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생각]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정부 역할 재점검해야
(NEWSIS, 2018. 10. 25.)
김유빈 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정책의 결정 과정에 정부의 역할이 매우 큰 국가이다. 특히, 1967년 과학기술진흥법 제정을 통해 과학기술 관련 정책형성, 정책결정 및 정책집행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과 위상을 법적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연구 분야가 점차 다양해지고, 연구결과의 융복합을 통해 기존에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시대적 특성을 과연 정부 주도의 과학기술정책이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여 실효성이 낮은 정책을 양산해 내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정책 수립과 집행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정부가 매우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 지난 정권에서는 창조경제 활성화 정책 기조와 더불어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제조업 3.0전략(‘14.6), 미래성장동력 종합실천계획(’15.3), 신산업 육성의 투자활성화(’16.7),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16.8) 등의 정책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를 해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사회적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원 정책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하여, 정책의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활성화된 다보스포럼(’16.1)을 즈음하여 UBS(Union Bank Switzerland)를 통해 조사된 주요국의 4차 산업혁명 준비도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게는 노동시장, 교육시스템, 법률시스템 모두 뒤처지는 순위를 보였고, 중국과 비교하여서도 교육시스템을 제외하고는 큰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발표된 것은 이러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반증해주는 조사결과였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4차 산업혁명’은 중요한 정책 기조 중 하나였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의 역할을 맡았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선도 혁신 창업국가’를 지향하겠다고 밝히면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의 지원 확대와 동시에 연계된 산업 활성화 및 관련 제도 개선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그 일환으로 가장 우선 수행된 것은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신설이었다. 정부는 위원회를 통해 과학기술, 산업, 사회 등 분야를 망라하여 국민·시장과 소통하면서 4차 산업혁명 정책을 수립하고 사회공감대를 형성해 가겠다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달 11일 출범 1주년을 맞이한 위원회에 대한 지난 1년의 성과는 그 평가가 엇갈린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미래산업의 범정부적 지원을 위한 정책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더불어, 규제 개선과 관련된 실질적 개선은 미흡했다는 평가이다.
민간위원 50명과 정부위원 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지금까지 7차례의 전체회의와 4차례의 끝장토론(해커톤)을 통해 나름의 정책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위원회가 정권 5년 동안만 운영되는 임시조직이며, 결정된 결과를 정부 정책에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 실질적인 규제 개선과의 연계로는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의와 실체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서라도, 디지털 또는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파괴적(disruptive) 혁신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즉, 우리 사회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변화들이 우리의 생활, 업무환경, 교육, 고용, 산업, 시장 등에서 만들어 낼 파급효과를 예측하여, 이에 대한 대응정책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지 종합적인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 추진 중인 4차산업혁명 관련 부처의 정책을 살펴보면, 과기정통부는 I-KOREA 4.0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 초연결 지능화 인프라 구축, 국가 R&D 시스템 혁신을 통해 혁신성장을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부는 12대 신산업 분야의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원천기술 및 실증연구를 지원하겠다고 했으며, 중소기업벤처부는 15대 핵심 기술 분야의 지원을 통해 혁신 창업 촉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정부가 분야를 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관련 연구 주체들에게 따라오라는 형식의 정책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이미 우리나라의 민간 연구개발 역량이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고, 기술과 시장의 융합 양상은 정부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부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국가적 중장기 전략을 바탕으로 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 주도권이 높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 주요 의제는 장기적 관점으로 수립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권 기조에 따라 매우 가변적으로 운용되어왔다. 중이온가속기, 달탐사 프로젝트,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중장기 전략은 관련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견고한 정당성(justification)을 제공해 준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정당성의 검토 과정을 통해 국가적 차원으로 추진해야 할 명백한 이유가 검증된다면, 원칙적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각 부처 별로 추진되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의 정합성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분야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부처별 지원 정책 또는 소관 부처별로 각기 다른 규제 정책을 적용하고 있는 제도의 점검이 필요하다. 부처별 기능에 맞는 특화된 정책의 집행은 전략적으로 필요한 일이나, 분절된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으로 인해 융합적 관점보다는 분야를 기반으로 한 각 부처 사업만을 중심으로 정책들이 집행되고 있지 않은지 검토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10년 만에 다시 부활되는 과기관계부처 장관회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서도 범부처 차원의 장기적인 관점의 예측 및 파급효과의 분석을 통해 궁극적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한 단계를 설정하고, 과정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관련 연구 주체의 융합을 지원할 수 있는 범부처 차원의 종합적인 정책 및 제도 수립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흐름과 특성을 정책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실체에 대한 논쟁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제2의 ‘창조경제’와 같은 정치적 수사(rhetoric)로 남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책의 실기(失機)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인 신성장 동력의 고갈 또는 국가 경쟁력 하락과도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과학기술기본법이 지향하고 있는 국가경쟁력 향상 및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법철학을 충실하게 실현하고, 더불어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혁명’이라 규정할 수 있는 변화의 본질을 정책에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미래연구원 김유빈 연구위원 (ybkim@naf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