2045」 ICT분과장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 박사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 9월 3일 ‘2050년 세계 예측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정책’이라는 주제로 제1회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본 고는 학술세미나의 세션 I, ‘2050년 세계의 미래’의 발제자로 나선 Ranjan 교수의 ‘India Vision 2047: Designing Future of India’에 대한 토론자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과학기술정책에 관한 견해이다.


현재 DY Patil 국제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직 중인 Ranjan 교수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인도 과학기술부 산하 기술정보예측평가위원회(TIFAC)에서 ‘기술비전 2035’ 책임자로 일했다. 인도는 정부 차원에서 과거 두 차례의 과학기술 장기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술비전 2020(1996년)’와 ‘기술비전 2035(2016년)’가 그것이다. 주제 발표에서, Ranjan 교수는 ‘기술비전 2035’ 개발을 주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비전과 목표, 전략, 12개 분야별 로드맵을 자세히 소개했다. 또한, 인도 독립 100년이 되는 2047년을 향한 ‘기술비전 2047’에 대한 개인적 포부와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발표와 토론에서 인도와 한국 정부가 지난 20년 전부터 수행해 온 과학기술 장기정책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며, 두 나라의 독립 100년을 향한 과학기술 협력 방안과 발전 가능성을 논의하였다.


우선, 인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했던 지난 두 차례의 과학기술비전 작업은, 우리나라에서 추진했던 ‘2025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비전(1999년)’, ‘과학기술 미래비전 2040(2010년)’ 등 두 차례의 과학기술 정책과 매우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도의 ‘기술비전 2020’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양적 성장을 목표로 했다면, ‘기술비전 2035’에서는 국민 개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목표로 전환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또한, 우리나라가 추진한 과학기술 정책 목표와 비슷하다. 특히 놀라운 점은 ‘기술비전 2035’는 5년이라는 기간 동안 매우 체계적이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전개해 왔으며, 대단히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 전략으로 발표한 문서가 단순히 구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부 부처에서 ‘기술비전 2035’를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정책의 일관성과 실행력을 엿볼 수 있었다. 토론과정에서 알게 된 인도 정부의 장기 과학기술정책의 실행력은 향후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미래전략을 추진함에 있어서 몇 가지 의미있는 시사점을 준다.


첫째, ‘기술비전 2035’에서는 모두 12개 sector에 대해 기술로드맵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총 200개 이상의 기술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 전체에서 도출한 기술들, 그리고 이들 기술을 통해 2035년 인도가 바라는 비전을 향한 각 sector별 목표를 설정한다. 그런데 최근의 기술 변화가 무척 빠르다. 기술 간 융합하거나 확산하는 속도뿐 아니라 기술 도태의 속도도 빠르다. 기술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20년 후를 바라보고 작성한 장기 로드맵이 한 번의 작업으로 완성된다는 것은 실효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런 장기 전략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모든 기술로드맵은 가장 상위 목표로 설정한 ‘인도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야 함을 명확히 하고, 이것에 부합하도록 기술로드맵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기술 환경 변화와 산업현장의 특성을 반영해서 장기 로드맵을 탄력적으로 수정, 보완하는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기정책이 실행력을 가지고, 단기정책과 연계되기 위해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둘째, 과학기술정책의 세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행이 중요하다. 20년 후 장기비전이 실행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12개 sector에 대해 로드맵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신기술과 새로운 서비스가 기존 비즈니스모델과 충돌하거나 이해당사자 간 갈등을 유발하여 기술의 확산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인도 정부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책 담당 공무원이 순환 보직제에 따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업무가 바뀌기 때문에, 일관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의 실행과정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Ranjan 교수가 만든 ‘Foundation 2035’는 매우 의미가 크다. 시민 단체가 중심이 된 이 조직은 ‘기술비전 2035’를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액션 아이템들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를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정책의 실행여부를 정부에 보고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직면하고 있는 신기술의 사회적 수용성 제고를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셋째, 인도는 세계에서 인구배당(demographic dividend) 효과를 2055년까지 누릴 나라로서, 한국이 2027년이면 하락세를 보이는 경우와 대조를 보인다. 그만큼 인도의 잠재력이 크다. 올해 우리나라는 독립 100년이 되는 2045년을 향한 ‘과학기술혁신 미래전략 2045’를 마련하고 있는데, 기술인재 부족이 가장 어려운 점으로 나타났다.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역량에 비해 SW부문의 전문 인력은 매우 부족하다. 반면 인도는 젊은 인구가 많고 특히 SW 인력이 풍부하다. 양국 간에 비슷한 점도 많고, 상호 보완적인 부분도 많기에 향후 과학기술 분야의 인적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는 접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인도의 강점인 문화와 다양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Ranjan 교수의 비전이 인상적이었다. 인도는 2047년을 향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급속한 과학기술변화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인도 고유의 문화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마찬가지로 독립 100년을 향한 2045년 대한민국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강국이자 남북 분단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30년 후 물질적, 정신적으로 세계적 리더로 성장하려는 두 나라가 앞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튼튼한 협력의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