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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보경] 경제학에서 유래한 역선택, 결국 유권자의 몫

작성일 : 2021-09-14 작성자 : 통합 관리자


경제학에서 유래한 역선택결국 유권자의 몫

글.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장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선거철마다 정당들은 승리를 위해 말 그대로 선거 전쟁을 치른다. 본선에서 필승할 수 있는 후보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경선 과정에서는 캠프마다 선거 전략가들이 자기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판세를 이끌기 위해 복잡한 전술을 동원한다. 최근 논란이 됐던 정치판의 역선택(adverse selection) 이슈 역시 이러한 전술 중 하나이다.


역선택은 원래 경제학 용어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는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자가 달콤한 복숭아(peach)처럼 질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책정된 가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물건을 내놓지 않으려 하고, 문제가 많은 차를 가진 판매자는 시장가격에 만족하면서 차를 내놓게 돼 시장에는 시고 맛이 없는 레몬(lemon)만 남게 된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정보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이다.


중고차 판매자는 구매자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중고차 시장을 위해 판매자의 도덕심만을 바라볼 수는 없다. 가령, 판매자에게 상품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정보의 비대칭성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중고차의 품질을 나타낼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 예를 들면 긁힌 흔적의 정도, 녹슨 곳의 여부 등을 사진과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이름이 알려진 대기업이 직접 중고차를 매입한 후 수리해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는 검증된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자동차 이력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역선택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국 역선택의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은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제공을 통한 신뢰의 회복이 그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보의 균형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면 시장이 투명해지고, 이로 인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해진다.


최근 정치판에서 논란이 되는 역선택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 상대 정당 경선에 개입해 일부러 약체 후보에게 투표해 자기네들에게 유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선택이 실제로 발생하는지,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는지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못한 상태에서 후보자들마다 셈법이 다르고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상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strategic voting)에 가깝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선거 전략가들의 복잡한 전략에 대응해 유권자들의 전략적 행태 또한 계속 진화해 왔다.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행위는 자신의 투표가 선거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일종의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이는 유권자가 후보자의 선거 전략이나 정책공약을 단편적으로 해석해 후보자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의 정보를 반영해 수정하는 투표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합리적 투표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선거에서의 투표율 저하 역시, 유권자들의 합리적인 행위로 설명하기도 한다. 합리적인 소비자는 물건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탐색행위를 한다. 합리적인 유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후보자 검증을 위해 여기저기 탐색하며 후보자 정보를 알아보는데 시간을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올바른 정치적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이 노력을 투입한 만큼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하지 않으려 하니, 이것은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인 것이다. 선거는 선출된 권력에 대한 대표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라는 점에서 선거에 대한 무관심과 투표율 저하는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현상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선거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하는 합리적 무지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상당 부분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된 정보나 거짓·과장 홍보에 대한 씁쓸한 경험과 후보자 선출과정에 대한 신뢰 부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조지 애컬로프가 말한 역선택이 그대로 선거판에 적용된다면 레몬 같은 질 낮은 후보자들만 있는 선거를 치러야 하니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도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역선택의 경우처럼 선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정당이나 후보자의 양심과 도덕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혹자는 한국의 선거에 대해 지역주의 투표, 이념 편향적 투표, 계급배반 투표 등의 표현을 통해 유권자들의 비합리성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간 한국의 시민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해 왔고 그렇게 선출된 권력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를 이끌어내며 변화를 주도해 왔다.


그 저변에는 경선제도 도입과 후보자간 TV 토론,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 등 유권자들에게 주는 정보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이 있었고, 주기적이고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여론조사 역시 유권자들이 합리적이고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선거 과정에 대한 신뢰 형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일은 유권자를 위해 제도권에서 해야 할 시대적 의무이다. 정치권은 후보선출과정에서 후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고, 언론은 국민들에게 후보자에 대한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전하며, 시민사회는 정책 후보자들의 정책공약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적인 구조하에 부실하고 거짓된 정보가 난무하는 선거판에서 유권자에게 합리적 투표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결국 레몬들 사이에서 복숭아를 가려내는 일은 결국 유권자가 해야 할 일이다. 선거의 결과 때문에 수립된 정권의 정책들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장