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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칼럼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외부 전문가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수정] 미래의 가치를 향하여

작성일 : 2020-08-20 작성자 : 통합 관리자



미래의 가치를 향하여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


법원 전문심리위원

대검찰청 경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

여성가족부 정책위원




전국이 임대차 3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임차인들을 보호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입법된 법률들이 일시적으로 전세매물의 잠김 현상과 반전세의 증가를 가지고 왔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내년에 혼사를 앞둔 아들은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 눈치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모든 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하니 점차 집값이 안정되기를 기대해본다.

한편 월세를 받아 생활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지금도 그분들의 보유세를 대신 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내년에 더 무거워질 세금고지서가 부담된다. 그렇다고 하여 두 집 중 한 집을 팔아치우기도 어려운 것이, 50% 가까이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 때문이다. 반만 남은 집값으로 과연 돌아가실 때까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자고로 1가구 1주택의 시대이다. 청와대 비서진 중에서도 다주택자인 자들은 홍역을 치렀고 앞으로 공직에 진출할 자들은 애당초 부동산에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집을 최우선의 관심사에 두게 되었을까? 결국 인간의 욕구와 관련된 지식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욕구와 관련하여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은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1908~1970)의 욕구단계 이론이다. 인간의 욕구에는 다섯 단계가 있는데, 이들 단계는 위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아래 단계의 욕구를 충족하지 않으면  높은 단계로는 상승할 수 없다고 한다. 맨 아래에는 생물학적 욕구가 자리잡고 있어서 식욕, 수면욕, 성욕 등이 인간을 좌우한다. 생물학적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나면 그제서야 안전의 욕구를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주거지에 대한 욕구라고 볼 수 있겠다. 안정적인 주거지가 마련되면 그다음으로는 소속감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때 소속감이란 가정을 이루는 것, 학교나 직장 등 조직에 소속되는 것 등이다. 그다음으로는 자아존중 욕구를 충족시키기를 원하는 데 타인에게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는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삶의 궁극적인 가치를 위하여 개개인은 자아실현을 도모한다.

매슬로우가 제시한 욕구단계에서 보자면 한국인들에게 집을 갖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과거 사오십년 대에는 아마도 많은 한국인들은 가장 아랫단계의 생물학적 욕구조차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산업화를 거쳐 복지제도가 충원되면서 다수의 국민들은 2단계 이상의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의 경우에 이 정도로 분화된 사회구조를 지닌 국가라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목표가 더 이상은 부동산 구입이 아닌 보다 상위의 가치에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즉 소속감이나 자존감 혹은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데, 한국은 어찌하여 자타공인 선진국이 된 지금에도 2단계의 욕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집이란, 안전한 주거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넓고 편안한 한적한 곳의 가옥보다 한국인들에게는 집은 강남 3구에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내 집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는 것은 그 개인이 소속된 공동체의 특성을 뜻하기도 한다. 즉 집은 3단계의 욕구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동시에 집은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느 지역에 몇 평짜리 아파트를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스스로 느끼는 자긍심의 정도도 달라진다. 오늘날 심지어는 갭투자라도 하여 분양권에 당첨되는 것을 자아실현의 구체적 방안이라고 착각하는 젊은이들까지 존재한다. 한국에서의 부동산 앓이는 매슬로우의 2단계 욕구인 안전욕구를 넘어 3단계, 4단계, 5단계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특약처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공급의 문제는 단순한 시장주의를 넘어 더 이상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만이 아닌 ‘그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기성세대의 적폐 문제로 비춰지면서 관료들이 몸살을 앓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누구나 지향했던 규범적 욕구였던 ‘살 곳’의 소유가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정책의 목표를 잘못 설정한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강남 3구에 사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들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안전한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전달했었다면 이렇게까지 양극화로 인한 논쟁이 부각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에도 인간의 욕구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철학자로도 유명한 에리히 프롬의 이론이다. 그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자아실현뿐 아니라 관계성, 초월, 소속감, 정체감, 지향 틀, 흥분과 자극 등이 존재한다고 제시하였다. 그의 이론과 매슬로우 이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욕구를 위계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매슬로우 이론에 비하여 프롬은 다양한 욕구를 일종의 가치지향 형태로 제시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특히 프롬의 관계성이나 정체감을 향한 인간의 욕구에 대한 깨달음은 후에 그의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결실을 이루는 듯 보인다.

프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장이나 자아실현이 방해될 때 일종의 위기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지금 사람들이 지니는 강남 3구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아마도 프롬이 지적한 바로 그 자아실현에의 방해물 정도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프롬의 그다음 지적인데, 이렇게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을 발견했을 때 인간은 공격성이나 사디즘, 마조히즘 및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권위주의로 빠지게 되기 쉽다고 한다. 다주택자였던 청와대 비서관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프롬은 이런 위기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매슬로우도 최상의 욕구 단계로 제시하였던 자아를 실현하는 생활을 그 대안으로서 제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이의 관심이 부동산으로 쏠린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재산상의 가치가 아닌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자기만족을 하는 것이 자아실현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토대로 보자면 일하는 목적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해석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인간이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몰입의 경험, 즉 '플로우(Flow)'란 상태라고 하였다. 이때 ‘플로우’란 어떤 행위에 깊게 몰입해 있어서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등을 모두 잊어버릴 만큼 즐거움을 느끼는 심리상태, 즉 ‘황홀경’을 느끼는 순간이라 하겠다. 바로 이 순간 인간은 극도의 자기만족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자아실현이 아닐까? 이런 감정은 물질적 가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수고하여 얻은 경작물을 보며 농부는 노동에의 몰입에서 삶의 가치를 찾을 것이며 밤새 작업에 몰입한 결과 예술가는 명작을 얻을 것이다. 삶의 가치, 그것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만족한 삶을 살 수도 타인의 소유물을 부러워하며 신세 한탄만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