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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열] 지속 가능한 고등교육의 미래와 대학의 역할

작성일 : 2019-01-28 작성자 : 바른미래당


지속 가능한 고등교육의 미래와 대학의 역할



국회의원 이찬열

바른미래당

20대 국회 후반기 교육위원회 위원장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 (경기도 수원시 갑)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근무조건·신분보장·보수 및 그 밖의 물적 급부 등에 있어서 차별적 지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한다.”


시간강사는 본래 교원이었다. 1977년 박정희 정부가 유신독재에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던 강사들의 입을 막고, 민주화 운동의 산실 역할을 하던 대학의 자기검열을 강화하기 위해 그들의 교원 지위를 박탈했다. 학문 후속세대인 강사들은 ‘보따리장수’ 신세로 전락했고, 정부는 침묵으로, 대학은 담합으로, 지식의 값어치를 후려쳐왔다.


지난 2003년 서울대 시간강사 故 백준희 씨의 자살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도를 개선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그러나 이는 닿지 않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5년 뒤, 故 한경선 건국대 강사가 목숨을 끊었다. 2010년에는 조선대 강사 故 서정민 씨가 강사의 열악한 처지를 유서에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이후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어 2011년 대학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도록 한 유예 개정안이 통과되었으나, 대학의 행·재정 부담과 강사의 일자리 감소에 따른 대량해고 우려로 양측 모두가 반발해 4차례에 걸쳐 시행이 유예됐다.


법의 성질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사회적 문제가 되어야만, 비로소 제도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이 형성된다. 강사법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목숨보다 무거운 한탄과 자괴감으로 세상을 등진 비극에도 불구하고, 긴긴 세월을 형체 없는 유령처럼 국회를 떠돌아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12월, 필자가 대학과 강사 측이 합의한 단일안을 기초로 대표 발의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교육계의 오랜 갈등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절박함, 이대로라면 유예 개정안이 시행되어, 더 큰 혼란과 해고를 불러올 것이라는 이해 주체 간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내디딜 수 있었던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다.


그러나 일부 대학들의 행태가 가히 가관이다. 강사를 해고하기 위해 겸임교원과 전임교수의 강의시수를 늘리고, 대형 강의, 인터넷 강의를 증설하고, 심지어는 졸업 이수 학점을 줄이는 온갖 꼼수를 획책하고 있다.


그들은 주장한다. 준비가 안 됐으니, 시간을 더 달라고 말이다. 그들에게 묻는다. 법안이 유예됐던 그 긴 시간 동안,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했는가.


개정안은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겸임교원 등에 대하여 1년 이상의 임용 기간을 보장하는 등 강사와 유사한 수준으로 신분을 보장하도록 명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금이나 4대 보험 부담을 덜기 위해 겸임교원으로 강사의 자리를 채우고, 전임교원의 시수를 비정상적으로 늘린다면 당장에 몇 푼의 비용은 절감할 수 있겠지만, 고등교육의 질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자명하다. 이는 대학을 파멸로 이끄는 뼈아픈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강사법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대학 스스로다.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시간강사가 정규직이 되는 것도 아니며, 무기한 계약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시간강사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며, 단지 1년 이상의 임용 기간과 3년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받을 뿐이다.


그러나 일부 대학들이 이를 지나치게 왜곡하고 부풀리며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등록금 동결 등으로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어 왔던 학내 구조조정을 합리화, 가속화하는 방패막이로 강사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재정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 예산안에는 방학 중 임금 지급 관련 예산 288억원이 증액됐다. 이를 점진적으로 늘려가야 하며, 퇴직금, 시간강사 역량 강화, 소청심사위원회의 원활한 운영 등을 위한 지원이 추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렇기에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은 과대 위협이나 사실 왜곡, 불안 조장이 아니다. 정책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함께 재정 당국을 설득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강사에 대한 최소한의 고용안정은 교육의 질,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고등교육의 3분의 1을 책임지고 있는 강사가 개인의 내일을 걱정해야 한다면, 어떻게 학생들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겠는가.


이미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더 늦기 전에 치료해야 한다. 강사법이 유효한 처방전이 될 수 있도록 합의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 고등교육의 짐을 나눠온 시간강사의 역할을 인정하여 안정적인 교육권을 확보해야 한다.


해고에 앞장서고 있는 몇몇 대학들에 간곡히 당부드린다. 공멸의 길이 아닌 공생의 길을 부디 걷기를, 목전의 이익이 아닌 보다 먼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그것이 수십 년 뒤 대학의 경쟁력과 생존력을 담보할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임을 자각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