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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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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욱] 온기를 잃어버린 사회, 전환적 공정 담론이 필요하다

작성일 : 2022-03-23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온기를 잃어버린 사회, 전환적 공정 담론이 필요하다 글. 최강욱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022.03.23



온기를 잃어버린 사회, 전환적 공정 담론이 필요하다
글. 최강욱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건강한 사람의 체온은 일반적으로 36.5도 정도 된다. 우리는 몸의 온도를 기준으로 날씨의 변화를 느끼거나, 뜨겁거나 차가운 것으로부터 반사적으로 몸을 보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닌 사회의 온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과거 우리 사회는 ‘차가운 분노 사회’였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적 무관심이 화두에 올랐고, 이런 현상은 특히 청년 세대에서 두드러졌다. 2007년~2010년에 치러진 세 번의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최저 30.1%, 최고 49.4%로 다른 연령대의 투표율을 밑돌았고, 청년의 정치 무관심 개선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20대 청년층의 투표율은 다른 연령층의 투표율과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상회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최근 선거에서 청년의 존재감은 ‘게임 체인저’라는 표현으로 설명해도 과함이 없다.



청년층의 높은 정치적 관심과 참여는 국민의 적극적인 주권 행사와 정치 참여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청년층의 적극적 정치 참여 현상이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분노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분석에 주목해야 한다. 10년 전 차게 식었던 냉소적인 청년층이 이제는 뜨겁게 달궈진 분노로 서로를 상처 입히는 사회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키워드는 다름 아닌‘공정’이다. 공정 담론의 확산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심화되는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에 더해, 구조적 차별이 야기한 서로 다른 출발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일상, 정보 격차로 생겨난 신소외 계층 등 새로운 격차가 생겨난 사회 속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공격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들의 선택은 ‘능력주의=공정’이라는 가면 속에서 적극적 차별을 합리화시키고 나를 위해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서로를 감싸 안을 온기를 잃은 감수성 빈곤 사회에 살고 있다.



재화 등의 물질은 희소하고 제한적이므로 경쟁을 수반한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이 자신에게 분배된 몫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경우 이를 둘러싼 갈등과 경쟁은 치열해진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공익적 관점에서 조정하고 공정한 가치의 배분을 실현해야 하는 주체가 바로 정치 권력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정치는 갈등 조정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균열구조는 정치 권력이 표심을 잡기 위해 파고드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과거 반공 이데올로기와 지역주의는 정당이 쉽게 몸집을 불릴 수 있는 수단이었고, 최근에는 이대남·이대녀 구별짓기, 운동권·꼰대라는 말로 조장한 세대 갈등으로 표몰이를 하는 시도들도 나타났다. 특정 집단을 허구적으로 일반화시켜 분노의 대상으로 만드는 혐오 담론을 공정으로 둔갑하는 정치행태는 매번 새로운 주제로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혐오 담론이 만들어낸 적극적 차별을 합리화시키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도 언제나 등장한다.



우리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 시대에 존재하는 다중적 시간으로 비롯된 서로 다른 인식의 차이가 갈등으로 번지면 이는 곧 미래의 문제가 된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박노자 교수(2021, 한겨레 칼럼)는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오징어 게임>의 배경을 지난 20여 년 동안의 한국 신자유주의 역사, 피해 대중의 분열과 원자화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신자유주의, 약육강식, 승자독식 사회에서 패배한 사회적 약자들이 게임조직자들의 거대한 부정의를 외면하고 서로를 해치는 연대 불가능한 세상의 극단적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과 지금의 공정 담론은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자기 손으로 동료를 해치고, 스스로를 가해자로 만든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제는 공정 담론을 바꿔야 한다. 능력만을 잣대로 능력 없는 약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대판 사회진화론이며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18세기 진화론은 사회적 불평등을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렸고,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을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되었다. 오늘날의 공정 담론은 자연 상태의 진화에 기댈 뿐이다. 인간 사회의 진보적 관점으로 불평등을 조명해야 한다. 게임의 규칙을 이야기하기 전에 게임 참가의 기회가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공공성은 ‘공동체의 조화로운 성장’을 위한 조건이다. 공공성을 실현한다는 것은 공정한 정치, 즉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의미로 치환할 수 있다. 따라서 공공성은 우리가 처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중요한 가치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민의를 정치적 선택에 반영시키는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이념정치가 부활하고 있고, ‘스트롱맨’ 정치인이 나타나 편 가르기를 조장하기도 한다. 우리 상황도 다르지 않다. ‘양극화 정치’, ‘대결 정치’가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려는 노력보다 ‘자기편’을 더 강하게 끌어들이는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

정치개혁으로 국회가 바뀌어야 한다. 여전히 국회는 표를 의식해 작은 결정밖에 하지 못하고 사회적 합의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은 정부에 넘긴다. 국회가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은 연속성을 갖기 어렵고, 편향된 정책이라 비판받는다.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야당은 무조건적 반대로 일관한다. 국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세대나 계층은 뜨거운 분노밖에 표출하지 못한다. 이대로의 대결 정치는 결국 국민의 신뢰마저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지난해 열린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중단 없는 정치개혁을 유일한 조건으로 합당했다. 이재명 후보도 통합정부, 정치개혁을 제안하고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으로 채택했다. 21대 국회에서는 대결의 정치에서 국민의 민의를 충실히 담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로 반드시 바꿔내야 한다. 정치개혁 논의에 각 정당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한다.


최강욱

(현) 제21대 국회의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전) 제21대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전)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전) 육군 법무관, 국방부 검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