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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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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원혜영] 존엄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작성일 : 2018-12-06 작성자 : 더불어민주당

존엄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원혜영(더불어민주당)

14, 17, 18, 19, 20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의장

제20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 위원회 위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언가에 미리미리 대비하는 노력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엇 중에는 실제로 일어나는 것도 있고 일어나지 않는 것도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단 뭔가를 준비하고 본다. 걸릴지 안 걸릴지 모를 암과 같은 질병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것이 그 한 예다.

불확실한 인생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토록 성실하게 준비를 해온 인류가 그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가장 확실한 미래인 ‘죽음’에 대해서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물론 ‘메멘토 모리’의 전통이라는 것이 존재했다고는 하나, ‘죽음을 기억하라’는 그 말은 단지 유한한 실존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뜻이지 본격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라는 실용적인 경고는 아닌 것이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죽음 자체가 갖는 절대성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끝, 절대의 허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의 옛 말은 바로 그런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죽음 이후에 다른 삶 또는 온전한 삶이 있다고 말하는 다수의 종교적 가르침이 존재하긴 하나 이 경우 역시 죽음은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일 뿐이지 죽음 그 자체로 다뤄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그대로 다루는 태도의 확산, 이것이야말로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는 첩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웰다잉 문화의 확산은 꽤 시급한 미래과제임이 분명하다. 현재의 노인정책은 주로 재정투입을 통한 노인복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저마다의 삶의 질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보면 생존에 필요한 것 이외의 영역에서도 노인들 스스로의 각성을 통해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종합적인 플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서 살다가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은퇴를 하게 된다. 노년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년에 던져진다는 말이다. 물론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실존을 ‘피투 된 기투’라고 설명했다지만 노년 이후의 삶에 대해서까지 개인의 실존적 결단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은 전혀 현대적이지 않다. 우리는 인류가 빈곤의 문제를 사회적 과제로 인식함으로써 복지사회로 발전 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중간에 멈춰 선다고 한다. 너무 허겁지겁 달리기만 하면 ‘정신’이 못 따라올까 싶어 달리던 와중에 멈춰서 정신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이 멈춰서는 시기가 노년기에 접어드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폴 부르제는 ‘정오의 악마’에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는데, 바로 이 달리던 말을 멈추고 정신을 기다리는 그 시점에 삶과 죽음을 깊이 있게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달리던 말을 멈춰 세운 그 시점에 구체적으로 개인이 실천해야 할 것들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과 장기기증·장례·장묘에 대한 결정과 같이 ‘육체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결정, 유언장 작성이나 유산 기부와 같이 ‘정신적·물질적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결정, 일기나 사진 등 삶의 기록을 남기고 남아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관계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실천 등이 포함 된다. 전부 죽음을 의미 있게 준비하는 행위들이다. 이러한 웰다잉 문화를 확산 시키는 것은 초고령화 사회에 직면한 우리에게 ‘다가온 미래’로서의 과제일수 밖에 없고, 단순히 개인적 결단이나 민간 차원의 노력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시스템을 갖추고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웰다잉이란 개인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면서 자신의 삶을 뜻있고 가치 있게 마무리 짓는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는 가족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줄이면서 사회적 낭비와 갈등을 제거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법과 제도를 포함해 장기적인 정책적 고려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