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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한겨레] 코로나의 진짜 주범은 누구인가

작성일 : 2020-05-19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한겨레] 코로나의 진짜 주범은 누구인가








코로나19가 한국에 상륙하고 한 달쯤 지난 2월16일 새벽, 방아무개(39)씨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탄현역 인근 오피스텔 6층 자신의 방에서 잠을 청하던 중 낯선 움직임이 느껴져 눈을 떴다. ‘푸드덕’ 소리가 들렸고 손바닥 크기의 검은 그림자가 얼굴 위를 지나갔다.


방씨는 작은 새나 큰 나방인 줄 알았다. 불을 켜자 길이 10㎝가량의 검은 물체가 창가 쪽 커튼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방씨는 한참을 보고서도 ‘집박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날 “난리가 났다”는 방씨는 박쥐가 사라진 뒤 방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박쥐를 찾지 못했다.


그 뒤 방씨와 박쥐는 한 달여의 ‘불편한’ 동거를 했다. 별일 없이 지나는 날도 있었고, 갑자기 머리 위로 박쥐가 나타나는 날도 있었다. 방씨는 사스·메르스·에볼라 등 다른 인수공통감염병이 박쥐와 관련이 있고, 코로나19의 유전자도 박쥐 바이러스와 89% 유사하다는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를 들은 터라 걱정이 더 깊어졌다. 3월 중순에야 지인 도움을 받아 창문틀에 낀 박쥐를 밖으로 내보냈다. 방씨는 “불안했지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감염될 가능성은 없으니 안심하라는 연구소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한국박쥐생태보전연구소의 정철운 소장은 최근 박쥐가 아파트에서 발견된다는 연락을 많이 받는다. 주로 ‘동네 뒷산에 들어선’ 새도시 아파트 주민들이다. 정 소장은 “국내 포유류의 25%가 박쥐이며, 박쥐는 전국 어디에나 산다”며 놀란 시민들을 진정시킨다. 정 소장은 “어느 동물이나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박쥐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사례가 드문데도 박쥐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주민들은 불안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 박쥐의 적응 전략을 연구 중인 김선숙 국립생태원 진화생태연구팀장은 “기후변화로 박쥐의 먹이가 되는 곤충의 성장 속도가 달라지면 박쥐도 출산이나 동면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박쥐가 새로운 바이러스를 전파할 것으로 예상할 수는 없다”며 “사실 박쥐가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의 주범은 누구일까.


“먹을 것이 다 떨어지면 평소에 먹지 않던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요?”


‘과거에도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생기후학(기상이나 계절과 관계있는 질병을 연구하는 학문)을 전공한 이준호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는 이렇게 반문했다. 만약 코로나19가 박쥐·천산갑 등 야생동물 식용 산업을 방치한 인간에게 찾아온 징벌이라면, 생존이 위협받는 극한 상황에 닥쳤을 때 야생동물을 잡아먹었을 옛날 사람들도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이다.


실제 이 교수는 역사적인 ‘특별한 사건’ 때 감염병의 잦은 창궐을 사료로 확인했다. 물론 기록으로 남은 감염병이 코로나19처럼 새로운 질병인지, 아니면 기존 질병이었지만 정도가 심해 약이 듣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콜레라나 이질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었는지,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이었는지도 사료만으로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처럼 ‘독한’ 감염병이 인간을 위협한 시간은 적지 않았다.


이 교수가 주목한 ‘특별한 사건’은 이상기후였다. 지난해 11월 한국지역지리학회지에 발표한 이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기후 변동이 전염병 발생에 미친 영향’을 보면,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1455건의 전염병은 기근·홍수·혹한 같은 이상기상 현상 677건과 관련이 있었다. 그중 1650~1700년을 주목해 보면, 1455건의 전염병 중 312건(21.4%)이 이 기간에 집중돼 있었다. 조선시대는 기후학적으로 20세기 평년보다 기온이 낮아 ‘소빙기’로 분류되는데 17세기 중반은 기온이 특히 더 한랭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 11~13년(1670~1672년)에 대기근이 발생했고, 전국적으로 전염병으로만 1만명 이상이 숨졌다. 그 시기 봄과 가을의 이상 저온 현상으로 냉해 피해가 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교수는 “당시 기록만으로 아사와 병사를 명확히 구분할 순 없지만, 이상기후로 식량난이 일어나 국가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재난이 닥치면 인간이 생태계에 개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각종 질병이 늘어날 조건도 쉽게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인과관계는 아직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진행되면 적응을 위해 인간의 행동이 달라지고, 그 결과 생태계가 파괴돼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로부터 사람에게로, 인수공통감염병이 전파될 ‘개연성’은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세계 전문가들은 사스·에볼라·코로나19 등 신종 인수공통감염병과 기후변화의 원인이 같다는 점에 주목한다.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신종 인수공통감염병과 기후변화가 모두 ‘숲의 파괴’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인간이 성장지향적인 개발과 더 많은 육식을 하기 위해 숲을 파괴하면서, 또 기후변화로 산불·가뭄·호수 등의 이상기후로 숲이 파괴되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훼손돼 이들을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아왔고, 또 숲이 줄어든 결과 숲이 저장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더 많이 배출되면서 기후위기가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재갑 한림대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에볼라도 아프리카에서 기근이 발생해 사람들이 땔감을 구하러 숲으로 들어가면서 발생했다. 과거엔 서로 만나지 않던 사람과 동물이 환경 파괴로 서로 이어지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이 늘고 있다. 넓게 보면 기후변화의 영향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기후변화를 부른 현대 문명의 폭력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자본은 더 싼 자원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 오지에 들어가 서식지를 파괴하고 오염물질을 배출해도 규제가 없는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둔다. 자본이 경제논리에 집중하고 성장이라는 가치에 매달린 결과 인류 문명은 서로 더 긴밀하게 연결됐다. 코로나19의 출현과 세계적 확산은 자본주의·산업화 일변도인 현대 문명에 대한 자연의 반격”이라고 말했다. 결국 신종 인수공통감염병과 기후변화 모두 생태계를 파괴한 ‘인류 문명의 그늘’이란 것이다.


산업화·도시화·세계화로 치달은 인류 문명을 전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9개국 48개 연구소의 바이러스 전문 학자들 모임인 세계바이러스네트워크(Global virus network)는 “기후변화와 지구화는 바이러스의 여권”이라고 명명했다. 전 세계인이 일상을 반납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게 된 배경에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지구화를 가능하게 한 인류 문명이 있었다는 의미의 은유였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쓴 미국의 과학저술가 데이비드 콰먼도 “각각의 질병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라며 코로나19를 부른 주범은 인류 문명 그 자체라고 저격했다.


자연의 경고는 이미 시작됐다. 2016년 기후변화로 시베리아의 동토가 녹아 순록 사체에 얼어붙어 있던 탄저균이 퍼져 유목민이 숨지고 순록이 떼죽음을 당했다. 미국과 중국 연구진은 올해 1월 발표한 논문을 통해 중국 티베트 지역에서 1만5천년 전 빙하가 녹자 새로운 바이러스 28개가 나타났단 사실을 알렸다.


뒤늦은 자각이 시작됐다. 기후변화 대책이 곧 감염병을 예방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단 성찰이다. 도시를 바꾸자는 제안도 그중 하나다. 홍윤철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산업혁명 이후의 생활환경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시 계획을 새로 했듯, 감염병으로부터 강한 ‘면역력 있는 도시’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홍 교수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현 구조에서 벗어나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려면 전력 공급의 분산 등 자원과 기술을 공유하는 도시적 실천이 필요하다”며 “기후 문제에 탄력성 있는 도시가 곧 감염병에 대응하는 도시”라고 설명한다.


기후변화와 감염병 대책이 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피해가 불평등하게 닥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태동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03년 유럽을 덮친 폭염 때문에 숨진 사람과 코로나19로 숨진 사람 가운데 만성질환자나 면역 기능이 저하된 노인이 많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교수는 “900개의 유럽 도시를 살펴본 결과 노인이 많은 도시일수록 기후변화 대응 정책도 많이 시행했다. 감염병과 기후변화에 더 취약한 이들이 있다면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기후변화와 감염병 양쪽 측면에서 모두 고민해볼 지점”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감염병과 기후변화에 대한 감수성은 높아졌다. 이제라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미래를 지킬 수 있다는 당부의 목소리도 있다.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환경과 인간의 건강이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인간과 미생물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바이러스 전파를 포함한 주변 환경 변화에 좀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점진적으로 친환경적 생활과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기후변화 속도도 늦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원문 :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454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