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5년 국민연금 고갈…미래세대 짐 나눠야 할 때
“90년생부턴 국민연금 한 푼도 못 받아.”
올해 1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발표하였고, 이를 많은 언론이 인용하면서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불평등 이슈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팩트만 놓고 보면 1990년생 국민연금 0원이라는 뉴스가 필자에게 전혀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내용은 2년 전 국회예산정책처가 전망한 결과를 연금수급자 관점에서 1990년생으로 표현했을 뿐이고, 그 2년 전 재정전망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필자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국민연금의 적립금 전망 결과는 정부와 국회가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전망한 적립금 소진 시기가 2055년인데, 2018년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재정계산에서는 2057년으로 전망되어 2년의 차이를 보였을 뿐이다. 국민연금 적립금 전망은 인구, 거시경제, 그리고 기금운용수익 등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소진 시기가 전망 시점에 따라 가변적이나, 우리가 전망하는 미래 중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 적립금 소진이라는 미래 모습은 산술적으로 나름 현실적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경고는 오랜 기간 설득력 있게 지속되어 왔다.
올해 대선에서는 크고 작은 사회 이슈들을 뒤로 업고 다양한 공약들이 쏟아졌는데,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공약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더욱이 여론조사 1, 2위를 다투던 대선 주자들에게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고, TV 토론회를 통해 국민연금 개혁에 찬성하는 정도의 원론적인 입장들이 확인되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새 정부에서 연금개혁이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불붙는 모양새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역대 정부에서 두 번에 걸쳐 단행되었다. 1998년과 2007년, 각각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실시되었다. 연금개혁은 국민 대다수의 이해가 엮여 있어,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대체로 미래 세대의 부담을 현세대가 나누어 지는 방향으로 개혁이 추진되다 보니, 정부가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어느 정부에게도 이 일은 힘들고 고단한 숙제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 셈이다.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은 큰 틀에서 보면,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급여를 덜 받고, 더 늦게 받는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에서 이에 관한 기준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그리고 수급개시연령으로 대표된다. 첫째, 보험료율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소득 대비 보험료를 납부하는 비율로, 1998년 이후 현재까지 9%에 머물고 있다. 영국이 25.8%, 독일 18.6%, 일본 18.3%로 외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2년 전 국회예산정책처가 몇 가지 재정목표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이에 필요한 보험료율을 산출하였는데, 그 결과 18.44%에서 최대 26.58%로 나타났다. 왜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나. 사실 보험료율 인상은 과거 정부에서 몇 차례 시도되었으나, 국민적 반대 여론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었다. 일각에서는 앞선 국민연금 개혁이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보험료율을 높이는 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비율로, 2022년 기준 43%이고, 매년 0.5%P씩 낮아져 2028년 이후 40%를 유지하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40년간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으로 가정하여 산출된 기준이다. 그런데 실제로 가입자의 평균 가입 기간이 40년보다 짧다 보니, 많은 가입자들이 연금수급자로 전환된 이후 소득대체율 40%에 해당하는 연금급여를 온전히 수급하지는 못하게 된다. 따라서 소득대체율을 40% 이하로 낮추는 것이 국민연금 개혁의 한 방안이 될 수는 있으나, 노후 소득보장이라는 국민연금 제도의 본래 취지와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이 40%가 되지 않는 현재 상황 등을 고려하면 그리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 더욱이 앞선 두 번의 국민연금 개혁에서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다시 60%에서 40%로 조정하였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소득대체율을 더 낮추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셋째, 수급개시연령은 국민연금을 수급하기 시작하는 연령으로, 1998년 개혁을 통하여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되었다. 이는 2013년부터 5년에 1세씩 점진적으로 조정되며, 2033년 이후 65세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연금 수급개시연령을 살펴보면, 36개국 중 10개국이 65세보다 높은 연령에 연금을 수급할 수 있도록 설정하고 있다. 수급개시연령은 인구 고령화와 기대수명의 증가가 지속됨에 따라 향후 노동 연한이 길어질 수 있으므로 합리적인 연금개혁 방안이 될 수 있다.
다시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90년생부턴 국민연금 한 푼도 못 받아”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그 암울한 미래에는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다시 말해 현행 제도를 바꾸면 90년생도 미래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라는 제도는 태풍,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도,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팬데믹도 아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이고,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불확실성이라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예측 결과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현재의 판단과 결정에 있어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022년 대한민국에 꽤 선명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예측되는 미래가 있다. 바로 2055년 국민연금 적립금 소진이라는 미래이다. 미래 세대가 짊어질 그 무거운 짐을 현 세대가 좀 나누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