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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미래야, 어서와!] 세 번째 칼럼: 중래(重來)

작성일 : 2021-01-04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세 번째 칼럼: 중래(重來)





글.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21년 새해, 새로운 계획들 세우셨는지 궁금하다. 2020년 전례 없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20년 새해에 세웠던 계획은 어그러지고, 품었던 작은 희망도 사그라졌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 이렇게 부질없는 일임을 깨달았던 한 해도 없었던 듯하다.

청년들은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의 덧없음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삶을 희생하지 말자, 지금을 즐기자는 청년들의 욜로(YOLO, 인생은 한번뿐) 정신이 그렇다. 내게도 미래학이 준 지혜는 내일 일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장 내가 지금의 자리를 나서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내 삶은 어찌될 지 장담할 수 없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말은 1초 뒤의 미래도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전례 없는 변화가 주는 극도의 불안함, 우리는 20년 내내 이런 마음으로 조마조마하면서 살았고,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21년은 어떻게 될까.
나는 다소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전망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우리가 사는 세계는 머물러 있지 않다. 똑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듯,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는다. 코로나19는 분명 낯설고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우리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미래는 그만큼의 충격은 아닐 것이다.

놀랐던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전과는 다른 미래를 가정해보자. 이전으로 되돌아가거나, 이전보다 좀 더 나아질 수 있음을 믿기보다는, 조금은 다른 미래가 올 수 있음을 믿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이전보다 나아지기는 힘들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이나 생각의 틀에 갇혀 있으면 새로움을 보지 못한다. 더 나아지길 바라면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의 내 모습과 달라지겠다고 각오하면 문제에 다르게 접근할 수 있고, 그 덕분에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새로운 관계에서 새로운 생각이, 해법이, 전략이 생긴다.

둘째, 인간은 생각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한다. 호모 사피엔스로서 인간은 무려 20만년 동안 다양한 변화에 적응하면서 생존을 이어왔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 월등한 인간의 지능 덕분이다. 사실, 인간의 지능을 가장 앞장서서 연구하는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 난제는 인간의 지능을 정의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능이 정의되어야 그걸 기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지만 마땅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능의 사전적 의미는 배우거나 이해하는 능력, 새로운 것이나 어려움을 다루는 능력, 자신의 환경을 바꾸기 위해 지식을 적용하는 능력,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지능만으로 인간을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간의 지능은 복잡하고 예측이 안 되는 환경에서도 목적한 바를 이루는 능력 또는, 때에 따라 절박한 변화를 예측하고 통찰하는 집단적, 통합적 능력으로 정의한다.

아직도 지능에 대한 정의는 진화중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정의에서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예측이 안 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능력, 현재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파악하는 능력, 혼자의 힘으로 목적을 이루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려는 능력, 이것이 인간만의 독특한 지능이다.

모든 사람은 이런 지능을 갖고 있음에도 이 지능이 발휘되는 환경에 놓여 있지 않을 경우, 생존과 번영의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정부는 시민 각자가 스스로 미래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셋째,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경험의 데이터가 많이 쌓였다는 점에서도 나는 긍정적인 전망을 하고 싶다. 정부가 방역에 여념이 없는 사이, 지역사회 시민단체, 마을활동가들, 일반 시민들의 활약은 빛이 났다. 모 교회 목사는 집회를 열 수 없자 동네를 돌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방문하고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뛰어다녔다. 코로나19 초창기 어려움을 겪었던 대구에서는 장애인들이 나서서 또 다른 장애인들에게 생활필수품을 전달하기도 했고, 한 시민단체는 온라인 학습에 따라가지 못하는 경계선지능(느린 학습자) 학생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하기도 했다. 한 연구자는 코로나19 직후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위급한 신호를 발신해 정부가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를 환기하기도 했다. 지혜로운 시민들 덕분에 우리는 그래도 이만큼 위기를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미래(未來)라는 말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과 공간으로 정의한다. 불확실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 불확실성 덕분에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으니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겪은 올해의 불확실성, 불안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이 때문에 새해 벽두에 미래를 전망하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더 큰 불안으로 다가올 것이 틀림없다.

미래라는 말이 피곤하고 불안해서 싫다면 중래(重來)라는 단어를 써보자. 무거울 중자에 올래가 결합된 단어인데, 권토중래(捲土重來, 싸움에 패했지만 재기하는 상황)나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젊은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에 자주 쓰인다. 다시 일어나려는 노력, 다른 시절을 전망하는 노력을 담아, 새로운 마음과 전략으로 내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다짐으로 중래의 21년을 맞이하면 어떨까.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로 재직 중 미래에 꽂혀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과로 유학, 2012년 미래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연구위원과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겸직 교수를 지내다 2018년부터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중장기 미래예측 및 전략개발 임무를 맡았다. 2019년 ‘미래공부’라는 책을 내고 시민들과 다양한 미래얘기를 나누는 즐거움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원문 : http://www.womaneconomy.kr/news/articleView.html?idxno=97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