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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한겨레] 7천년 전 한반도인의 미래세대를 위한 작업

작성일 : 2023-05-15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뉴노멀-미래] 7천년 전 한반도인의 미래세대를 위한 작업


글.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나에게 울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조선업과 자동차 그리고 태화강의 십리대숲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울산은 미래학적 시각에서 7천년을 내려온 미래세대 중심의 문화가 보존된 곳이다.


반구대는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의 기암절벽을 뜻한다.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는 높이 4m, 너비 10m의 반구대 절벽에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 육지 생물과 고래, 거북 등 바다 생물, 그리고 이들을 사냥하는 장면 등 총 200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암각화는 7천년 전부터 3500년 전(신석기 말~청동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한다. 선과 점을 이용해 다양한 동물의 묘사는 물론 작살로 잡은 고래를 배로 인양해 마을로 운반하고 이를 잘게 나누는 장면까지 세밀하게 그려냈다. 이 암각화의 발견으로 인간이 고래를 사냥한 시기를 7천년 전까지로 올렸다니 대단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오랜 빙하기가 끝나자 신석기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정주하기 시작했다. 토기와 간석기(마제석기)를 만들었고, 협업으로 만든 물건을 멀리 내다 팔기도 했다. 종교 문화, 분묘와 장사(葬事)의 법도를 만들어 죽은 자와 공동체의 관계도 맺었다(하인수, <신석기시대 고고학>). 고고학자들은 신석기를 자연적 질서로부터 인간적 질서로 이행한 시기로 본다.


나는 이 암각화를 보면서 당시의 작은 공동체에서 일어난 일을 상상해보았다. 사람들 대부분은 사냥이나 농사를 짓기 위해 나가거나 거주 환경을 정비하고, 음식을 만들거나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힘을 쏟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커다란 바위 절벽에다 생존에 필수적인 활동을 기록하자는 의사결정을 한다. 높이가 4m나 되는 절벽의 한면에, 절벽 아래는 강물이 자신을 삼킬 수 있는 곳에서 사다리 같은 것을 만들어 올라가, 날카로운 돌로 쪼고 윤곽선을 만들기 위해 갈아내는 광경은 인류가 문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장면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손을 돌로 찍어 깊은 상처가 났을 것이고, 사다리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앞선 사람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수천년에 걸쳐 그리고 또 그렸다. 이들은 왜 이 작업에 매달렸을까.


여러 설명이 가능한데 나는 미래세대를 위한 작업이었다고 본다. 돌에 아로새길 정도의 정보라면 이들의 시계는 매우 장기적이었다. 자신들이 사라져도 미래세대가 이 그림을 보고 필요한 식량을 얻는 방법을 배우거나, 위험한 동물을 식별하고 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미래세대의 생명 보존과 안녕을 위한 최초의 교과서 아니었을까.


수천년을 꼼꼼히 기록한 덕분에 우리는 당시 사회적 대전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바다가 가까웠던 시절에는 고래잡이로 생계를 이었고, 바다가 멀어지고 육지가 생기면서 육고기 사냥을 그렸던 장면들이 그렇다. 시대에 따라 생존 전략을 바꿨던 지혜가 보인다.


우리도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전례 없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과도한 소비와 화석연료의 퇴장, 인공지능의 인간 일 대체, 기후위기와 난민 증가, 다시 점화된 국가 간 갈등, 우주시대 개막까지 미래세대는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만약 암각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 땅에 살게 될 후손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그림을 남긴다면 어떤 지혜와 정보를 담아야 할까.


반구대 암각화는 오는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마지막 국내 절차인 등재신청 대상 심의를 받는다. 현재의 생존만 중시했을 법한 선사시대 한반도인이 먼 미래의 생명까지 보호하려는 문화를 창조했다는 점에서도 이 암각화는 세계적 유산이 될 만하다.


- 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17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