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광장   >   홍보관   >   언론보도

언론보도

[매일노동뉴스] 일본의 정치개혁은 정치사회를 어떻게 바꿨을까

작성일 : 2023-03-07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일본의 정치개혁은 정치사회를 어떻게 바꿨을까


글.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제도개혁’이 지난한 정치현실을 바꾸리란 기대가 적지 않다. 이제 외국 선진제도 도입과 청사진만 논하기보다 개혁 이후 ‘신화’와 ‘현실’의 간극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지난 30년간 일본정치를 지배한 용어도 ‘정치개혁’이었다. 1980년대 대형 정·재계 부패스캔들이 거듭되고 1993년 38년 만에 자민당 장기집권이 종료되며 제도개혁은 급물살을 탔다. 당시 정치부패와 자민당 일당 우위체제의 핵심 고리로 지목된 것은 미국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의 중선거구 시스템이다.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 당선이 가능하니 개인 중심 선거운동을 부추겨 정당 간 정책경쟁보다 선거자금과 후원조직을 제공하는 파벌 간 이익배분을 두고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정치부패, 나아가 불필요한 공공사업 유치와 지자체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수상도 파벌 영수 간 조정자에 가까우니 과감한 개혁정책 결정이 어렵다는 비판도 존재했다. 더욱이 15%만 얻으면 2~3위라도 당선이 가능하니 일본 사회당은 이데올로기 순수성을 유지하는 만년야당에 만족해 자민당의 독주를 부추긴다는 진단도 일면 사실에 가까웠다. 개혁론자들은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면 파벌 간 이권경쟁보다 정책중심 정당 간 경쟁이 유도되고 ‘고비용 정치구조’를 개선해 부패도 차단할 수 있을뿐 아니라, 수상의 강한 리더십으로 개혁정책을 실현해 변화도 가능하다고 피력했다. 정계개편을 통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을 유도하면 ‘정권교체 있는 양당제 민주주의’가 열린다는 ‘개혁시나리오’는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 전반을 압도했다. 결국 1994년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로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는 수상·내각 권한 강화를 위한 행정개혁, 지방분권 개혁 등 정치개혁 시리즈의 출발이기도 했다. 일련의 제도변화는 일본 정치사회를 어떻게 바꿨을까.


선거제도가 바뀌고 국가의 정당보조금도 생겨나며 파벌은 약화됐다. 그런데 정치개혁이 가장 큰 목표로 했던 ‘부패차단’ 효과는 지난 30년간 분명하지 않았다. 대신 선거법 개정은 전후 일본이 유럽식 복지국가와 다른 형태로 사회를 통합했던 ‘일본적 평등체제’를 무너뜨리는 시작점이 됐다. 소선거구제가 도입되며 자민당도 다수파를 유지하려면 농촌의 고정된 지지기반을 다지기보다 도시 무당층의 지지가 중요해졌다. 농촌 표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당 지도부의 공천권이 커지고 제도적으로도 내각의 권한이 강화되며 수상은 더 과감하게 지역 기반 의원의 저항을 억누르고 지방교부금과 보조금을 삭감해 자립도를 높이는 ‘지방분권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기존 노사정 삼자합의체에서 만장일치로 노동정책을 결정하던 지난 수십년의 관행도 무너졌고, 대신 규제완화위원회 같은 수상직속위원회가 나서서 파견법과 노동기준법 개정 등 노동시장 규제완화 조치를 압박해 국회에서 입법까지 이어졌다. 수상 권한이 강화되며 추진된 과감한 ‘개혁정책’의 주요 내용은 실상 과거 약자를 좀 더 보호했던 비시장적 제도와 규범을 바꾸는 것이었다. 전후 일본은 두 축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꾀했다. 노동자에게는 연공임금·고용보장·기업복지를 통해 이윤을 나누고, 지방에는 보조금과 공공사업을 통해 중소·영세 기업과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보조금이 삭감되고 공공사업 유치가 어려워지며 지방 중소·영세 기업은 줄도산했고 농촌엔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로 빈곤 문제가 심각해졌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가 급증하며 2000년대 일본 사회 화두는 ‘격차사회’ ‘지방소멸’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네 번째로 평등한 국가, 백만 중산층 사회는 옛이야기가 돼 버렸다.


그렇다면 정치개혁의 또 하나 중요 목표였던 정권교체 가능한 양당제는 이뤄졌을까. 1996년 바뀐 제도로 선거가 실시되며 정계개편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전후 혁신의 한 축이자 제1야당이던 일본 사회당은 몰락했고 1998년 일본 민주당이 창당해 제2정당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2009년 마침내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민주당 정부가 탄생한다. 그런데 3년3개월에 불과한 집권기간 동안 수상만 세 번 교체되는 등 정권운영은 실패로 끝났다. 민주당은 격차해소, 아동수당 등 좋은 매니페스토를 내세우며 일시적 바람을 타고 집권까지 했지만 이질적 비(非)자민세력인 ‘선거용 정당’으로는 정책을 실현하고 통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2012년 12월 자민당은 집권당으로 복귀했고 아베라는 역대 최장수 총리가 등장할 정도로 자민당 우위 현상은 더 심화됐다. 반면 민주당은 당세가 급격히 위축되고 이합집산과 정체를 거듭해 양당제는 요원한 이야기가 됐다. 혹자는 ‘정치개혁’이라는 상징조작을 통해 사회영역에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부과하고 정치영역에는 전후 혁신의 핵심이었던 사회당 파괴와 위기에 처했던 자민당 정치복권 기회가 됐다고 평가한다.


선거제가 규정하는 효과는 한정적이고 제도 변화는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지난 일본정치의 교훈이다. 더욱이 ‘정치개혁’같이 모호한 언어에는 다양한 행위자의 이해관계와 욕망이 뒤섞이기 마련이고 종국에는 힘 관계에 의해 ‘강자를 위한 룰’이 결정·집행되기 쉽다. 어쩐지 ‘바람직한 제도’ 논의에 각자의 이질적 소망을 투영하는 듯하다. 지나친 제도주의가 우리의 정치적 자율성과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을지 걱정스러운 요즘이다.


-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