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광장   >   홍보관   >   언론보도

언론보도

[매일경제] 미래 위한 중립적 심판이 필요하다 / 박진

작성일 : 2019-03-27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매일경제/박진] 미래 위한 중립적 심판이 필요하다


박진 객원논설위원·국회미래연구원장



국회미래연구원은 작년 5월 출범 이후 대한민국의 2050년을 13개 분야로 나누어 연구해 왔다. 최근 나오고 있는 결과는 불행히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대부분 어둡게 보고 있다. 우리 미래가 어두운 이유는 일단 기후, 환경, 에너지, 수자원 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현상이니 우리가 바꾸기도 어렵다.


과학기술이 희망이나 우리의 과학기술은 국가 간 경쟁에서 낙오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렇다고 공포 마케팅을 펼 생각은 없다. 미래 예측은 현 제도와 정책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여건 변화를 전망한다. 계절이 바뀌는데 옷은 그대로인 셈이니 미래가 암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도 이 방법론은 대한민국호가 지금 항로를 유지하면 암초에 부딪힌다는 경고를 울리는 데에 유용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도 개선을 통해 항로를 바꿀 수 있을까. 그러나 제도를 만들 정치·경제·사회의 미래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2050년의 대한민국은 저성장에 분배는 악화돼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우리의 합의 역량도 약화된다는 점이다. 암초를 피하려면 항로 변화에 합의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항로 변화 합의는 국회가 할 일이다. 그러나 국회의 합의 노력은 상당수 실패로 끝난다. 예컨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2012년 발의된 이후 7년 가까이 잠들어 있다. 정당이 합의를 안 하는 이유는 합의보다 미합의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합의는 일부를 얻기 위해 일부를 포기하는 결정이다. 정당 입장에선 일부 얻어 생기는 편익은 불확실하거나 수혜계층이 분산된 반면, 일부 포기로 생기는 비용은 확실하고 피해 계층이 결집된 경우가 많다. 그러면 각 정당은 일부를 포기하는 양보안에 합의하느니 차라리 최선을 다해 원안을 고수하다가 합의가 불발되는 쪽을 택하게 된다. 변화에 합의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암초에 다가가는 문제가 발생하지만 미(未)합의 책임은 여야가 공유한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므로 각 정당은 미합의에 따른 부담을 별로 느끼지는 않는다.  


합의를 촉진하려면 우리 사회가 미합의 책임을 정당 간 양비론(兩非論)으로 덮을 것이 아니라 책임이 큰 쪽을 가려내야 한다. 소수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다수당의 횡포인지, 다수결을 무시하는 소수당의 억지인지를 판정해야 한다. 그 역할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그리고 국민의 판단을 학자, 언론, 시민사회 등 전문가 그룹이 도와야 한다. 그러나 국민은 혼란스럽다. 전문가 그룹이 중립적 심판을 하지 않고 정파 논리에 사로잡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국민이 사안별로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은 옳고, 상대 정당은 틀리다고 하면 각 정당은 지지 세력을 기쁘게 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합의가 안 되면 어차피 상대편 책임이니 끝까지 양보 없이 달리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된다.  


우리 사회의 낮은 합의 역량은 중립적 심판이 없는 탓이 크다. 우리 사회에 신뢰 받는 전문가나 기관이 얼마나 있던가. 수년 전 동남권신공항 입지 결정은 아예 외국 컨설팅 업체에 의뢰하지 않았던가.  


중립적 심판이 자라기에 우리의 정치 풍토가 척박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 심판은 불편한 존재이다. 심판 판정이 유리한 쪽은 침묵하나 불리한 쪽은 심판이 불공정하다고 항의한다. 중립적 심판은 사안에 따라 여야를 막론하고 불리한 판정을 하게 되므로 결국 여야 모두의 적이 된다. 자신에게 불리한 판정을 한다고 무조건 심판에 항의하는 문화에서는 중립적 심판이 키워지지 않는다.  


결국 심판에 대한 항의가 정당한지를 판정하는 것도 전문가 집단의 역할이니 문제 해결은 전문가 집단에서 시작돼야 한다.


 누구의 편도 아닌 중립적인 학자, 언론, 시민단체가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판정이 존중돼야 한다. 그래야 국회가 미합의에 대한 부담을 느껴 변화에 대한 합의가 더 쉬워진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도 밝아질 수 있다.


원문: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9&no=183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