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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정년 제도, 답보다 고민을 담으며

작성일 : 2023-01-10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정년 제도, 답보다 고민을 담으며


글.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이 글은 주장보다 고민을 담는다. 새해부터 정년제 이야기를 지면으로 나누는 이유는 급속한 고령화시대에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의제이기 때문이고, 특정 제도를 사례로 정책을 생각하는 방식을 재고했으면 싶어서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5월2일부터 15회 연재된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란 기고글에 빚지고 있다.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 제도(60세 정년제)’는 2013년 국회를 통과해 2016년부터 실시됐다. 지난 십 년간 정년제를 둘러싼 쟁점이나 논쟁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60세 정년제’ 통과에 힘을 실었거나 ‘65세로의 정년연장’의 필요성을 피력하는 이들은 한국의 가파른 고령화 속도, 고령빈곤, 연금수급 연령의 상승(2033년이 되면 전 국민 수급연령이 65세)으로 인한 최소 5년 이상 소득 공백을 근거로 삼는다. 반면 ‘60세 정년제’의 혜택이 일부(대기업-정규직-유노조-남성 고령자)에만 주어지는 ‘불공정 정책’에 가깝다 비판하는 이들은 이 이상 고용연장 정책에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이다. 사실 인간의 체제에서 완전한 법제도란 없다. 어떤 정책이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정책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다루지 않아야 합리적 토론도 시작할 수 있다. ‘60세 정년제’는 이제 시행 7년차에 들어선다. ‘최고’의 ‘정의로운’ 선택지나 ‘좋은 취지’만 따지기보다 제도 ‘효과’를 꼼꼼히 점검하고 보완책을 생각할 시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효과와 부작용을 고려해 여러 딜레마 속 ‘최선’의 ‘개선방안’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첫째, ‘60세 정년제’ 효과의 이모저모를 검토할 수 있는 복수의 질문이 필요하다. 가령 효과 유무 여부만 따지는 질문은 자기 입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그렇다’ ‘아니다’ 같이 정답을 미리 정해 놓고 유리한 근거만 조합하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그간 ‘60세 정년제’의 효과를 검토한 조사 및 연구 결과를 종합해 봐도 흑백의 세계는 아니다. 노동자의 실질 퇴직연령이 평균 2~3년 높아진 경우도 있으나, 노동시장 전반에 변화를 가져왔다 보기 어렵다. 2022년 ‘주된 일자리’의 평균 퇴직 연령은 49.3세로 10년 전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세간의 상식과 달리 일부 중소기업에서 고령층의 고용확대가 이뤄졌으나, 인건비 부담이 높은 대기업에서 법시행 전 권고사직이나 조기퇴직 등 사전 고용조정을 실시해 전반적 고용통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못줬다는 분석도 있다. 고령자의 고용 증가가 청년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도 있으나, 총론보다 산업별·업종별 차이를 고려해야 실체도 잡힐 수 있다. 대기업인데도 50대까지 신규채용을 해야 할 정도로 만성적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청년 일자리와 충돌 가능성은 아예 성립되지 않는 이야기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여러 의문과 모순된 사실에 충분히 답할 만큼 논의를 축적하지 못했다. 국책기관을 비롯해 노사단체, 개인 연구자까지 적지 않은 조사나 연구가 있지만 노사는 물론 사회 전반의 인식차를 좁히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둘째, 결국 포괄적이고 연속성 있는 조사가 필요하고 이를 책임질 주체와 공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는 개인이나 특정 기관보다 이해관계가 다른 대표가 상황을 공유해 책임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공동 주체가 포괄적인 조사를 해야 실효성 있는 대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국회에는 정년제 효과나 후속대책에 관한 어떤 논의도 없었다. 2013년 국회 통과 직전까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세대간상생위원회’라는 회의체가 18차까지 열렸지만 정작 입법 후에는 없었다. 관련 노사정 포럼이나 연구회도 가끔 있었지만 명칭부터 위원의 구성, 의제 내용까지 매번 다시 시작됐다. 연속성이 없으니 내용은 축적되지 않는다. 목표도 뚜렷하지 않으니 제도를 점검하고 후속대책을 논하는 장이 되지 못했다.


법을 만든 이부터 정책의 이해당사자까지 논의를 지속하지 않으니 정부정책에 대한 점검과 평가도 부족하다. 가령 2020년 국정감사에 따르면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은 사업 집행률이 60%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듬해 예산도 일괄 10% 삭감됐다. 비단 이 정책만 아니라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제도가 또 있겠지만 제대로 검토한 경우는 많지 않다. 사실 해당 정책을 비롯해 상당수 정년제 지원정책은 그 대상이 중소기업이다. 실제 얼마나 많은 숫자의 중소기업이 혜택을 누리며 고령자 고용개선에 효과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각종 지원책에도 중소기업 사업장의 80%는 여전히 정년제 자체가 없는지도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


논의가 쌓이지 않으니 논쟁은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이해관계자는 정책의 ‘정당성’이나 ‘부조리함’을 논하기 위해 각자 유리한 근거만 언급한다. 지속성이 없으니 공유를 통한 합의점이 생길 리 없고 다소 피상적 주장 대 주장만 부딪히다 끝나 버린다. 합리적 개선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특정한 해법이나 제도 대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해가 첨예한 노사가 꾸준히 논의할 공간이 필요하고, 이를 토대로 정당과 국회가 정책을 지속해 다뤄야 변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셋째, 나는 솔직히 ‘65세 정년제’가 대안인지 ‘계속고용제’가 필요한지 등등 각종 입법 대안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겠다. 나아가 몇 가지 입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노동시장 법제도는 변화를 만드는 요술방망이보다 구성원을 규율하는 가이드라인쯤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2012~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회의 기록을 검토하면 여야는 우리 사회의 조기퇴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에 공감대가 있었다. ‘60세 정년제’가 ‘권고’ 조항에서 법적 ‘의무’ 조항이 되면 조기퇴직을 방지하는 최소 수단이자 노동자의 실질 퇴직연령을 높일 것이라는 공통된 기대가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기업부담을 고려해 이른바 ‘임금피크제’와 같이 임금체계개편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그런데 당시 환노위원 중 일부의 지적이 있었듯 한국의 장기근속자 비율이 낮고 조기퇴직이 횡행하는 이유에는 사내하청 같은 간접고용을 사용하는 등 기업의 인력시스템을 비롯해 우리 일자리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다. 더욱이 우리 노동법은 강제조항이나 처벌규정이 있어도 사용자가 법을 무시하거나 우회해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 정년을 의무화’한다고 기업의 인력운영 방식이 바뀌거나 노동자 고용기간이 늘어나기란 어쩌면 쉽지 않은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노동시장 구조부터 해결해야 정년 문제도 해결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상당수 입법 제언이 그 효과를 면밀히 따져 유기적 정책조합으로 이뤄지기보다, 단건의 특정 제도에 기대나 소망을 담아 주장하는 데 그치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많은 법률이 발의되고 때로 제정되지만 효과는 생각같지 않은 게 아닐까.


더욱이 그럴듯한 법조문을 만든다 해도 제도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가 수용하지 않으면 기대했던 효과는 발휘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특정 ‘제도’에 대한 확신으로 구성원에게 형식만 강요하면 분쟁은 격해지고 변화를 위한 길목에 적대만 쌓여, 나중엔 보완책을 추진할 동력조차 남지 않을 수 있다. 가령 임금피크제가 분쟁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말이다.


사실 노동자가 고용연장 기회를 얻는 대신 사용자는 지불능력의 한계를 배려해 임금조정을 실시하는 노사 간 ‘정치적 교환’,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제도 정신을 잘 살리면 노동자는 좀 더 일할 수 있고, 기업은 부담을 다소 줄이면서도 숙련인력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임금피크제는 노사 간 ‘교환’의 의미는 없어졌고 앙상한 형식만 남았다.


특히 공공기관은 ‘60세 정년’과 ‘임금피크제’를 정부지침으로 모든 사업장에서 강제했다. 사실 정년연장 혜택이 가장 확실한 곳이 바로 공공기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공공부문 노동자는 오히려 ‘60세 정년제’에 대한 평가도 나쁘고 이후 정년제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낮다는 조사도 있다. 이유는 기관 자율성 없이 일괄 지침을 사측 정부가 강요해 여러 사업장이 다양한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어서다. 특히 정부가 지침으로 조직에 일괄 하달한 임금피크제 노동자의 ‘적합업무’는 주변화된 직무수행에 따른 노동자의 자존감 하락과 2등 시민화, 조직의 불필요한 업무수행으로 나타난 현장인력 부족, 기획개정부 총액인건비 예산으로 묶여 오히려 실무 인력의 수당 삭감과 그로 인한 세대 갈등 등 크고 작은 문제의 원흉으로 지적됐다.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취지였던 청년채용의 효과도 한정적이다.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이 있었다. 추가 소송이 이어지고 있으며 노사는 물론 노노 간 지속적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법과 제도는 실제로 기업을 운영하는 사용자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상호 조율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외재적이고 구속적으로 ‘조문’ 자체를 강제해 봐야 제도는 갈등 조정이나 해결보다 분쟁을 부추기는 근거가 되기 쉽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같은 정책실패 사례를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는데, 오히려 ‘광풍’을 더 크게 연출하지 않을지 염려스러운 요즘이다. 개혁의 ‘정당성’과 좋은 ‘취지’만 설파한다고 나은 변화로 이어질 리 없다. 정작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를 막거나 부작용을 면밀히 따지지 않으면 갈등만 증폭하고 공동체를 더 황폐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한국 고령자가 실제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연령은 72.3세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국가(OECD) 중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나라다. 단기간에 사회안전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대다수 일하는 시민은 자신의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해 10~20년 이상 ‘고령 노동시장’에서 일해야 한다. 나는 아직 무엇이 정년제의 개선책인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다만 정책을 생각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하고 그것이 변화의 시작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 출처 :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