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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매일노동뉴스] 우리는 왜 여가활용도 과업처럼 해야 할까

작성일 : 2023-04-04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아이와 직업체험 테마파크에 다녀오며 ⓛ] 우리는 왜 여가활용도 과업처럼 해야 할까


글.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직업체험 테마파크에 다녀오며 노동과 여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이야기다.


우리는 여가도 일처럼 한다. 장시간 근로가 만연하고 법적으로 정해진 연차휴가조차 소진하지 못하는 노동환경에서, 일터에서 지친 몸을 달래기도 벅차다 보니 여행이나 나들이는 그야말로 특별한 시간이다. 모처럼 낸 시간이니 기회비용을 생각해 최대 효율을 내야 하는 또 하나의 과업같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사전에 파악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시간·비용 대비 최대 효율을 얻을 수 있도록 계획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


많은 부모들이 주말에 테마파크 방문 같은 일정을 잡는 이유는 아이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티켓을 구매하려 정보를 검색하는 순간부터 아이와 시간을 즐긴다는 본래 취지는 희미해진다. 티켓을 예약하려 유튜브나 블로그의 부모 후기를 읽다 보면 이왕 비싼 입장권을 산 이상 정해진 시간 내 아이에게 최대한 많은 체험을 시켜 주는 게 미덕같이 여겨진다. 기다리지 않고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짜라는 조언에 길을 외우고, 관련 앱을 깐다. 안에 식당이 있지만 한정된 시간 내 많은 체험을 하려면 점심 대체 간식이 낫고, 대기시간 동안 아이를 달랠 수 있는 태블릿이나 장난감도 준비하라는 이야기에 주섬주섬 준비물을 챙긴다.


테마파크가 개장하면 많은 부모들이 체험 장소를 향해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가장 인기 있는 체험시설을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기 위해서다. 아이가 체험하는 10~20분 동안 부모들은 다음 체험장소 동선을 재차 확인하거나 대기 현황을 확인해 둔다. 물론 중간중간 부모들은 밖에서 체험하는 아이 모습을 사진을 남기지만, 정작 아이가 마치고 나오면 경험이 어땠는지 대화할 시간조차 없다. 다시 빠르게 다음 장소로 이동하지 않으면 비싼 입장권으로 시간 내 체험을 몇 개 할 수 없어서다. 아이가 칭얼거려도 서둘러야 한다며 작은 손을 이끈다. 그렇게 바쁘게 몇 군데를 오가니 우리 아이도 햄버거를 먹으며 쉬고 싶다고 미적거려 다음 일정을 놓쳐 버렸다. 나도 모르게 왜 이렇게 꼼지락거리냐며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다 아차 싶었다. 색다른 공간에서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자체가 중요하지 ‘미션 클리어’하는 게 우선이 아닌데 말이다.


한국의 상당수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조차 바쁘게 과업하듯 보내는 이유는 장시간 노동 문화, 저녁이 없는 삶과 관계가 있다. 일하는 부모들은 평일에 아이와 놀아 주거나 함께 휴식할 시간이 많지 않다. 주말이 돼야 깨어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본다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쉬는 날에 굳이 아이와 비싼 테마파크나 체험놀이시설 같은 곳을 찾는 이유는, 더 그럴듯한 곳을 찾아 부담스러운 지출을 할수록 평소 아이와 놀아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만회할 방법같이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만약 노동시간이 길지 않고,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하는 게 일하는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라면 아이와 놀이시간도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듯 잡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부모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주어진다면 우리 사회가 대형 테마파크나 키즈카페 같은 레저산업이 지금보다 덜 번창하고, 소박한 동네놀이터나 지역 문화공간이 활성화됐을지도 모르겠다.


비단 아이들 놀이문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외국에선 ‘유럽 3개국 일주일 돌파’ 같은 한국의 여행문화가 낯설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고강도(?) 여행상품이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노동시간이 길고 휴가를 얻기 어려운 노동환경과 관계가 깊다. 몇 년 만에 어렵게 휴가를 써서 떠나는 해외니 이 역시 업무를 하듯 ‘잘’해 내려 노력한다. 테마파크가 개장하면 뜀박질하는 부모처럼 해외를 떠난 관광객도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관광지와 맛집을 다니겠다는 묘한 경쟁심과 성과압박에 휩싸인다. 정작 휴식이나 여가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낯선 장소나 휴식이 주는 여유와 설레임보다 피로가 쌓이기도 한다.


노동시간은 단순히 일하고 휴식하는 시간의 길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은 물론 여가를 비롯해 일상 전반, 삶의 속도, 가족 같은 대인관계 등 사회문화 전반을 규정하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의 흐름이 흔들림 없이 진전해 우리 삶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그래야 우리도 진짜 휴식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