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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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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박성원] 경제학자들이 읽어야 할 새로운 경제학

작성일 : 2021-09-01 작성자 : 통합 관리자



[미래생각경제학자들이 읽어야 할 새로운 경제학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최근 나는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 지부에서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건강의 미래 포럼에 참여했다. 건강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 나 같은 비전문가가 낀 이유는 건강의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논의하기 때문이었다.


포럼의 제목이 ‘Health Futures Forum’이었고, 미래를 뜻하는 단어 Future에 복수형 s를 붙인 것이 흥미로웠다. 포럼 담당자에게 그 연유를 물었더니, WHO가 처음으로 미래연구팀을 만들어 중장기 미래를 전망하려고 한다는 답을 들었다. 나는 그런 노력을 축하하는 의미로 포럼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포럼에서 참가자들은 코로나19가 미치는 건강, 사회, 경제적 충격을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했다. 나는 경제적 영향을 논의하는 라운드 테이블에서 발제도 하고 토론도 했는데, 특별히 지난해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수행한 세계적 감염병에 따른 사회적 이슈 연구를 공유했다.


포럼을 통해 재확인한 것은 건강문제가 단순히 의료적 문제가 아니라 경제, 사회, 환경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코로나19는 자연환경을 훼손하면서 경제성장만을 추구했던 지난 인류의 궤적을 경고하는 것이기에 더 그렇다.


사실, 오늘 칼럼에서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이 포럼에서 언급되었던 한 보고서이다. 한 경제 전문가가 꼭 읽어야 할 보고서로 ‘다스굽타 리뷰’를 언급해 포럼이 끝난 뒤 찾아보았다. 원제는 ‘생물다양성의 경제학: 다스굽타 리뷰(The Economics of Biodiversity: The Dasgupta Review)’였는데, 다스굽타(Partha Dasgupta)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였다.


올해로 80세인 다스굽타는 우리 사회에서 생태경제학이나 사회적 자본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보고서는 영국 정부가 다스굽타에게 환경과 경제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밝혀 달라고 요구해 지난 2월 발간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보고서를 펴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내용은 더욱더 흥미로웠다. 600페이지가 넘는 원문에서 주요 내용을 추려 읽었고, 보고서 발간 이후 여러 곳에서 그가 출연한 강연, 인터뷰 자료를 보면서 그가 주장하려는 핵심 메시지를 파악해보았다.


이 보고서의 중심 주장은 자연(Nature)을 경제활동의 자산(Asset)으로 간주하고, 경제적 성과를 따질 때 자연의 훼손 정도를 반영하자는 것이다. 그는 보고서 여러 곳에서 GDP(국내총생산)를 통해 경제적 성과를 따지는 행위는 경제학의 잘못된 적용이며, GDP의 관점에서는 자연을 훼손할수록 오히려 경제적 성장이 높아진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적 개념으로 포용적 부(Inclusive Wealth)를 제시한다.


포용적 부(富)는 자연을 자산으로 포용한다. 이 자산이 훼손될 경우 부의 크기는 줄어든다. 주류 경제학에서 이런 시각은 환영받지 못했다. 다스굽타는 경제적 번영에서 자연을 빼놓은 것에 대한 비판은 지속해서 제기되었지만, 지금까지 경제학계는 한가로운 일요일에만 이런 고민을 하고 주중에는 예전으로 돌아갔다며 자조했다. 그는 영국왕립협회(The Royal Society)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 보고서를 통해 어떤 변화를 가장 바라느냐는 질문에 “경제학자들이 꼭 이 보고서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


자연을 자산으로 간주하고 경제활동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경제적 성공 또는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로 자연의 훼손 정도를 포함해야 한다. 통상 국가 간 무역에서 상품의 이동에 따른 환경의 훼손은 비용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저개발국가에서 온갖 환경을 파괴하면서 상품을 만들어 선진국에 수출하면서 그 물건에 투입된 인건비와 재료비만 계산한다.


앞으로는 상품가격에 환경 훼손의 비용도 포함해야 한다(최근 상품 생산의 모든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따져보려는 흐름은 이런 점에서 바람직하다). 토지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대해서도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와야 하고, 기존의 소비와 생산 패턴을 허물어 수요와 공급의 효율적인 매칭의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적어도 남아도는 물건을 생산하지 말아야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은 사지 말아야 한다. 다스굽타는 교육에 대해서도 새로운 견해를 밝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자연에 대해 배우고, 자연의 보전을 근간으로 과학기술의 개발이나 문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고서와 강연에서 누차 미래세대를 뜻하는 후손(descendants)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현재세대는 물질적 풍요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삶을 누리고 있지만,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현재세대는 최악의 삶을 물려주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코로나19는 바로 현재세대가 얼마나 자연을 착취해왔는지 보여주는 증표이며 최악의 자연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새로운 경제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경제학자들이 꼭 읽어야 할 경제학으로 제시한 ‘생물다양성의 경제학’은 다양한 생명들의 보호와 보존을 추구하는 경제학이며 생태계 전체를 고려하는 경제적 활동을 새로 고안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다스굽타는 이 보고서의 기반이 되는 주요 논쟁이 그가 1979년 펴낸 책(Economic Theory and Exhaustible Resources)부터 2019년에 낸 책(Times and the Generations: Population Ethics for a Diminishing Planet)까지 40년에 걸쳐 다양한 학자들, 활동가들, 시민들과 논의하면서 펴낸 내용이라는 주석을 달았다.


한 학자의 40년에 걸친 학문적 여정이 생태와 경제라는 분야를 통합하려는 연구에 바쳐졌다는 점,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경제학을 제안하는 모습이 약간은 부러웠다. 우리 사회도 이런 학자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前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연구위원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Political Science (Futures Studies)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