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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미래 정책시스템의 틀: 격변과학기술에 대한 신중한 경계

작성일 : 2020-12-10 작성자 : 통합 관리자

미래 정책시스템의 틀 :

격변과학기술에 대한 신중한 경계

김태윤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현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2020. 12. 10.


미래 정책시스템의 틀: 격변과학기술에 대한 신중한 경계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와 사회에의 영향의 폭과 깊이가 현격하게 증대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과거와 단절시키는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격변과학기술(disruptive science & technology)에 대하여 국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신중한 경계]라는 개념에 기반하여 리스크 관리 차원에 초점을 두고 미래의 정책시스템의 틀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신중한 경계(prudent vigilance)


prudence와 vigilance


신중함(prudence)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주의 깊고 올바른 판단을 뜻한다. 정치철학에서의 prudence는 구체적인 문제 상황에서 이론적 단순화에 입각한 판단을 피하면서 주의 깊게 현상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1) 정치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학자인 한스 모겐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연원한 prudence에 대해 정치적 행위에는 신중함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갈파하였다. 국가의 행동은 객관적인 법칙에 기초한 현실주의나 추상적인 도덕 원칙 중 어느 하나만을 기준으로 적용할 수 없고 시간이나 장소 등의 구체적인 상황을 반영해야 하는데, 이러한 정치적 행위는 선택의이루어지는 반면 인간의 지식은 선택의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겐소의 이러한 통찰은 유럽식의 이상적인 유토피아 국가관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에 입각한 정치적 사고방식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고, 냉전 이후 미국의 국제 정치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경계(vigilance)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을 알아차리기 위해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2) 심리학 용어로서의 경계는 어떠한 자극이나 새로운 정보의 출현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PCSBI 보고서의 prudent vigilance


미국의 ‘생명윤리이슈연구에 관한 대통령 위원회(PCSBI)’는 합성생물학을 비롯한 신흥기술에 관한 새로운 정책 방식으로서 신중한 경계(prudent vigilance)를 제안하였다. 신중한 경계는 공공의 혜택을 최대화하고 잠재적 리스크를 경계하기 위해 연구의 자유와 규제의 강화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면서, “위해를 주의 깊게 모니터링, 식별 및 완화하는 지속적인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한다3). 이러한 접근방식은 공공안전이나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기술발전을 추구하는 행동지향적 접근이나 모든 리스크를 파악하고 방지할 때까지 기술적 진보를 차단하는 사전예방적 접근을 둘 다 지양하는 것이다. 즉, 신중한 경계는 기존의 방식보다 진화된 과학기술정책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PCSBI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이점을 극대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5개의 윤리 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른 18개의 정책 권장 사항을 제시하였다. 5대 윤리 원칙으로는 공익, 책임있는 관리, 지적 자유 및 책임감, 민주적 숙의, 정의 및 공정이 있다. 각각의 윤리 원칙에 따른 정책 권장 사항을 제시하였는바, 첫째, 공익 원칙을 위해서는 공공 지원의 적절성 검토 및 발표, 유망연구에 대한 지원, 공유를 통한 혁신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둘째, 책임 있는 관리 원칙을 위해서는 협력 및 조정활동, 리스크 평가 및 환경방출에 대한 평가, 감시⬝방지⬝통제, 사전 위험평가, 국제적 협력 및 논의, 윤리 교육, 이의 제기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 등을 위한 정책적 보완을, 셋째, 지적 자유 및 책임감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 책임과 의무의 증진, 안전 및 안보 위험에 대한 주기적 평가, 관리감독 정책을 제시했다. 넷째, 민주적 숙의 원칙을 위해서는 과학⬝종교 및 시민 참여, 정보의 정확성, 공공 교육 정책을, 다섯째, 정의 및 공정 원칙을 위해서는 연구 활동의 리스크, 제품 생산 및 유통에서의 리스크와 편익을 고려하는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제시하였다.  



격변과학기술과 리스크


격변과학기술은 기존의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므로 그 파급력이 강력하다. 합성생물학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개발로 의약품, 농축산물, 바이오 연료 등의 분야에서 혁신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한 개체가 자체적으로 변이를 일으킨다면 의도하지 않은 유전자 변형을 가져와 전 세계 식량 생산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누군가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조작하고 탄저균처럼 공기로 전파되는 새로운 병원체를 만들어낸다면 최악의 경우에 감염병이나 바이오 테러와 같은 글로벌 리스크를 초래할 것이다.

 원자력이나 군사과학과 같은 고전적 격변과학기술에 더하여 최근에 등장하는 격변과학기술의 리스크의 주요 속성으로는 첫째, 자체적, 파생적, 우연적 리스크의 발생 규모 내지는 그 충격(severity)가 가히 무한대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으므로, 합성생물체가 어떻게 진화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알려지지 않은 무지(unknown unknowns)’의 영역이 확실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리스크의 개연성(probability)을 예측하기 어렵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불확실성이 확대되어 다양한 리스크 발생 기제와 인과관계가 중첩되어 있다. 셋째, 리스크의 가역성(reversibility)이 낮다. 리스크가 발생한 후에는 원상회복의 가능성이 낮고 이전 상태로 회복하는데에 불가능에 가까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넷째, 과거 어느 때보다도 국민들의 리스크에 대한 인지와 수용성이 중요해졌다. 시장의 명료성, 관료제의 합리성, 정치의 대의성의 과정과 절차로 이루어진 기존의 정책시스템으로는 과학기술을 진흥하고 리스크를 통제, 관리하기가 불가능해졌다.



신중한 경계형 정책의 예시: 리스크 관리 사이클


격변과학기술의 대두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한 미래형 대안으로서 신중한 경계에 기반한 정책을 예시적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이 진행될수록 리스크의 유형과 파급효과, 수용가능성 등 기존에 파악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정보가 지속적으로 추가될 것이다. 격변과학기술에 대한 리스크 관리는 리스크 분석, 리스크 평가, 리스크 모니터링, 리스크 피드백 단계를 거쳐 추가된 정보를 반영하여 리스크 재분석과 재평가를 계속해서 진행하는 순환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리스크 분석 단계에서는 리스크의 발생가능성을 포용적으로 상정하고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분석 시점에서의 리스크는 과학기술의 첨단에서 논의되는 사안이므로 리스크의 특성을 첨예하게 파악하는 문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적 연구결과와 기술동향분석을 빠르게 파악, 반영해야 한다. 해당 분야의 리스크를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많지 않을 것이며, 다양한 관점의 반영이 필수불가결하므로,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협의체를 기반으로 투명하고 신속한 리스크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리스크 평가 단계에서는 과학적 데이터를 기초로 리스크가 개인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해야 한다. 독립적인 기관에서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리스크의 기준을 정하고 리스크의 발생규모, 지속성, 개연성, 가역성 등 해당 리스크 고유의 특성을 평가해야 한다. 또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리스크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시스템을 고안하고 설계해야 한다. 셋째, 리스크 모니터링 단계에서는 보다 많은 가용정보를 확보하여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을 도입해야 한다. 영상⬝음성 정보나 위치 정보, 제품의 소비패턴 등 여러 형태의 데이터를 AI로 분석하여 리스크의 발생 여부와 피해규모, 발생가능성과 예상피해규모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모니터링 단계에서의 발견과 질문은 분석과 평가 단계에 지속적이며 수시로 피드백되어야 한다.

 넷째, 리스크 피드백 단계에서는 선행 단계에서 얻은 분석과 평가, 모니터링의 결과를 통합하여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통합된 리스크에 관한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대중의 피드백을 유도하여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재정의(Re-Definition)하고, 정부의 리스크 관리에 대한 신뢰를 얻어서 격변과학기술의 리스크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선행 단계에서 미비했던 분석을 보완하고 심층 논의를 거쳐서 재분석과 재평가 단계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재분석, 재평가, 재정의의 끊임없는 피드백에 기초한 투명-탄력-최첨단 전문성이 미래정책의 핵심속성이다. 이러한 속성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 거대한 양의 정보의 축적과 스마트한 처리, 즉 AIWare의 조합이다. 범정부적으로(부처나 기관의 장벽을 헐고) 하루빨리 준비해야 한다. 



리스크 적응형 제도패키지


격변과학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국가경제사회문화의 미래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격변과학기술의 혜택을 향유하면서 리스크를 통제 내지는 관리하는 두 가지 과제들 모두 생존의 문제들이다. 과학기술수준이 높아지고 해당 리스크에 대한 이해가 확보되어야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원자력 안전을 지키려면 전문인력과 조직, 시스템과 기술적 역량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면서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가동시켜야 안전에 대한 실험과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생명바이오, AI 등 다가올 격변과학기술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과학기술역량이 있으면 리스크도 헤쳐나갈 수 있겠으나, 그나마도 없으면 속수무책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다. 따라서 격변과학기술의 리스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책적 근간은 격변과학기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격적으로 연구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국민들의 창의적 자발성의 폭발과 도전을 위해서 정책의 기본 방향을 원칙허용으로 하는 네거티브 규제화는 필수적이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제도가 필요하다. 첫째, 성과규제, 경제적 보상, 보험, 정보제공 등의 다양한 규제대안을 조합한 전혀 새로운 정책조합(PolicyMix)을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 일방통행식 명령지시적 규제로는 격변과학기술을 다루지 못한다. 둘째, 자동조정 조항을 제도에 도입한다. 리스크 모니터링이나 리스크 재평가의 결과가 특정 조건에 도달하면 연구개발을 제한하거나 새로운 규제가 추가되는 방식으로 정책이 전환되도록 제도화하여 정책의 탄력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인다. 셋째, 자율규제를 적극 활용한다. 연구자나 기업이 자율규제를 도입하도록 권장하여 연구개발단계 또는 제품화 이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넷째, 과학자와 연구개발자들이 제도로 인한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물리적, 심리적, 제도적 공간을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 모든 활동이 가능하고 장려되는 연구단지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리스크를 국가가 책임지는 [격변과학기술신산업혁명연구단지]의 조성도 생각해봄 직하다. 마지막으로 격변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원자력, 바이오, 의료, AI, 데이터 등등의 분야에서 최소 몇십만 명씩의 전문가들을 교육훈련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로 강사진을 꾸려서 수십, 수백만을 가르쳐도 한계비용이 0인 교육훈련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러한 과정의 부산물로서 리스크커뮤니케이션도 자연스럽게 원활해질 것이다. 




 1) 전재성(1999),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의 고전적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메타이론적 검토와 실천지의 의미
 2) 케임브리지 영영사전 검색. https://dictionary.cambridge.org/dictionary/english/vigilance 
 3) PCSBI(2010), New Directions: The Ethics of Synthetic Biology and Emerging Technologies.  



김태윤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 / 대학원 과학기술정책학과 책임교수
前 국회예산정책처 예산정책연구 편집위원장
前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前 한국규제학회 회장
하버드 케네디 스쿨 공공정책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