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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대전환기의 분기점으로서 2021년의 국가전략

작성일 : 2021-02-09 작성자 : 통합 관리자

대전환기의 분기점으로서

2021년의 국가전략

곽재원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2021. 02. 09.


대전환기의 분기점으로서 2021년의 국가전략


2020년은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끝났다. 2021년은 그 영향으로 버블과 빙하기가 동거하는 이상(異常)사태에서 출발했다. 중국, 대만, 일본은 2020년을 ‘역(疫)’, ‘밀(密)’, ‘봉(封)’이라는 하나의 한자어로 표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만연과 관련된 단어들이다. 


2020년은 이러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러한 타격과 함께 산업과 기술의 대전환을 맹렬한 기세로 가속화시키는 결과도 가져왔다, 정보통신, 에너지, 바이오, 의약 분야를 포함한 산업과 기술의 획기적인 변혁과 코로나19 사태는 중첩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도 있다. 테슬러와 GAFAM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MS) 같은 글로벌 플랫포머들의 주가는 상상을 넘는 수준으로 오른 반면 항공, 숙박 등 서비스 업종은 극심한 침체에 빠진 양극화 현상이 뚜렷이 드러났다.  


2021년은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하나씩 있을 거라는 조크가 있다. 굿 뉴스는 재앙의 해인 2020년이 마침내 지나갔다는 것이고, 나쁜 뉴스는 2021년이 전년보다도 나빠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치료제도 곧 나올 거라는 뉴스는 큰 안도감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쇼크 속에서 자산 가격이 급등하는 이상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실물경제와 괴리된 이 같은 ‘버블’이 언젠가는 깨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지금은 중앙은행이 시행한 금융완화로 생겨난 ‘합리적 버블’이기에 지난 1990년대의 ‘근거없는 열광’으로 들끓었을 때와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합리적으로 생긴 버블이라서 합리적으로 수습될 것이라는 묘한 기대도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올해의 한자어를 ‘난(亂)’으로 잡고 싶다. 대전환기에 겪는 대파란을 뜻한다. 2021년은 ‘소의 해’다. 과거를 돌아보면 소의 해에 경제와 정치가 대파란을 겪었다. 1973년 석유 위기(중동 오일쇼크) 때는 유가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큰 고통을 겪었다. 1985년 뉴욕 플라자 합의(엔화강세·달러화약세)로 세계 무역과 산업 환경이 급변했다. 1997년 국제 외환위기로 각국에서 금융파탄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2008년 리먼 쇼크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는 주요국들 경제를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뜨렸다.  


세계 각국들은 지난해에 이어 2021년에도 방역대책과 경제재건에 몰두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세계 지도자들은 야심 찬 정책을 내놓으며 이 상황을 반전시킬 ‘게임 체인저’를 찾고 있다. 지금까지 울려온 기후변화에 대한 경종을 기후위기의 사이렌으로 격상시켜 일제히 ‘제로 탄소 사회 실현’을 들고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년 세계의 10대 톱 리스크를 발표하는 미국의 유라시아 그룹은 최근 ‘톱 리스크 2021’에서 1위를 ‘46*’로 잡았다. 미국의 제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을 꼽으며 주석 ‘*’를 달았다. 새 대통령이 나오면 오히려 종전의 리스크 요인을 떨어내는 게 상례지만 바이든 출범과 그 정권의 행로가 녹록치 않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트럼프 없는 트럼프(with 트럼프), 소멸하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with 코로나) 시대를 끌고 가야 하는 바이든 정권의 내재적 리스크 요인을 주석 달린 대통령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라시아 그룹은 바이든 대통령 다음의 리스크로 코로나19의 장기화, 기후변화(배출 제로를 선도하는 책임 있는 강대국의 부재), 미국과 중국의 긴장 심화, 데이터 패권시대(글로벌 데이터 거래와 기술의 주도권 경쟁) 등을 꼽았다.  


지난 20일 조용하게 치러진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은 이러한 리스크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전통적으로 민주주의의 원점을 확인하는 축제였다. 국제사회는 초강대국의 새 리더가 쏟아내는 취임사에서 세계의 침로(針路)를 가늠해 왔다. 그러한 미국이 지금 코로나19와 함께 국민 갈등과 국격 추락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정권이 떠나도 국내외에 산적한 난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파란 속에 출발한 바이든 대통령이 과연 합중국의 재통합과 국제질서를 재생하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세계인들은 지켜볼 것이다.  


미국의 미래를 향한 그의 첫 행보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지구온난화대책의 국제협약인 ‘파리협정’에 복귀하고, 세계 보건기구(WHO)의 탈퇴 철회를 결정하는 총 15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방 시설에서의 마스크 착용도 의무화했다. 21일에는 코로나19를 억제하기 위해 백신 공급 가속화 등을 겨냥한 총 10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에 이렇게 많은 행정명령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사회의 혼란과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책의 전환을 국민들에게 부각시켜 지지를 넓히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이 같은 ‘바이든 시프트’(Biden Shift)의 과정과 결과가 올해 세계 최대 뉴스거리로 장식될 전망이다. 경제, 통상, 외교 안보, 이민, 교육,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반(反) 트럼프, 탈(脫) 트럼프를 결정하는 바이든 시프트 전개가 예고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포스트 코로나의 경제학’을 그리는 싱크탱크들이 많아지고 있다. 일본 다이와 종합연구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8개의 글로벌한 구조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연구소는 첫 번째 구조변화로 이익지상주의에 바탕한 글로벌 자본주의가 SDGs(지속가능목표)를 중심에 둔 이해관계자(스테이크 홀더) 자본주의로 전환될 것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다음 구조변화 사례로 격차 확대로 인한 반(反) 글로벌리즘· 내셔널리즘의 등장 리스크, 미중대립 격화에 따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전쟁 가능성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재구축, 부실채권 문제의 심각화에 따른 잠재성장률 저하, 재정수지 악화에 따른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융합 현상도 주요한 구조변화에 포함시켰다. 원격근무 사회의 도래로 기업의 신진대사가 이전보다 중요해진다는 점과 중앙집권형에서 분산형 네트워크로의 전환으로 지방이 각광받는다는 점도 제시했다.  


다이와 종합연구소가 분석한 구조변화는 한마디로 뉴노멀(新常態)이라 불리는 전혀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를 이 연구소 보고서는 묻고 있다. 이러한 생존 전략은 각국에 공통된 과제일 수밖에 없다.  


미 바이든 행정부는 기술패권 시대에 대응한 과학기술 중시정책의 일환으로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의 책임자를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는 한편 제조업 르네상스를 위해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을 일체화시켰다. 과학기술 발전과 제조업 강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겨냥한 포괄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스가 정권은 올가을을 목표로 500명 규모의 전문인력이 포진하는 디지털청(廳)을 출범시킨다. 스가 총리는 민관 디지털 혁신을 정권의 승부수로 삼고 있다. 중국 시진핑 정권은 올해부터 시작한 제14차 5개년 계획에서 첨단 과학기술과 산업 육성을 모든 정책의 중심에 자리매김했다. 


이같은 미국, 일본, 중국의 사례는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국가 미래를 이끌어 갈 원동력은 과학기술 혁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에 제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을 강조했다. 집권 중반에 접어들면서 미래자동차, 반도체, 바이오 등 3대 산업의 육성정책을 들고 나왔고 후반기에 진입하면서 한국판 뉴딜정책을 내걸었다. 코로나19 경제대책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한국판 뉴딜정책이다. 이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 100조 원 시대에 과학기술 정책이 국가 경제정책을 선도하는 첫 사례가 된다. 따라서 한국판 뉴딜정책의 핵심에 있는 한국의 과학기술력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비대면 사회에서 달라진 교육방식, 일하는 방식, 삶의 방식을 지탱하는 다양한 과학기술 활용과 의료·제약 기술의 국제 경쟁력 등도 점검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포용사회 실현에 과학기술이 기여토록 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국가 미래 전략으로서 이제 과학기술의 근육을 강화시키는 모멘텀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많은 불확실성이 있는 시대에서는 세계 또는 한국 정치·경제의 개별 현상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큰 흐름을 감지해 분석하고 대응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 예측이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았다고 해도 변화를 선취하거나 또는 대비하면서 상황에 따라 수정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2021년을 대전환기의 분기점으로 삼아 변화의 거친 파도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세계무대에서 주요 플레이어 역할을 모색할 수 있는 귀중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곽재원

곽재원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현 가천대학교 교수)
前 서울대학교 공대 객원교수
前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