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생각] 2050년, 도시의 사유(思惟)
(NEWSIS, 2018. 10. 18.)
민보경 국회 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사진제공=국회 미래연구원)
2054년을 배경으로 범죄를 예측해 살인사건을 예방한다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운명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립, 시스템의 통제와 억압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지만, 더불어 미래 도시의 근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부상 장치가 있는 아파트, 자석식 네트워크로 짜여 있는 도로와 수직으로 질주하는 자율주행 자동차….
미래 우리들은 어떤 곳에서 살게 될까? 문명의 시작과 더불어 탄생한 인간의 모듬살이 공간인 도시는 어느 시대에서든 인류의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이끄는 변화의 중심지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도시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등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큰 변화를 거듭해 왔다.
도보로 이동하고, 우마차를 통해 짐을 나르던 시절, 도시는 사람이 걷거나 마차로 이동할 수 있는 범위까지 도시윤곽이 형성되고 시가지(市街地)가 조성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전차와 철도의 발달로 도시는 선(線)을 따라 확장되어, 그 선의 종점에 주거지역이 개발되고 도시와 주변부 사이에 기능분화가 나타났다. 자동차의 발달은 철도노선 이외 지역에서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도시간 연결을 향상시켜 중심 도시와 교외 지역을 연결하는 대도시권을 형성하게 하였다.
이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클라우딩, 빅데이터, 인공지능, 물리적 공간과 가상공간을 연결하는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Physical System: CPS) 등 새로운 기술혁신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우리의 모듬살이 공간인 도시와 우리의 삶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하는 데 불과 16분 정도 소요되는 하이퍼루프 기술은 도시간 초연결성을 강화시킬 것이고, 도시공간의 입체적 압축에 따른 버티컬시티(초고층 수직도시) 등 새로운 도시 형태(urban form)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일 수도 있다. 시간과 장소, 대상의 연결성이 강화된 이른바, 스마트도시(smart city)는 교통, 환경, 안전, 방재 등 도시문제의 효율적인 해결과 새로운 도시산업을 부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미래 도시에 사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떠할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존 앤더튼(톰 크루즈 분)의 허공에 움직이는 손짓에 맞춰 가상의 정보와 이미지가 배열되는 모습이다. 미래에는 참고해야 할 데이터를 스크린이 아닌 증강현실 상에 전부 띄워 놓을 수 있으며, 생각과 행동 모든 측면에서 현실과 가상이 뒤섞이게 될 것이다.
현실에 더해진 가상, 영화 같은 일이 이미 우리의 생활에서도 시작되었다. 디지털 세상은 어느새 삶의 한 공간으로 성큼 자리 잡았으며, 우리가 앞으로 가상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지고,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팀원들이 각자 세계 도처에 있어도 가상의 사무실 공간에서 만나 같이 회의할 수 있으며, 여행지에서도 컴퓨터에 접속하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가상현실을 정부 정책에 활발하게 이용하는 대표적 사례로는 싱가포르를 들 수 있는데, ‘가상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라는 3D프로그램을 통해 싱가포르 전 국토를 가상현실로 구현하였다. 가상 싱가포르에 접속하면, 현실의 싱가포르에서의 모든 일을 예측해볼 수 있다. 2018년 4월,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현장답사 없이 가상 싱가포르 내에서 몇 주간 여러 개의 국유지를 비교한 후 주민센터 건립 부지를 선정하였다. 서로 다른 부처에 있는 공무원들이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듯 한 화면을 보며 협업할 수 있는 세상이 이미 도래한 것이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가 혼재하는 미래 도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건설되어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을 담아내고,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며 진정성을 가진 장소(place)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가상세계는 실제로 거주하는 곳이 아닌 사람들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곳이라는 측면에서 비장소(non-place)로 간주되지만, 가상공간에서도 장소감(sense of place)을 느낄 수 있다면 –가령,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추억과 향수에 빠지는 것처럼- 그 공간은 장소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미래 도시를 디지털혁신(digital transformation)으로 인한 편익을 강조하는 장밋빛 미래상으로 그리거나 인간이 기술에 오히려 속박되어 인간성을 상실하는 우울한 미래로 양분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시선을 돌려야 할 중요한 전제는 도시는 인간의 경험과 의미가 투영되지 않은 추상적 공간(space)이 아닌, 우리의 삶과 정주를 담아내는 장소(place)여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도시는 물질적이거나 객관적으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인본주의(humanism) 측면에서 해석되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한 감정이나 주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 자율주행차와 지능적 인프라가 주인이 아닌 인간활동이 중심인 도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포용적 도시, 공동체 지향의 도시 등이 우리가 지향하는 인간중심의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벽면을 타고 이동하는 자율주행 자동차, 개인맞춤형 홀로그램 광고, 최첨단 치안시스템 등 2054년 미래 도시의 물리적 외관과 기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주인공 존 앤더튼이 결국 누명을 벗게 되고, 헤어진 부인과 재회하여 가족과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휴머니즘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미래 도시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러한 해석은 디스토피아적 미래 도시에서도 현재 시제의 휴머니즘이 여전히 작동한다는 영화적 결말에 안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국회미래연구원 민보경 부연구위원(bmin@naf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