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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미래연구원 연구진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채정] 정해진 미래, 정해갈 미래

작성일 : 2021-06-01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정해진 미래, 정해갈 미래


『정해진 미래』는 수년 전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가 출판한 책 제목이다. 책에 대한 여러 소개를 읽다 보니,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다. “우리가 ‘정해갈 미래’의 전략을 제시하다!” 정해진 미래를 논하면서 정해갈 미래의 전략을 제시한다니, 책 제목과 소개 사이의 모순이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2020년, 우리나라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처음으로 인구가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인구 데드크로스(dead-cross)’ 현상을 보였다. 인구 데드크로스는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대비 10% 감소한 27만 2,400명을 기록했고,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3년 연속 0명대(2018년 0.98명, 2019년 0.92명)에 머물렀다. 반면, 사망자 수는 30만 5,100명을 기록하여 우리나라 인구는 33만명 감소했다.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은 십여 년 전부터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시점마다 단골 뉴스거리였다. 시점이 다소 당겨졌을 뿐, ‘정해진 미래’였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회 전반적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인구위기’라는 늘 들어오던 이야기를 권태로워하는 분위기다.


정해진 미래가 현실이 되었으니, 앞으로의 일들도 정해진대로 펼쳐지려니 하는 것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해진 미래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현실과 상호작용 하면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그러려니 하며 15년을 보낸 무책임은 질책받아 마땅하다.


최근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할 것”이라며 지역대학의 위기를 다루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교육부가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지원 전략」을 내놓는 등 대학위기와 관련하여 여러 정책행위자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대학위기보다 빠르고 강하게 우리를 덮칠 다양한 사회정책 전달체계가 맞이하게 될 위기는 공론화되지도 않은 상황이다. 인구감소가 십수 년간 ‘정해진 미래’였으니, 대학이, 학교가, 시군구 행정망이, 공공보건의료체계가, 각종 사회서비스 전달체계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래서 이것이 우리가 ‘정해갈 미래’라는 것이 십수 년 동안의 정책과제였을 텐데, 그 무엇에 대해서도 명확하고 구체적인 재편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것이다.


가장 먼저 우리를 덮칠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위기를 살펴보자. 사회보장위원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영아(0~2세)의 77.4%가 어린이집을, 유아(3~5세)의 98.7%가 어린이집 및 유치원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어린이집 및 유치원 이용률은 2010년대에 접어들어 영아 50%대, 유아 80%대를 기록하였고, 모든 영유아에 대한 보육료 및 유아학비 지원이 실시된 2013년을 기점으로 영아의 60~70%, 유아의 90% 이상이 어린이집 및 유치원을 이용하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또한, 2013년 전후로는 어린이집 및 유치원 수 증가 경향이 관찰되지만, 최근 들어 민간 시설을 중심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감소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국공립 어린이집 및 유치원 설립 확대뿐만 아니라, 급격한 출생아 수 감소에 따른 보육·유아교육 서비스 수요의 감소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국회미래연구원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수요(0~5세 인구 비율)와 공급(영유아 100명당 어린이집 및 유치원 수, 영유아 인구 대비 어린이집 및 유치원 정원 비율)을 상대화한 값으로 수요-공급 격차 분석을 실시한 결과, 2019년 기준 강원, 전북, 전남, 경북, 경남, 대전 등의 시도는 보육·유아교육 서비스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지역에 해당하였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하여 2045년을 기준으로 분석했을 때에도, 강원, 전북, 전남, 경북, 경남 등의 시도는 보육·유아교육 서비스 과다공급 지역으로 유형화되었다. 이들 지역은 영유아 인구감소에 대비하여 보육·유아교육 서비스 전달체계의 효율적인 감축이 매끄럽게 달성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재편 방안을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인구감소에 의한 사회정책 전달체계의 고사(枯死)는 대학이나 어린이집, 유치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지역경제로 불이 옮겨붙을 것이며, 젊은층이 떠난 지역에는 노인들에게 필수적인 장기요양서비스기관이나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양질에 서비스를 제공할 숙련된 인력을 배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게 소득과 자산뿐만 아니라 국가의 보호에서도 양극화(polarization)가 진행되는 것이다.



국가의 보호도 양극화가 된 사회를 ‘정해진 미래’로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 앞에는 아직 ‘정해갈 미래’가 놓여있다. 내내 인구위기라고 외치면서도 ‘정해진 미래’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놓지 않았다고 질책할 시간도,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앞에서 내 것을 좀 더 챙기겠다며 반목할 시간도 아깝다. 빠르고 유연하게,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일선 사회정책 전달체계 재편 방안에 대하여 “우리가 ‘정해갈 미래’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