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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칼럼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외부 전문가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정의화] 신뢰자본 구축이 대한민국을 위한 최고의 투자

작성일 : 2018-10-04 작성자 : 정의화(전 국회의장)

신뢰자본 구축이 대한민국을 위한 최고의 투자



정의화(전 국회의장)



  세상의 변화가 정말 빠르다. 지난 한 세기 격변의 세월을 겪어온 우리에게는 특히나 그러하다. 기적 같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성취의 영광, 그리고 개발시대의 여러 성장통은 이제 옛 기억이 되었고, 이제 우리 사회는 저출산, 저성장의 늪에서 힘겹게 몸부림치고 있다.


  안타깝지만, ‘소득주도 성장론’은 활력을 잃어가는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에게 해답이 아닌 듯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꿈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확대로 양극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해묵은 지역갈등은 물론 계층과 이념 갈등에 이어 이제는 세대 갈등까지 커지고 있다.


  남북관계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연이은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 성과는 분명한 진전이다. 북한 핵폐기 과정에 상응한 미북관계 정상화와 종전선언, 평화체제의 수립이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과 새로운 동북아 평화질서 확립을 주장해온 필자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남북, 미북 관계 개선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한반도 통일의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 저출산・고령화, 신성장동력 발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동북아 질서 문제 등은 중장기적 전략을 세워 대응해나가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때그때 미봉적으로 대처하는 관성을 되풀이해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로에 빠질 것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필자가 국회의장 재임 시 국회미래연구원 설립을 제안하고 그 실현에 매진했던 이유이다. 어렵사리 출발한 국회미래연구원이 중장기적 국가정책과제를 정파적 요구나 단기간의 이익을 초월하여 꾸준히 연구해 명실상부 국가백년대계를 세울 수 있길 충심으로 기원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적 과제를 긴 안목으로 풀어나가는 외에도 반드시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신뢰사회’를 구축하는 일이다. 사회적 신뢰는 사회 공동체의 협력, 상생의 기반을 이루는 무형의 자산으로 물적 자본, 인적 자본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의 기본적 토대이다.


  세계적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20여 년 전 저서 ‘트러스트(Trust)’를 통해 당시의 대한민국을 저신뢰(low trust) 국가로 분류하면서 이를 개선하지 못하면 중진국의 덫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측했다.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신뢰 자본은 중진국 수준에도 미달된다.


  필자는 평소부터 선진민주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다섯 가지 기둥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우선, 사법부 판결에 대한 신뢰이다. 국민들이 사법부의 판결을 믿지 못한다면 안심하고 살 수 있을까. 최근엔 대법원 행정처의 이해하기 힘든 행위들로 인해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심각한 의혹이 제기 되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까지 국민적 신뢰가 무너진다면 대한민국은 존립할 수 없다.


  다음 기둥은 교육계이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팽배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 미래를 짊어져야할 교육이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자들에게 소명의식을 불어넣고 존경심을 아끼지 말아야하는 이유이다. 세 번째 기둥은 의료계이다. 의사의 진단을 불신하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의료계의 왜곡현상들이 우후죽순처럼 드러나면서 의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네 번째는 언론계이다. 언론의 정론직필이 무뎌진다면 사회는 균형을 잃고 정화기능이 급격히 약화될 것이다. 가짜뉴스와 댓글조작 등 일련의 사태로 국민들은 불신의 늪에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끝으로 관료사회이다. 우리나라의 부패수준은 세계 40위 내지 50위 수준이다. 여기에는 관료들의 부패가 크게 한몫하고 있다. 투철한 국가관은 기대난망이고 권력과 금력에 대한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면 국가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것이다.


  우리 국가를 받치는 이 다섯 개의 기둥이 모두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대단히 우려스럽다. 국민행복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초가 돼야 할 사회적 신뢰가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도 사회적 불신해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고민을 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


  신뢰자본 구축이 최고의 투자이다. 신뢰사회를 만드는 일은 긴 시간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뢰사회의 다섯 기둥이 튼튼하게 서 있어야, 우리가 그려나가려 하는 미래 대한민국의 설계 역시 바르게 펼쳐나갈 수 있음을 모두가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