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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대한민국 위기의 근저에는 정치의 위기가 있다

작성일 : 2022-01-27 작성자 : 통합 관리자

대한민국 위기의 근저에는 정치의 위기가 있다 글. 이태규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국민의당 국회의원) 2022.01.27


대한민국 위기의 근저에는 정치의 위기가 있다
글. 이태규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국민의당 국회의원)


정치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동의어다. 한국 정치 위기의 원인은 절충과 타협을 통한 갈등 조정이라는 정치 본래의 의미와 기능을 상실한 것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있다. 저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이지 않는 규범, 즉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가지 요소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들고 있다.

상호 관용이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하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헌법이라는 공동체의 기본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 모든 세력을 적이 아닌 정당한 자격 있는 경쟁자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다. 제도적 자제란 지속적인 자기통제와 절제, 그리고 인내를 통해 입법 취지를 존중하며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제도적 권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법적인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기존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권리행사를 자제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정치인들은 경쟁자에게 적폐 세력, ‘내로남불’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서로 존재 이유 자체를 공공연히 부정하고 있다. 상대를 공존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증오와 배제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렇게 만들어진 상대에 대한 적대적 규정과 낙인이 지지자 사이에 퍼지고, 이런 생각으로 무장한 지지자들이 더 강하게 상대를 부정하면서 적대적 선동을 하는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 강고한 일체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강성 정치인이 강성 지지자들을 만들고, 그런 강성 지지자의 환호가 정치인들의 더 강한 발언과 선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진영정치의 모습이며 그 결과는 상호 관용 없는 사회, 갈등과 분열, 떼법으로 무장한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는 반이성적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제도적 자제 역시 한국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연속적으로 승리한 민주당은 행정권력, 의회권력, 지방권력 모두를 장악했다. 이런 제도 권력을 바탕으로 권위주의적인 국정 운영을 강화하고 의회의 견제 기능을 무력화시켰다. 이에 맞서 야당은 여당이 주도하는 입법 과정에서 타협보다는 무조건 반대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쪽은 제도 권력에 대한 자제 없이 권력의 사유화에 가깝도록 최대한 권력을 행사했고, 한쪽은 무조건적인 반대를 거의 유일한 전략으로 채택하면서 정치의 기능과 역할은 완전히 상실됐다. 그 과정에서 진영정치에 편승한 기득권은 더욱 공고해졌으며 국민연금 개혁과 공적 연금통합 같은 진짜 개혁은 국정의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사실 이것은 최근 몇 년의 현상만은 아니다. 지금의 제1야당이 여당이었던 시절을 포함해 지난 수십 년간의 여의도 정치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 중 하나는 ‘강행’ 혹은 ‘날치기’였다. 여기에는 증오와 배제의 진영정치, 단절과 부정의 잘못된 역사의식, 그리고 입법부를 행정부의 거수기로 생각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있었다.

상대의 부정과 권력 남용의 가장 큰 폐해는 사회의 갈등 조정 장치가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한쪽이 이기면 모든 것을 가지는 승자독식의 정치시스템과 문화에서 승자는 가질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한다. 언제 패배할지 모르고, 패배하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이다. 정권의 탐욕은 무한대가 되고 갈등 조정을 위해 필수적인 의회민주주의, 합의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어진다. 결국, 사회 시스템은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이든 기득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공고화된다. 당연히 사회적 약자의 몫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는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내각제, 이원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개헌을 통한 권력 구조 개편을 대안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물론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해서 그 분산된 권력을 가진 각 주체가 책임 있게 국가를 운영해 나간다면 지금의 후진적인 정치행태가 어느 정도 제어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은 정치와 권력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말 단어 대통령(大統領)은 ‘통령’에서 나왔다. 통령(統領)은 ‘일체를 통할하여 거느리는 사람’을 말한다. 통치자요, 지배자라는 뜻이다. 반면 영어 프레지던트(President)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뜻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자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일 뿐이다. 통치자(ruler)보다는 규칙(rlue)과 합의(agreement)를 만드는 과정에서 갈등과 이견을 조정하는 중재자(mediator)에 가깝다. 미국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지만 예산 편성권도, 법안 제출권도 없는 행정부의 수반인 것은 대통령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인식을 반영한 결과가 아닐까.

통치자가 아닌 대통령이라는 중재자를 사이에 놓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다양한 의견의 대립 속에서도 타협과 절충으로 합의된 결과물을 내놓는 정치, 이것이 미국인이 설계한 미국 민주주의의 모습인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선 승자는 있어도 독식은 없고, 갈등은 있어도 파국은 없다.

향후 우리 정치의 과제를 요약하면 결국 타협과 절충을 통한 갈등 해결의 장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갈등 유발의 근원인 승자독식의 정치를 끝내고 연합의 정치, 합의의 정치로 한국 정치를 바꾸어가야 한다. 그 해법은 제도개혁도 중요하겠지만, 권력을 바라보는 정치인과 국민의 시각을 모두 바꾸고 갈등 해결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복원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이 정치 본질의 고민과 함께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정치가 안 돌아가는데 나라가 잘 돌아가기를 바라고 서민 대중이 편안하기를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이태규

국민의당 대선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
제20대, 21대 국회의원
전) 국민의당 사무총장
전)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