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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만우] “포스트 코로나19 세상에서는 새로운 인간성이 나타날 것이다”

작성일 : 2020-05-29 작성자 : 통합 관리자



“포스트 코로나19 세상에서는 새로운 인간성이 나타날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국립정신건강센터 연구기획관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19 시기를 맞이하면서 예상치 않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확진자 ‘제로’의 상태에 이르지 못했고, 심지어 지역사회의 확진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감염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사로잡은 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은 단지 유효한 백신을 아직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의 지체 또는 미흡함에 있지 않고, 그것을 제어할 대응수단이 이전에 직면했던 감염병(MERS, SARS 등) 위기와 사뭇 다르게 마련되어야 함에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코로나19 대유행이 우리에게 미치는 변화의 범위와 수준과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방역 중심의 보건의료체계에만 국한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정치체제와 국가권력, 재정 및 경제시스템, 법제도, 그리고 나아가 일상생활의 소비패턴 및 종교적 가치체계 등 우리의 사회적 행동 양식 전반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


사실상 이러한 변화의 범위와 수준은 우리가 바이러스 대유행의 영향으로부터 어떻게 회복되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의 말대로 문제의 핵심은 코로나19 자체에 있지 않고,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라 각종 미디어 매체가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듯 상황을 묘사하고 증폭시킨 심리적 테러와 공포, 즉 일종의 공황심리이다. 


한국은 위기를 관리하는 디지털 감시를 바이러스의 확산을 제어하는 방역수단으로 체계화하였고, 그 감시의 규율을 보건의료 자원의 동원을 위한 정보기술로 정립하여 시민사회 감염의 초기부터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을 이끌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는 코로나19 대유행 정보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법적, 과학적 안전장치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퓰리즘적 정치선전에 귀를 기울이는 ‘나이브한’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유행에서 벗어나 사회를 ‘재부팅’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방식은 지구촌 국가들 사이 거의 흡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단계와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일 것이다. 대유행의 진행에 따라 공중보건시스템을 정비하고 국민 대중의 의식적 준비 정도에 따라 경제의 부정적 파급 효과를 완화하면서 사회안전망을 재구축하는 ‘회복’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대유행을 벗어나기 위한 방역체계 등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체계를 정비하고 새로운 일상(시민 모두에게 생활보장의 표준 제공)을 기획·실현하기 위해 관련 정책 및 법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국가의 방역기관(질병관리본부)을 확대하고 보건의료 인력을 체계적으로 배치하여 서비스 제공 인프라를 확대하고 자원제공 능력을 제고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그 결과는 아마 원격진료(비대면 의료) 및 원격케어를 현실적으로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교육 영역에서의 e-러닝과 원격교육, 그리고 비지니스 영역에서의 원격노동(tele-work)과 맞물려 사회 전체적으로 ‘디지털 정보관리 국가체제’가 성립될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이 국가는 사회 정책적 기능을 확대하여 국민의 일상생활 보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정부도 고용보험 확대, 재난지원금 지급 등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넘어선 전 국민 대상의 각종 수당정책을 집행하면서 재정 지출 또는 비용 충당 방식의 사회정책을 시행했고 앞으로 주기적으로 계획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현재의 코로나19 위기는 바이러스 대유행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행동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에 그 본질이 있으므로, 이 영향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회복’의 정치는 현 상황에 제한된 임시적 또는 제도적 대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대유행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심리·사회적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대유행은 일단 우리가 사는 현 세상을 다음과 같은 두 방향에서 변화시킬 것으로 예측한다. 먼저, 정치적 정당성 중심의 ‘통치성(governity)’이 변화할 것이다. 정치적 중심으로 실현된 지배-종속의 권력 관계가 데이터 또는 정보관리 중심의 디지털 감시 및 통치와 시민 역량의 대립 구도로 변화할 것이다. 대유행 이후 사회에서는 새로운 정치이론이 성립될 수 있는데, 신분 세습이나 종교, 그리고 특히 민주주의 선거에 기인한 정치체제의 정당성은 데이터 또는 정보관리의 주체성을 두고 펼쳐지는 권력 동학으로 바뀔 것이다. 이제 ‘거짓’ 정보와 ‘진실’ 정보 사이의 대립은 ‘확신’ 정보와 ‘불확실’ 정보의 대립으로 전환되어 더 이상 법령 등 전통적인 통치수단은 ‘진실’ 정보가 명확하게 확인하는데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정보를 생산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채널을 선택하는 방법이 그 진위와 관계없이 정보를 ‘확신’ 정보로 만드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사람들을 모니터하는 과정은 스마트 기기들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몸에 대한 외적 통제를 넘어 마음에 대한 내적 통제로까지 나아갈 것이다. 이것은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종의 예방수단으로 코로나19의 초기 발발 시 오보를 제거하기 위해 중국에서 이미 실행되기도 하였다. 중국 당국은 사람들의 스마트폰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거리에 수억대의 얼굴 인식 카메라를 배치·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확인·보고하도록 의무화함하고 의심되는 코로나바이러스 보균자를 신속하게 식별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포스트 코로나19 세상에서는 정부와 기업 모두 정교한 감시기술을 발전시켜 사람들을 추적·모니터링하고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보를 조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역으로 ‘감시’하지 않으면 국가와 기업의 디지털 감시를 정당화시켜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라리의 표현대로 “피부 아래 감시(Under the Skin Surveillance)”, 즉 심리적 지배·통제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시민이 하루 종일 체온과 심장박동을 모니터하는 생체기구를 지니고 다닌다고 가정해 보면, 그 축적된 데이터는 온전히 정부의 알고리즘에 의해 저장될 것이고 분석될 것이다. 알고리즘은 한 사람이 병식이 있기 전에도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특정인의 현재 위치와 그/그녀와 접촉한 사람도 알 수 있다. 이렇다면 감염의 사슬이 촘촘히 짜질 수도 있고, 완전히 절단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감시기술은 단기간에 전염병을 추적할 수 있으나 치명적인 것은 이 감시기술이 건강 유지라는 명목으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어떤 성향의 기사를 클릭하고 어떤 부류의 유튜브 방송을 보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성격 지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우리가 이전에 겪었던 경험과는 사뭇 다른 ‘인간됨’의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획기적이었던 ‘인간됨’의 경험은 ‘불의 발견’과 ‘농경의 시작’, 그리고 ‘산업혁명’이었다. 앞의 세 가지 경험과 달리 소위 ‘비대면’ 사회의 ‘인간됨’의 경험은 새로운 융합적 과학기술의 실현, 그리고 사물 인터넷 사용 의사소통과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우위성으로 특징화된다. 디지털 감시기술로 실현된 몸과 마음에 대한 지배는 멈출 수 없고, 사람들을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가상현실의 우위성은 억제될 수 없다. 이 감시기술과 가상현실은 우리의 실존과 행동을 표지하고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기도 한다. 나아가 이것들은 현행 정치체제나 경제시스템 및 사회제도에 영향을 주고, 궁극적으로 문화적 규범이나 종교적 가치체계의 변화도 유발한다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19 세상에서는 바이러스 대유행 이전과는 매우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새로운 ‘인간성(humanity)’이 나타날 것이다. 집단행동에 미치는 코로나19의 영향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일과 일상생활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바이러스 대유행의 각종 의례(사회적 거리 두기, 손 씻기 등)를 실행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지속적으로 관련 노동 및 건강과 생활 정보 등에 목말라 할 것이고 이 정보에 입각하여 남들과 고립·분리되어 사고하고 행동할 것이다. 정치체제, 법제도 및 경제시스템 모두가 감시기술에 포획된 정보 추구 또는 데이터 지향의 인간성에 조응할 것이다. 우리가 ‘회복’의 정치를 고민하면서 현행 보건의료제도의 개혁과 사회안전망의 재구축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성이 나타나는 것 자체가 심리·사회적 대응전략이 필요한 이유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사라질 것이고 수많은 바이러스 희생자가 있더라도 인류는 여전히 생존할 것이다. 하지만 대유행은 지난 세기부터 지속되어 온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고 사회안전망을 보존·확대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부분적으로 성공하거나 또는 실패한 바로 그곳에서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19 세상을 재구성하는 ‘회복’의 정치를 다른 방향에서 구상해야 한다. 심리·사회적 대응전략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정신분석 하기’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정신분석의 목적은 히스테리 ‘고통’을 일상적인 ‘불행’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것은 개인과 사회를 위한 일종의 ‘성취’라고 하였다. 프로이트의 통찰력을 되살려 우리는 대유행이 가져다준 고통과 슬픔을 일상적인 불행으로 전환하여 그것을 포용하면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불행은 창조성, 용기, 소망, 사랑과 같은 긍정적 감정 형태와 마찬가지로 ‘인간됨’을 이루는 심리·사회적 요소이다. 우리가 이 고통의 시기에 ‘인간됨’의 복잡성을 이해함으로써 고통에서 빠져 나와 불행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보다 현명한 자율적 주체로서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상호 연대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행동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