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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칼럼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외부 전문가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황석원] 감염병 확산 下의 아주 가까운 미래

작성일 : 2020-04-22 작성자 : 통합 관리자




감염병 확산 下의 아주 가까운 미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연구재단 기술사업화 전문위원



前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시스템연구 본부장
前 ICT R&D 열린혁신위원회 위원(IITP)




미래 전망이라고 하면 대개 짧으면 몇년 길면 몇십년 앞을 내다보게 마련이다. 벌써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에 미래 전망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BC(Before Coronavirus), AD(After Defense)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당장 큰 타격을 입은 대면 서비스업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영향이 오래 남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뉴노멀(New Normal) 시대 온라인 쇼핑과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고, 원격 교육은 당장 닥친 현실이 되었다.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대면 진료의 위험 때문에 원격 의료의 필요성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다. 곧 규제 완화 논의가 본격화되리라 기대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과정에서 필수 제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각국은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역이 중요한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2020년 4월 중순 현재 인류는 아직 COVID-19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확진자 발생이 정점을 지나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증가세가 꺽이지 않은 나라가 많다. 미국처럼 감염 확산과 확진자 격리 사이에서 일종의 균제 상태(steady state)에 놓인 국가도 있다. 한국을 비롯한 소강 상태의 나라들도 제2파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사회적 거리두기와 폐쇄(lockdown) 정책을 펴고 있으나, 불가피하게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수반된다. 적극적 검사 및 확진자 격리를 통해 감염자를 줄여나가는 정책도 각국이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말 가까운 미래 전망이 중요한 이유는, 언제 경제 활동을 재개해야 하는지, 적어도 언제 폐쇄 정책을 완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과 의사결정이 국가 경제의 사활을 결정할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주 가까운 미래임에도, 예측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매일 방대하게 기록, 공유되고 있는 데이터를 이용해 많은 연구자들이 모델링 하고 있으나, 당장 눈앞의 미래에 대해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자연법칙만이 주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면 과학자들이 어떻게든 답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미래를 만드는 것은 자연법칙만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이 같이 작용한다. 그야말로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피터 드러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 폐쇄 정책, 정부 정책에 반응하는 시민들의 자기 규율, 사회 문화 등이 감염 확산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기술과 의료 산업이 결합한 적극적 방어 무기로서 대량 검사를 통한 확진자 발견 및 격리 치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여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과학기술, 사회, 경제, 정책에 관한 다학제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이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증거기반 정책 수립이 필요한 것이다.


효과적으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감염병 확산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와 모델로 미래를 전망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검사 관련 의사결정에 집중하여 몇 가지 논하려고 한다. 검사는 과학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수치로 명확히 계량할 수 있으므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좋은 본보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검사보다는 사회적 거리두기나 폐쇄(lockdown) 정책이 일상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일반 국민의 주된 관심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증상 감염자를 중심으로 어디선가 감염 확산이 계속되고 있다면, 적극적인 검사를 통해 감염자를 발견하고 격리 치료하는 것이 폐쇄 정책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런데 검사는 비용이 든다. 한국은 상당한 키트 생산 및 검사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어떤 나라는 검사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 감염 확산이 한창 진행중일 경우, 정부와 보건 당국이 내려야 할 중요한 의사 결정은, 검사를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가이다.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확진자 발생 추세에 비추어 검사를 얼마나 많이 수행해야 감염병을 통제할 수 있는지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다면 아주 유용할 것이다.


필자는 최근 긴급하게 '적극적 검사를 통한 COVID-19 통제 모형'을 연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첫째, 감염 확산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시점에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폐쇄 정책을 완화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검사를 얼마나 늘려야 감염 확산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감염 확산이 한창 진행중이어서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추가적인 폐쇄 정책을 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결국 검사를 통해 감염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검사를 수행해야 증가 추세를 꺾을 수 있을 것인가?


두 질문의 공통점은 사회적 거리두기나 폐쇄 정책을 더 강화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완화해야 하는 상황, 즉 적극적인 검사 수행이 중요한 상황에서 나오는 질문이라는 점이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매우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나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중간 결과라도 보고를 하려 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폐쇄 정책 완화가 큰 이슈로 등장했다. 경제 활동 재개를 위해 폐쇄 정책을 완화한다면, 본격적으로 폐쇄 정책이 추진된 3월 중순 이전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연구에 따르면 그럴 경우 미국의 감염 계수가 1.47배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검사를 2.4배 이상 늘려야 감염 확산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략 27만~32만 건 정도의 검사에 해당한다. 연구 결과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현재 검사 수 수준은 확산 저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 검사 수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4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확진자를 확실하게 감소시키지는 못하고, 신규 감염과 검사를 통한 격리가 균형을 이루는 일종의 균제 상태처럼 되었다.


물론 모형은 언제든 틀릴 수 있다. 복잡한 현상에 대한 관측 결과는 모형을 자주 배신한다. 필자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의 중간 결과도 며칠 사이에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비상 상황에서, 매일 매일 데이터를 모으고 모델을 추정하는 것은 꼭 필요한 노력이다. "상황이 닥치면 계획은 쓸모 없어진다. 하지만 계획 수립은 필수불가결하다." (아이젠하워)


지금까지 논의는 검사 역량이 충분한 국가에 적용되는 얘기다. 만약 감염 확산을 위해 필요한 최소 검사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국가라면 진단 키트를 수입하거나 폐쇄 정책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여러 나라가 동시에 감염 확산 중이라 방역 물품을 수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폐쇄 정책 강화가 유일한 길인데, 이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수반한다. 위기 상황에서 해당 국가가 R&D 역량을 갖추고 있고, 긴급 하향식(Top-Down)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검사 역량을 확충할 수 있다면,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평소에 상향식(Bottom-Up)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연구자가 하고싶어하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하고 R&D 역량을 키워왔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한국은 둘 다 잘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몇 년간의 노력을 통해 R&D 투자, 특히 기초원천 분야 투자를 크게 늘려왔고, 그에 발맞춰 기업들은 진단키트 개발 및 생산 역량을 키워왔다. 과학기술은 평소의 투자가 긴급한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가장 비극적인 상황은 검사 역량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든 정부의 폐쇄 정책이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 때는 감염 확산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이럴 때 지수함수적 증가를 가정하고 있는 모형들은 적어도 몇 할의 국민이 감염되는 상황을 예측하고 있다. 한국이라면 몇천만 명, 미국이라면 억 단위가 된다. 몇 만건 또는 몇 십만 건의 검사 및 격리를 수행한다 해도 별 의미없는 상황이 된다. 이럴 때는 종종 논의되곤 했던 집단 면역(herd immunity)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유럽의 몇몇 나라가 겪었거나 겪고 있는 수준은 애교에 불과할 만큼 압도적으로 의료 역량을 초과하는 환자가 발생하고, 그 가운데 수많은 환자들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COVID-19와 같은 바이러스 방역은 전쟁과 같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계획, 데이터와 모델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일반 전쟁과 다른 점이 있다. 기밀 유지나 보안이 아니라, 과학기술, 경제학, 정책학 전문가 사이의 지식 공유와 협력이 중요하다. 이미 많은 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더 크게 더 많이 개방하고 공유하고 협력하여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