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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용혜인] 한국 경제의 신화적 성장에 가려진 불평등과 미래 과제

작성일 : 2022-02-09 작성자 : 통합 관리자

한국 경제의 신화적 성장에 가려진 불평등과 미래 과제 글. 용혜인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현 기본소득당 원내대표) 2022.02.09


한국 경제의 신화적 성장에 가려진 불평등과 미래 과제
글. 용혜인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현 기본소득당 원내대표)




지난 40년의 대한민국 사회를 압축해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을까. 나는 두 그림을 제시하고 싶다. 하나는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의 신화적인 상승 추이다. 건국 당시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경제 규모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국가가 된 다른 사례는 찾기 어렵다. 명목 GDP는 근 40년 동안 25배 늘었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역사상 처음으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가 됐다. 여기까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서사다.


다른 하나는 최근 발간된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 한국 편에 수록된, 1980년 이래 소득 상위 10%와 하위 5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1980년 전체 소득의 33%를 점유하던 상위 10%는 2021년 46%를 가져간다. 반면 1980년 23%를 점유하던 하위 50%는 2021년 15%밖에 가져가지 못하게 되었다. 1980년에는 10% 남짓했던 격차가 꾸준히 커져 2021년에는 30% 차이에 다다르게 되었다. 부자는 상대적으로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 사회가 된 것이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과실은 원래 부유했던 이들이 독차지하는 양상이다. 이는 영광의 서사만을 보여주려 했던 대한민국 사회가 감추려 했던 어두운 일면을 드러낸다.


두 그래프를 근거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 먼저 성장. 과거의 신화적 경제성장을 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이른바 ‘로지스틱 곡선’의 전형적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산업화 시기의 급격한 성장 국면에서 저성장 국면으로 한참 전에 진입했다. 성장률을 5%나 7%로 끌어올리겠다는 약속들이 난무해도, 근 10년 동안 경제성장률 4%를 한 번도 넘어서지 못한 게 현실이다. 여기에 기후위기에 따른 탄소감축, 글로벌 팬데믹, 후발국의 추격, 인구감소와 같은 부정적 변수가 산적해 있다.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할 때, 2% 가량의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만 있어도 선방했다고 보는 게 현실적 판단이다.



이걸 배경으로 두 번째 그래프로 넘어가 보자. 저성장 국면에서 상대적 소득격차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소득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으로 부상하지 않았던 이유는 경제성장이 상대적 격차 확대를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비율은 적더라도 몫 자체가 크다면 그나마 납득할 수 있지만, 비율은 그대로인데 가져갈 몫의 크기 자체가 줄면 비율에 대한 의구심은 점차 커지게 된다. 불평등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주요 의제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한국 사회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아예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하고 복지예산을 확충하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령연금을 지급했다. 최저임금은 20년 사이 6배가 됐고, GDP 대비 복지예산의 비중은 1990년 대비 4배가 되었다. 이런 노력이 중첩된 결과 2010년대에는 그나마 양극화가 급격하게 진척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격차 자체가 확대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축소될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성장률 자체를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없는 현실에서, 벌어진 소득격차는 누적된 자산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는 2020년 대한민국 상위 10%가 자산의 60%를 보유하고 하위 50%의 소유는 5% 남짓임을 보여준다. 부의 집중은 세대를 거쳐가며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이미 교육과 노동시장에서 그 징후는 매우 뚜렷하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실질적 계급사회의 고착을 의미하며, 1987년 체제에 기반한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형해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정치의 긴급한 과제는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획기적이고 대담한 계획을 제출하고 공론화하는 것이다.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경제성장률을 제시해서 과거의 성공신화에 편승한다거나, 단순히 가난한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끔만 하면 된다는 접근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격차가 아니다. 조세·금융·교육·복지·산업 등 정책의 모든 영역에서 민감한 이해관계를 건드리면서 대수술에 임할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세력은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칠레나 멕시코처럼 상위 10%와 하위 50%의 소득점유율 차이가 50%를 넘어서는 사회로의 이행을 용납할 것인지, 스웨덴과 프랑스처럼 간격을 10% 이내로 좁힐 수 있는 사회에 도전할 것인지. 그리고 목표에 도달할 구체적 경로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두 그래프의 미래가 어떻게 될런지는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 질문에 답변이 궁한 정당이라면 현재의 의석수와 상관없이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건 확언할 수 있다.

용혜인

제21대 국회의원 / 기획재정위원
기본소득당 원내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