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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차정미] 인공지능의 국제정치

작성일 : 2021-08-18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인공지능의 국제정치


차정미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Whoever leads in Artificial Intelligence will rule the world."


2017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이 연설은 인공지능(AI) 기술의 국제정치적 함의를 담은 상징적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AI 기술을 주도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다소 선동적인 듯한 이 담론은 오늘날 세계의 인식을 지배하면서 인공지능 기술 주도를 위한 글로벌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2017년 캐나다와 중국이 AI 국가전략을 발표한 이후 2020년 말까지 AI 국가전략을 공식 발표한 나라는 이미 30개국을 넘었다. 저마다 'AI 주도(AI Initiative)'를 구호로 내세우며 정부 차원의 인공지능 육성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왜 세계는 AI를 외치며 경쟁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가?

세계 AI 주도 경쟁의 이면에는 글로벌 권력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AI 기술이 새로운 미래 국제질서, 미래 전쟁, 미래 가치를 탄생시킬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해 이러한 새로운 질서 속에서 더 강한 힘과 더 나은 위치를 점하기 위한 주도권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국가 간 권력경쟁, 군사력 경쟁, 이념과 가치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

세계의 주요 강대국들은 인공지능이 미래 경제, 국제질서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에릭 슈미트 구글 전 회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미국 AI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2년간의 논의를 거쳐 발표한 최종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뒷받침해온 기술패권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중국의 AI 역량은 10년 안에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지능 기술을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패권적 지위가 상실될 수도, 미래 패권적 지위에 올라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헤게모니 경쟁과 연계된 인공지능 담론은 미중 양국간의 AI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2019년 AI 분야 리더십 유지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2020년 국가AI이니셔티브법(National AI Initiative Act)을 제정했다. 지난 6월에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 산하에 신설된 국가AI이니셔티브실(National AI Initiative Office)이 주도하는 'AI 연구자원TF'도 구축했고, 조만간 국가 AI자문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다.

미 의회는 지난 6월 2400페이지에 달하고, 290조원 가까운 예산이 투자되는 '혁신경쟁법(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를 통과시키면서 AI를 핵심기술로 적시했다. 이러한 모든 AI 대책의 핵심 담론에는 중국 부상의 위협이 존재하고 이를 억지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한편 중국은 2049년 세계일류강국이 되기 위한 핵심동력으로 과학기술을 내세우고 있다. 2018년 10월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은 시진핑 주석 주재로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집체학습(集體學習)을 개최하고, "중국이 새로운 산업혁명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는 인공지능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21세기 중반 세계일류강국이 되고자 하는 중국의 꿈에 인공지능은 핵심동력으로 강조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국제정치적 영향의 또 다른 측면은 미래 전쟁양상의 변화와 이에 따른 새로운 군비경쟁(AI Arms Race)의 출현이다. 미래전쟁은 무인, 자율이 기반이 되는 AI전쟁, 로봇전쟁의 형태가 될 것이라는 상상과 전망이 부상하면서 주요 강대국들은 이러한 인공지능 기반의 전력을 증강시키는 군사혁신 경쟁에 나서고 있다.

미 국방부의 연합AI센터(Joint Artificial Intelligence Center), 미육군 미래사령부 산하 인공지능TF(AI-TF) 창설 등은 AI전쟁에 대한 대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2022년도 AI 기술에 8억7400만달러(1조125억여원)의 투자계획을 밝히고 있다.

중국도 군사지능화를 목표로 드론, 로봇 등 AI 기술의 군사적 적용을 위한 연구와 무기획득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2019년 중국의 대표적인 AI 기업들을 제재하고, 올해 6월 59개의 군사기업들을 추가로 제재리스트에 올린 것 또한 이러한 AI전쟁과 AI군비경쟁에 대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도 올해 AI국방센터 설립을 계획하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동맹국 간 AI군사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AI 군사력 경쟁은 군사동맹 차원의 AI협력 논의로 확대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규범과 가치문제 또한 국제정치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AI기술에 대한 규범과 가치 경쟁은 글로벌 리더십 경쟁의 주요한 축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을 권위주의 기술로 규정하면서, 중국의 기술부상에 대한 대응을 '민주주의 기술 대(對) 권위주의 기술'이라는 체제경쟁, 이념경쟁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권위주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민주주의 동맹을 강조하고 있다.

EU도 인간중심의 AI규범을 화두로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등 AI시대 주도를 위한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EU는 바이든 정부 출범 직후 미국에 기술동맹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범대서양AI협약(Transatlantic AI Agreement)'를 제안했고, 지난 4월에는 인공지능법(Artificial Intelligence Act)을 통과시켜 글로벌 AI 스탠다드를 주도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규범과 가치경쟁은 동맹과 연대의 정치로 연결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12월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것은 AI시대에도 더 강화될 수 있는 가치동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인공지능 기술의 부상은 미래 국제질서는 물론 전쟁양상과 군비경쟁의 변화, 그리고 가치 규범경쟁의 국제정치와 연결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다가올 AI시대의 권력과 부를 쟁취하기 위한 다양한 국가전략, 외교전략을 수립해 가고 있다. 세계는 기술력과 규범력, 군사력의 차원에서 AI시대를 대비하고 있으며, 국가역량의 점검과 미래준비를 위해 민간기업과 전문가들의 광범위한 자문과 참여를 이끌어가고 있다.

미국 AI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인 에릭 슈미트 구글 전 회장은 2년간의 검토 끝에 "미국은 AI시대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AI시대에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시대 한국의 위협과 기회는 무엇인가? 그리고 AI시대 대비를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대답을 정부부처가 아닌 민간의 AI기업과 전문가, 연구자들에게 들어야 하지 않을까. AI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의 전략방향과 과제를 검토하고 이행해 가기 위한 민관협력의 거버넌스가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