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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인공지능 시대와 사람중심 정치

작성일 : 2018-10-15 작성자 : 정세균(국회의원, 전 국회의장)

인공지능 시대와 사람중심 정치




정세균 (국회의원, 전 국회의장)





초불확실성의 시대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라는 종이 세상에 등장한 이래 불확실성은 늘 우리와 함께 해왔다. 생존에 대한 불안감,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 미래와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은 종교를 낳았고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1997년 ‘딥 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을 꺾었을 때만해도 바둑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려면 10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바둑이 체스보다 훨씬 더 높은 복잡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 20년도 지나지 않아 ‘알파고 리’가 세계바둑 최강자 이세돌 9단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알파고 리는 다음 버전인 ‘알파고 마스터’에 100전 100패 하였고, 최근 등장한 ‘알파고 제로’는 알파고 마스터에 맞서 89승 11패라는 압도적 실력차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알파고 제로의 놀라운 점은 바둑기사들의 기보를 전혀 학습하지 않고 스스로 깨우쳐 승리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초지능(Super Intelligence)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30년 이내에 인공지능이 인류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른바 ‘싱귤래리티(Singularity,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잉태할 미래상을 두고 격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혹자는 유토피아의 희망을 노래하고, 혹자는 디스토피아의 음습함에 고개를 젓는다. 전자는 더 많은 자유를 꿈꾸고, 후자는 고삐 풀린 인공지능이 휘두를지 모를 폭력의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호사가들의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은 이미 사회 각 분야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인공지능 의사 ‘왓슨’,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는 이미 식상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소설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요리를 하고, 사람의 기분에 맞춰 대화를 나누는 인공지능까지 등장하고 있다. 단순한 패턴 인식을 넘어 창의적인 영역에서조차 인공지능의 도전이 거세다. 조만간 인공지능이 정치를 한다 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해결을 요하는 많은 문제들은 가치중립적이고, 기술적인 문제가 거의 없다. 항상 이견이 있고 저항이 뒤따른다. 대부분 정치의 권능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들이다. 정치의 역할을 부정하면 그 자리를 관료주의나 시장만능주의가 파고든다.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관리대상으로서의 국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독일의 사상가 막스 베버는 정치를 폭력을 다루는 기술로 정의했다. 균형적 판단과 절제를 잃어버린 정치는 파괴적인 폭력으로 전이되기 쉽다. 때문에 정치는 언제나 흑과 백, 옳고 그름을 가르는 선명함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 속에서 차선을 선택해왔다. All or Nothing 즉 신념과 책임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정치다.

미증유의 변화가 회오리처럼 불어오고 있는 시대, 여전히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재화를 소비하고 있지만 행복은 늘 저 멀리에 있다. 심각한 부의 불평등은 사회통합을 가로막고 뛰는 집값과 높은 실업률은 미래를 좀먹고 있다.


그러나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오뚜기가 결코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무게중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은 실패와 오류를 극복해낸 자기성찰과 교정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정치는 언제나 인간의 몫으로 남아야 한다는 걸 강변하고 싶지 않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이 정치인의 대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정치가 더 분발해야 한다. 사람을 존중하는 정치, 사람냄새가 나는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