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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류호정] 4차 산업혁명·기술혁신 시대의 시민 덕목

작성일 : 2022-01-26 작성자 : 통합 관리자

4차 산업혁명·기술혁신 시대의 시민 덕목 글.류호정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현 정의당 국회의원) 2022.01.26


4차 산업혁명·기술혁신 시대의 시민 덕목


미래를 이야기할 때 누구나 쉽게 고르는 의제가 있고 누구나 쉽게 취하는 태도가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이다.


다가오는 미래는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 인터넷과 무인 운송, 나노 기술과 3차원 인쇄의 7대 분야 기술혁신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기술 패권을 가진 인간과 인간 공동체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진단이 된다. 곧 그 진단은 기술 강국 건설, 기술 인재 육성이라는 날렵한 처방이 된다.



그런데 이런 논리적 연쇄에 어쩐지 빠진 것이 있다. 도덕·윤리·질서라고 해야 할지, 존중·예의라고 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오늘은 '시민적 덕목'이라고 표현하려고 한다. 우리말샘은 이를 '사회 일반 공동체 생활 속에서 시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가치 항목. 공중도덕, 준법정신, 공동체 의식 등을 들 수 있다'라고 풀이한다. 지금의 인간 세상이 극복하지 못한 어떤 문제에 관한 이야기다. 앞으로의 인간 세상에 훨씬 더 심해질 수 있는 그런 문제에 대한 이야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다. 우리 인간은 하루 대부분을 온라인 공간에서 보낸다.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와 온라인 공간에서 주로 소통한다. 일터와 학교는 물론이고 일상을 보내는 공간 대부분에서 그렇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정보를 온라인에서 얻고 공유한다. 어쩌면 오프라인-대면 관계보다 온라인-비대면 관계에서의 그것이 더 중요해졌다. 도덕·윤리·질서라거나 존중·예의 같은 시민적 덕목 말이다.



악플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에 이른 연예인의 소식은 이제 별로 놀랍지 않다. 국회의원이 된 20대 여성 정치인 류호정도 매일 악플과 함께 살아간다. 비단 연예인과 정치인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댓글로, 단톡방 캡처로 왕따나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일반인도 있다. 이른바 '사이버불링'은 주로 약자를 향한다. 남성보다는 여성을, 중장년보다는 청년을, 기득권 정당보다는 소수정당을 공격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아직 모른다. 권위주의 독재를 경험한 대한민국은 특히 더 그렇다. '표현의 자유'는 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의 기본권이고, 시민권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15년 전 인터넷 실명제 같은 얄팍한 대안은 이슈로 떠오른 즉시 폐기됐고 뚜렷한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인터넷 게시판은 커뮤니티가 됐고 글과 사진은 영상이 됐다. 콘텐츠의 자격에는 선정성과 오락성만 남았고 콘텐츠 생산자의 자격에는 촬영과 편집, 업로드 같은 기술만 남았다.



명예훼손, 모욕,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 법이 있다. 처벌하기 위해 법규가 있다. 그러나 연예인은 대중의 미움이, 정치인은 지지자의 변심이, 일반인은 보복이 두렵다. 그리고 어렵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고 최소한의 상식을 저버린 행위에 대한 단죄는 당연하지만 힘이 든다. 포용력 없는 사람이라는 비아냥, 스트레스가 분명할 일거리가 눈앞에 뻔하기 때문이다. 처벌도 약해 실제 효과도 별로 없다.

만사를 법이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뜨뜻미지근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답은 '공감과 연대'다. 예컨대, 대면-오프라인 사회에서 욕망을 절제하고 비인간적 행위를 제어하는 동기는 '체면'이라는 문화, '평판'이라는 질서다. 시민적 덕목을 유지하는 그동안의 비결은 문화, 질서, 그리고 법이다.



4차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고 연대다. 각 개인을 파편화하지 않고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드는 공감이고 연대다. 공감이 문화가 되고 연대가 질서가 되고 필요 최소한의 법과 제도가 정비되면 우리의 시민적 덕목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기술 강국 건설, 기술 인재 육성 좋다. 그러나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같이 살기 위해 존재한다. 번쩍거리는 연구실 안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것처럼 더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공감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연대하게 하는가. 그런 담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전문가들은 그렇게 하고 우리는 허름한 노포에라도 앉아 서로를 알아보자. 그런 시간을 좀 더 가져보자.

류호정

제21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