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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 전염병의 파괴력과 다자주의의 위기

작성일 : 2020-03-27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전염병의 파괴력과 다자주의의 위기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장

대한민국 공공외교위원회 민간위원

국방부 소요검증위원회 자문위원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멈춘 일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전염병의 끝은 어디이고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와 경제적, 사회적 고충을 감수해야 하는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해 많은 역병이 일시적으로 끝났지만, 인류의 운명과 역사의 향방을 바꾼 경우도 많았다. 군사적, 정치적 원인이 아니라 전염병에 의해 왕조나 문명이 몰락하였고, 정복전쟁의 성패가 갈렸으며, 인명피해도 엄청났다. 역사상 최초의 팬데믹이라 불리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6세기 비잔틴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 재위 중 식민령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지중해 연안 전역으로 퍼져 5천만 명가량의 목숨을 앗아갔고, 천 년 이상을 이어져 온 제국 몰락의 신호탄이 되었다. 300년 가까이 중국을 통치한 명나라가 만주족의 침략에 몰락한 것도 17세기 중반 창궐하여 전체 인구 40%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에 기인한 바 컸다.


전염병은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도 하였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가장 강대했던 아테네는 예기치 못한 역병의 창궐로 인구의 4분의 1이 숨지고 전력과 통치력을 상실한 채 스파르타에 패배하였다. 2세기 로마제국의 안토니우스 황제 시절 파르티아 원정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통해 퍼진 천연두는 5백만 명을 사망케 하였다. 비슷한 시기 중국 후한에서도 여러 해에 걸쳐 ‘안토니우스 역병’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되는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당시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 종교집단인 태평도의 세력이 커져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면서 한나라가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 파르티아는 로마제국과 중국의 한나라, 인도를 잇는 중계무역으로 번성했던 지역이었고 이 시기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실크로드와 인도와 동남아지역을 연결하는 해상무역로가 확립된 것을 고려하면, 안토니우스 역병은 ‘전염병 국제화’의 첫 사례라 하겠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대도시는 최적의 바이러스 번식지이고 교통의 발달은 대전염병으로 번지는 좋은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들어 도시가 발전하고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전염병의 파괴력은 더욱 커졌다. 14세기 중앙아시아 무역로를 통해 전파된 흑사병의 창궐로 유럽에서는 반세기 동안 전체 인구의 절반 이 목숨을 잃었다. 막대한 인명피해로 일손이 부족해지자 농노들의 처우가 개선되고 영주들이 임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중세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싹이 트게 되었다. 기도가 아닌 위생과 검역으로 흑사병이 종식되자 신권이 하락하고 왕권이 강화되었고 인본주의적 기풍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흑사병은 또한 유럽인들로 하여금 밖으로 눈을 돌려 장거리 항해에 나서게 함으로써 제국주의 팽창을 촉진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15세기 말 본격화된 유럽의 식민주의는 엄청난 인명손실을 가져왔다. 본국에서 이미 면역력을 키운 식민지 개척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며 들여간 역병에 내성이 없는 원주민의 95%가 몰살된 것이다.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를 따라 들어온 천연두의 창궐로 수십만 아즈텍인들이 사망하고 1521년 제국은 몰락하였다. 잉카제국에서도 천연두 확산으로 전의를 상실한 8만 명 잉카제국 병력이 200명도 안 되는 스페인 군대에 1572년 정복되었다. 이후 아즈텍과 잉카사람들은 가톨릭을 믿는 스페인인들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믿던 신을 버리고 개종하였다.


전염병은 정복전쟁을 좌절시키기도 하고 전쟁의 고충을 배가시키기도 하였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생도맹그(아이티)에서 흑인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1801년 나폴레옹은 2만 5천 명의 진압병력을 보냈다. 하지만 황열병으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간 프랑스 병사는 3천 명에 불과했다. 서아프리카에서 유행하다 흑인 노예들을 통해 신대륙으로 들어온 전염병에 유럽인들은 면역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아이티에서의 철수를 결정하였고, 1804년 아이티는 중남미 최초의 독립국이 되었다. 또한, 나폴레옹은 북미 대륙에 대한 식민지 팽창 야심도 버리고 미국 정부에 루이지애나 영토를 헐값에 팔았고, 그 덕에 미국 영토는 두 배로 커졌다. 한편, 1812년 5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정벌에 나선 나폴레옹이 병력의 80%를 잃고 퇴각한 것은 혹독한 추위보다 발진티푸스 전염병이 더 큰 원인이었고, 이후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편, 역사상 최악의 독감으로 알려진 1918년 스페인 독감은 미국 내 병영에서 시작되어 전쟁 교전국들이 보건 문제를 비밀로 유지하는 가운데 중립국 스페인 언론에 의해 널리 알려진 전염병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오랜 전쟁에 면역력이 약해진 병사들을 중심으로 전 대륙으로 확산하여 5억 명이 감염되었고 5천만 명 넘게 사망하였다. 이 수치는 전쟁 자체로 희생된 1천 6백만 명을 세 배나 훌쩍 넘는 규모였다. 세계대전의 참화가 전투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전염병으로 이어져 고통과 피해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통해 전염병은 인간의 역사를 수없이 변화시켰다. 인류는 20세기 이전까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늘 패배하여 하나의 문명이 몰살되고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의약과 기술의 발달로 1940년대 페니실린 항생제를 포함한 전염병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면서, 1969년 윌리엄 스튜어트 미국 공중위생국장은 전염병의 종식이 목전에 있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그 후에도 에이즈(AIDS), 사스(SARS), 신종인플루엔자(H1N1), 메르스(MERS), 에볼라 등 신종 감염병들이 속출하였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가 분석한 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농경 생활을 통해 처음 만들어진 전염병은 인구가 밀집되어 숙주가 많아지고, 인간 문명이 발달하여 교류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심각한 인류의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라고 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암울한 진단처럼, 제4차 산업혁명과 최첨단 지능정보기술로 대변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염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공포는 WHO가 분류한 전염병 6단계 중 가장 심각한 단계인 팬데믹일뿐 아니라 경제적 충격 면에서도 전대미문 급이다. 이에 더해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두려움과 “의도치 않은 전염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 때문에 심리적 위기의식도 증폭하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죄의식이나 책임론에서 벗어날 돌파구가 필요해서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병이 돌 때마다 소수자 혐오나 희생양 찾기, 그리고 악의를 갖고 괴담을 퍼뜨리는 정보 전염병(infordemics) 현상이 난무해왔다.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했을 때 희생양을 찾아 나선 사람들은 수천 명의 유대인과 동성애자 등을 주범으로 몰아 산채로 불태워 죽였다. 스페인 독감이 퍼지자 미국에서도 독일인, 동유럽 이민자, 혹은 흑인들 때문이라며 그 원인을 소수자에게 돌렸다. 이렇듯 눈앞에 닥친 위기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인간의 그릇된 사고는 다양성과 다문화주의를 역설해온 오늘날 미국과 서구 유럽에서도 지속하고 있다. 코로나19를 ‘아시아 코로나’라고 하며 동양인 혐오와 차별 논란이 커지고 ‘묻지 마 폭행’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설상가상 우려스러운 것은 난민사태와 경제침체 및 포퓰리즘 리더십의 강화로 민족주의나 보호주의와 같은 배타주의적 성향이 짙어지고 있던 지구촌에 불어닥친 감염증 확산으로 세계 각국이 아예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로 자본과 사람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정보통신기술의 급진전으로 초연결사회에 살게 된 국가들이 외국인 입국 금지, 의료품 수출금지조치와 같은 신보호주의 정책을 통해 지구촌을 단절시키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가 아시아와 서구 선진국에 이어 방역과 의료기반이 취약한 저개발국으로 번질 경우, 이러한 자국 중심의 배타주의적 전략은 걷잡을 수 없는 지구촌 대참극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팬데믹으로 인한 한시적인 국가 간 단절은, 과거 역병들이 하나의 제국이나 세계사적 문명을 몰락시킨 것처럼, 세계화와 정보화의 커다란 흐름 속에 구축된 초연결 지구촌을 와해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의 국제관계는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유럽의 극우주의 부상,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의 트럼프주의 등이 반증하듯 최근 수년 동안 가시화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침식과 다자주의의 퇴조는 팬데믹 이후 더욱 급속하게 진행되어 국제적 행동 양식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다자주의의 쇠퇴는 냉전 이후 미국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와 글로벌 자유무역 시대에 형성된 생산과 소비의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 급속하게 위축되는 경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아가 경제분쟁, 정치분쟁 등의 완충 영역들이 줄어들면서 그러한 분쟁들 또한 자주 분출할 것이다. 그러면 세계 각국은 다른 국가들의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자국 안전을 우선시하기 위해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보험시스템’ 혹은 국가안전망을 과도하게 구축할 수밖에 없고 이는 종국에는 국제질서의 재편으로 귀결될 것이다.


물론 지난 26일 주요 20개국 협의체(G20) 정상들이 특별화상회의에 참가하여 코로나19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였듯이, 전 세계가 직면한 공동의 문제해결을 위해 다자간 협력에 공감하고 일시적인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향후 세계 각국은 글로벌 또는 국지적 위험이 닥쳤을 때 사실상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음을 체감하고 국가별 생존 차원의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할 개연성이 훨씬 더 크다. G20 공동선언문이 발표된 지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시진핑 국가주석이 외국인의 중국입국 금지를 전격으로 발표한 것도 이러한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제적 공조외교를 통해 글로벌 위험요인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종합적으로 모색해야 하고, 국제위기 극복의 구심점으로서 국제기구의 전문성과 대표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글로벌 위기상황에서 국가이기주의나 국내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정책적 대응은 자칫 지구촌 전체에 재앙이 될 뿐 아니라 부메랑이 되어 자국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권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간 다자협력과 소통 가능성을 때로는 실험적으로, 때로는 과거 실수의 복기를 통해 찾아가는 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과 경험들이 하나둘씩 쌓여갈 때 우리는 공생과 상생이 궁극적으로 더 큰 국익임을 체감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