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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미래야, 어서와!] 네 번째 칼럼: 미래의 가족과 학벌사회

작성일 : 2021-02-22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네 번째 칼럼: 미래의 가족과 학벌사회



글.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몇 년 전 30대 싱글들을 인터뷰하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들의 가족에 대한 이미지가 생각보다 부정적이서 그랬다.

예를 들어, 지방 대도시에 거주하는 한 30대 여성은 “가족은 가족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사랑하지 않았을 관계”라고 말해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 때는 이 여성에게 무슨 사연이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이 여성에게 들은 얘기를 다수의 20~30대에게 들려주면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한다고 말한다. 청년세대에게 가족은 혈연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일까.

2019년 전국에 거주하는 502명의 시민들을 몇 차례 나눠 2050년의 미래를 숙의토론했을 때, 시민들은 선호하는 가족의 미래 모습으로 “친밀하지만 느슨한, 그리고 부담이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가족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미래를 전망하면서 언제든 끊을 수 있고, 서로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정서적으로 친밀한 정도의 가족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2050년 숙의토론에 참여한 시민들은 20대에서 60대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 꼭 청년세대만이 이런 가족의 미래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가족의 미래를 실현하자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전문가들을 초청해 논의해보았다. 몇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왔는데 가족을 구성하는 파트너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가족을 혈연과 입양 외에도 신고만으로 가족을 인정하는 ‘가족신고제’를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예를 들면, 한 집에 5명이 모여사는데, 이들은 혈연관계도 아니고 결혼이나 약혼한 사이도 아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것 뿐이다. 이들이 만약, 5명 모두 가족이라고 관할구청에 신고하면 그때부터 가족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세금이나 상속, 사회보장제도 측면에서 가족으로서 누리는 혜택이 주어진다.

이들은 가족이지만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 부부가 마음이 맞지 않아 이혼하듯 이들에게도 동일한 자유가 주어진다. 서로 부담이 된다고 느끼거나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면 가족관계를 탈퇴하면 된다. 친밀하지만 느슨한, 그리고 부담이 없는 관계인 셈이다.

가족신고제는 현재 한국사회의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가족의 형태가 변할 것으로 전망한다. 여러 가지 동인이 있을 것이다. 1인가족과 독거 노인의 증가, 국외 동성 결혼의 추세, 심지어 로봇이나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술, 문화, 인구적 변화 등이 가족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엉뚱한 실험을 하나 해봤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대학의 미래를 여러 시민들과 논의하면서 가족신고제가 도입된다면 대학에 장차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물어보았다. 가족신고제와 대학의 미래는 연결짓기 어려운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이 상상 실험을 두 군데의 온라인 세미나에서 해보았는데, 흥미롭게도 같은 의견이 나왔다.

시민들은 가족신고제가 시행된다면 대학 학벌을 따지는 문화에 균열이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혈연으로 이뤄지지 않은 가족이라면 청소년에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였다. 참고로 이 논의에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교육분야와 관련이 있다.

가족신고제와 학벌사회의 쇠퇴를 연결짓자면 여러 가정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미성년자도 원한다면 가족을 구성하거나 탈퇴할 수 있어야 한다. 세대는 다르지만 서로 모여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도 해야 하고, 미성년자를 가족으로 신고한 경우에는 성년이 될 때까지 잘 돌보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관할 부처에 확인도 받아야 한다. 이런 여러 전제들이 조건으로 붙어야 생각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지만, 왜 혈연중심의 가족이 학벌사회를 지지하는 동인이라고 본 것인지 궁금했다.

가상의 예를 하나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이를 하나씩 키우는 싱글맘 두쌍이 있다고 치자. 이들은 대학 친구사이다. 어느날 공동육아를 위해 가족이 되기로 결심한다. 아이 둘과 싱글맘 둘은 가족을 이뤄 각자의 자식을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돌본다. 자, 이들은 자식들에게 명문 대학에 들어갈 것을 강요하지 않을까.

학벌사회는 사회적 산물이다. 명문 대학 졸업생은 연봉이 높은 회사에 들어갈 기회가 많고, 취직해서도 승진의 기회가 더 많다고 믿는 사회에서 학벌주의가 공고해진다. 학벌주의를 따르는 삶은 우리사회에서 표준화된 삶이다. 표준화된 삶을 원하는 부모라면, 자식들이 이 경로를 따라 사회에 진출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예로 든 싱글맘 가족은 가족의 구성부터 표준화된 삶을 따르고 있지 않다. 자신들은 자발적으로 사회적 표준에서 벗어났는데, 자식들을 표준화된 삶의 틀에 가두고 싶을까. 나는 이들이 자식들은 대안적 삶을 개척하도록 응원할 것 같다. 남들처럼 사는 삶 말고, 나를 위한 삶, 그게 무엇이든 자식이 행복하다고 믿으면 부모로서 자식의 미래를 지지해주는 삶을 살지 않을까.

미래야! 다양한 대안을 허용하는 사회라면 거대한 성처럼 공고해보이는 지배적인 질서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겠니. 나는 성년이 되기 직전 치르는 시험 한 번으로 나머지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는 사회에 균열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로 재직 중 미래에 꽂혀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과로 유학, 2012년 미래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연구위원과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겸직 교수를 지내다 2018년부터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중장기 미래예측 및 전략개발 임무를 맡았다. 2019년 ‘미래공부’라는 책을 내고 시민들과 다양한 미래얘기를 나누는 즐거움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원문 : http://www.womaneconomy.kr/news/articleView.html?idxno=99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